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ntle Reminder |
소곡3.
내 마음 안에서나 밖에서나
당신이 날것으로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끝이 있는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창에 배가 와 닿듯이
당신에 가 닿고
언제나 떠날 때가 오면
넌지시 밀려나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던 것을.
창밖에 문득 후득이다 숨죽이는 밤비처럼
세상을 소리만으로 적시며
남몰래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 것을.
... less
내게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날것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것! 당신은 내 존재의 안과 밖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그 무엇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당신은 날것의 존재다. 내 사랑은 살아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 시는 이상한 소망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내가 '끝이 있는 것'이 되고 싶었다는 것.
왜 내 사랑은 '끝'을 소망하기 시작했을까?
당신이 내게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끝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끝이 있는 존재라는 이유로, 내 사랑의 살아 있음은 오히려 생생하게 경험된다.
'나'의 '끝'은 '선창에 배가 와 닿고' '창밖에 문득 후득이다 숨죽이는 밤비'의 이미지를 얻는다.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능동성은 내 존재의 수동성과 한계성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던' 존재이고, 내 사랑은 '남 몰래 지나가고 있었던' 누구도 모르는 은밀한 사건일 뿐.
하지만 깊은 곳에서 욕망하는 것이 단지 '끝'을 예감하는 사랑일까?
내 사랑의 수동성과 무심함은, 당신의 저 눈부신 생생함을 드러내려는
내 사소하고 내밀한 사랑의 다른 언어가 아닐까?
내 사랑의 언어는 언제나 당신에게조차 암호처럼 속삭인다.
가끔 내 사랑은 무심함을 가장한다.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는다.
젊은 날 시인의 놀랍도록 투명한 감성은 지워지지 않는 청춘의 문장으로 기억된다.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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