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남긴 명언 13개와 <닉 부이치치>

2010.03.08 08:19

서용덕 조회 수:1289 추천:73

헬렌 켈러가 남긴명언 13개 여성 사회복지사업가이자 저술가인 헬렌 켈러가 1880년 미국 앨라배마주의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예비역 장군이자 지방신문사 편집자였던 아더 H 켈러와 케이트 애덤 켈러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 19개월 때 열병을 앓은 후, 소경·귀머거리·벙어리가 되었다. 7세 때부터 맹인가정교사 A.M. 설리번에게 교육을 받아 수화알파벳과 사물의 이름을 공부, 이후 말하는 법을 학습했다. 설리번은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라는 말로 헬렌 켈러에게 용기를 주었다.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우등생으로 졸업, 세계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가 되었다. 졸업 후 1906년 매사추세츠주 맹인구제과 위원에 임명되었고 1924년부터 미국맹인협회에서도 일을 했다. 미국 전역 및 해외로 돌아다니며 신의 사랑·섭리와 노력을 역설하여 맹농아자의 교육, 사회복지시설의 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아 맹농아자복지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가는 곳마다 장애자들로부터 ‘파랑새의 방문’이라며 큰 환영을 받았다. 1937년에는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라는 명언 등으로 장애우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저서로는 ‘나의 생애’ ‘신앙의 권유’ ‘나의 종교’ 등이 있다. ------------------------------------------------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 하지는 않다." -헬렌켈러-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헬렌 켈러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헬렌 켈러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 -헬렌 켈러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헬렌켈러 *나는 종종 성인(成人)들이 단 며칠간만이라도 맹인과 귀머거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면 시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귀머거리가 되면 소리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낙천(樂天)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헬렌 켈러 *말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사상이다. -헬렌 켈러 *불구자라도 노력하면 된다. -헬렌 켈러 *선조들 중에서 노예를 가지지 아니한 왕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선조들 중에서 왕을 가지지 아니한 노예도 하나도 없다. -헬렌 켈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 켈러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도 가득합니다. -헬렌켈러 *신은 용기있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헬렌 켈러 헨렌 켈러는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짐승 같은 인간이었다. 헨렌 켈러를 가르치지 위하여 왔던 선생들은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는 그의 상태를 보고서는 다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설리번 선생은, 헨렌의 집에 처음 도착하던 날, 그 짐승 같은 상태의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 이후 설리번 선생은 지성을 다한 노력으로 헨렌 켈러에게 수화와 단어를 가르칠 수 있었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었을 때, 설리번 선생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헬렌 켄러는 "선생님이 오시던 날 나를 꼭 안아 주신 것"이라고 대답했다. 설리번 선생이 꼭 안아주던 그 첫날부터 짐승처럼 거칠던 헬렌 켈러의 마음이 녹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리번 선생은 어떻게 남들이 손잡기도 꺼려 하던 그 짐슴 같은 아이를 사랑으로 껴안아 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설리번 선생 자신이 심각한 망막 질환으로, 실명 직전까지 갈 정도로 큰 아픔과 고통을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었기에 그 같은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불쌍한 헬렌 켈러를 진심으로 사랑을 다해 안아 줄 수 있었다. 그 사랑이 헬렌 켈러를 살려 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아야 짐승을 면할 수가 있다. --------------------------------------------- 모셔온 글 : 진리와 음악기사 <입력: 2009/08/31> [독서신문] 김혜식수필가 지옥 염천이 따로 없는 듯하다. 문밖 한 발짝만 나서도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온 세상을 불태울 듯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다. 이렇듯 무더위엔 가족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미처 신경 못쓰면 금세 음식이 부패해 버리기 일쑤인 요즘이다. 부패한 음식을 제 때 못 버리면 집안에 악취까지 진동한다. 어찌 악취를 풍기는 게 부패한 음식 뿐이겠는가. 사람도 가슴 속에 헛된 욕망을 품으면 마음이 절로 썩어 곁에만 가도 그 냄새에 질린다. 