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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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흠모하는 마음으로 / 수필

2021.07.12 20:44

민유자 조회 수:64



흠모하는 마음으로

 

 평균적으로 75세가 넘으면 많은 부분이 평준화된다는 무시하지 못할 우스갯말이 있다. 평생 쌓아온 지체와 명성, 학력, 빈부, 미모가 다 거기서 거기로 허무하게 무너져 무참히 같아진다는 말이다.

 

 내가 흠모하는 노신사가 있으니 그는 그렇지 않다. 평준화의 연령을 훌쩍 넘어 사반세기四半世紀를 지나고 있으나 지체와 명성은 날로 더 빛나고 있다. 필부로는 감당 못 할 지극한 연세로도 지성이 전혀 녹슬지 않았다. 안락함에 주저앉지 않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진행형 전진 중이다.

 

 백세시대라 하지만 아직도 100세를 넘는 분은 많지 않다. 대한 항공 컴퓨터에 한 살로 기록된 사람이 비행기록 930번째로 나와 있는 재미있는 사실이 직원을 어리둥절 놀라게 했다. 컴퓨터가 두 자리 수로만 기록하게 되어 있어서 101살이 01살이 된 거다. 그 연세에 지팡이도 안 짚고 혼자서 비행기 여행을 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그 신사는 김형석 사상가, 철학자, 수필가, 교수님이다.

 

 오래전부터 그의 책들을 읽고 감명받았지만, 최근 한 세기를 살아낸 후에 말씀하는 행복론이 내 가슴에 꽂혔다. 그의 말씀은 지극히 쉬운 말로 정곡을 짚는다.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물질적인 행복은 신기루같이 잠시뿐으로 허망하게 사라지는가 하면, 가지면 가질수록 끝없이 점점 더 허기진다. 행복의 꼭 필요한 조건인 만족을 물질의 소유에서는 누릴 수 없다. 반면에 정신적인 가치는 무너지지도 빼앗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충일한 만족도도 높다.

 

 두 번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자신만을 위한 사람은 인격을 갖출 수 없다. 인격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다. 인격은 그 사람의 그릇을 말한다. 그릇이 작으면 행복은 담기지 않는다.”

 

그가 그 연세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또렷한 정신력, 기억력, 사고력, 판단력이 있음은 놀랄만하다. 그의 꼬장꼬장한 육체적인 건강도 역시 감탄할 만하다. 그가 밝히는 비결은 일과 공부라 한다. 공부는 독서, 연구, 습득을 말하고, 일은 자기 관리, 취미, 운동을 말한다. 그는 지금도 글을 쓰고 강연하고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육체와 두뇌를 끊임없이 사용하고 힘껏 단련하라는 얘기다. 육체나 정신이나 단련하지 않으면 무디어진다. 한쪽이 무너져 내리면 다른 쪽을 끌어내리게 되어 있다. 육체가 무너지면 정신력도 쇠하게 되고, 육체가 강해도 정신력이 쇠하게 되면 육체도 따라서 약해진다는 원리다.

 

 그는 초청 연사로 지방에 내려가면 그곳의 유지들을 많이 만난다. 왕년에 자기 분야에서 한 자리 톡톡한 몫을 담당하던 사람들이다. 거기서 절실히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이 자기보다 나이는 20년 젊은데 정신력은 훨씬 더 늙어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은 정년 이후 편안함에 안주하고 스스로 할 일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이른바 백세시대가 됨으로, 장수의 복된 특혜를 안락한 우리 안의 짐승 같은 감옥으로 스스로 만들고 있음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는 어려서 수시로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병약 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듣는 데서도 아들이 스무 살 될 때까지 만이라도 사는 것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평생 자신의 몸이 허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자기 관리를 빈틈없이 철저히 해왔다. 튼실한 건강을 타고났으면서 관리 소홀과 무리한 체력 남용으로 노년을 불행하게 보내고 있거나 세상을 일찍 하직하는 사람이 많음을 볼 때 생각할 점이 많다.

 

 그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앉을 자리를 찾지 않고, 오히려 앉았던 자리도 노인들에게나 여성에게 양보하여 일어서는 신사다. 대부분의 자리를 양보 받은 노인들은 그보다 많이 젊은 사람들이다.

 

 그는 이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 교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부끄럼 없는 생을 살아 우리에게 지표가 되고 귀감이 된다. 그를 보며 성경 시편 1편에 있는 ‘복 있는 사람’을 떠올린다. 올바른 생각으로 정도를 걷고 겸손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많이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는 말씀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준 실제 인물이라 생각된다.

 

그는 부인과도 일찍이 사별하고, 장수함으로 친구들도 다 먼저 떠나갔다. 홀로 남아 외롭고 고독하지만 가는 곳마다 인기가 높다. 그가 뿌린 씨앗의 수확으로 수많은 제자들의 존경과 환영을 받는다. 가정 안에서도 육남매의 따뜻한 만점의 아버지로 존중과 사랑을 흠뻑 받고 있다.

 

 부모 세대로부터 많이 들은 말 중에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는 말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스스로 늙었다고 자처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김형석 교수를 생각하며 아직 멀었다고 마음을 다그치고 스스로 깨어난다.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삶의 본을 보여주는 그를 흠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행복론을 곱씹어본다.

 

선생님!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