하지만 세상엔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게 있다. 춘추 전국 시대에 노 나라 숙손표(叔孫豹)는 불변의 생명으로 세 가지를 일렀다. 첫째가 입덕(立德)이요, 둘째가 입공(立功)이며 셋째가 입언(立言)이었다. 불변의 덕을 남긴 분들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이다. 그들의 덕은 그 빛이 해와 달과 같아 우리들의 마음을 늘 은은히 비춰 주고 있다. 입공이란 나라나 인류에 참으로 위대한 공적을 남긴 것을 이른다. 헬렌 켈러, 이순신 장군, 루즈벨트 대통령, 아인슈타인 등등의 인물들이 그것이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매우 뚜렷하고 훌륭해 역사 곳곳에 그 치적이 남아있잖은가. 입언은 선현, 현자들의 명문(名文)이나 명언을 일컫는다. 나 또한 글줄 깨나 쓴다는 선비이니 어떤 경우라도 이 삼불후를 명심해야 하나 우매하여 아직도 그 뜻조차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인간답게 처신한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비울 때 가능하다. 하나 무엇이든 손아귀에 잔뜩 움켜쥐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만물의 영장인 우리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더구나 자신이 이룬 일로 남에게 찬사를 받을 때 몸을 낮추지 않고 교만을 부린다면 그 명예 또한 값지지 못하다. 천재 음악가 슈베르트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뽐내거나 과시 하지 않은 음악가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음악이 많은 사람들한테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가수가 노래를 잘 불러서 그렇다”라고 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영광을 항상 다른 이에게 돌리곤 했었다. 슈베르트가 보여준 겸손함이 그가 작곡한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보다 더 돋보여 불변의 진리로 오늘도 내 가슴에 자리한다. ------------------------------------------- 닉 부이치치 (Nicholas James Vujicic) 1982년 12월 4일생 (오스트레일리아) 소속: 사지 없는 인생 (전세계 희망 전도사) 닉 부이치치는 팔도 없다. 다리도 없다. 머리와 몸, 그리고 작은 왼발과 발가락 두 개가 신체의 전부인 키 작은 남자 ‘수족 없는 삶(Life Without Limbs)’ 설립자 닉 부이치치 그는 “절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삶에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했다. 핸디캡, 고난은 축복인 거죠. 고난은 저를 성숙하게 하는 영적 통찰력의 보고뿐 아니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지금의 아픔을 엔조이하게 됐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닉 부이치치=육체적 장애는 정신적 장애와는 달라요. 전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각각의 아픔과 상처, 외로움 등을 갖고 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육체적 장애가 있는 편이 깨어진 가정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깁니다. ◇부이치치= 저는 팔다리 없이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새롭게 배울 것이 없었어요. 따라서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저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이는 저의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해 주신 말씀이기도 하죠. 당신이 가진 장애와 상관없이 당신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고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부이치치=8살 때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죽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10살 때 욕조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죠.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서 앉아 있게 됐죠. 저는 부모님의 인생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속사람이 상했는데, 겉이 멀쩡하면 무엇이 좋겠는가라고요. ◇부이치치=제 장애가 누군가를 구원하는 데 쓰이기를 원한 거라면 저는 몇 번이고 같은 삶을 기쁜 마음으로 살 것입니다. 2008년 W를 통해 소개된 그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두려움은 팔, 다리가 없는 것보다도 더 여러분을 불구로 만듭니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장애를 이겨낸 닉의 삶은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절망도 희망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 행복 전도사, 그가 한국에 왔다. 함께하면 행복한 남자 닉부이치치의 일주일간의 한국 방문기! 그 가슴 뜨거운 희망이야기를 W에서 독점 공개한다. 팔과 다리가 없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닉. 학교에 입학한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으로 그는 좌절했다. 그리고 열 살이 되던 해, 자살을 시도하고 만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던진 그에게 삶의 의지를 다시 일깨워준 것은 바로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남들과 똑같이 대하셨어요. 그것이 내 삶의 큰 동기유발이 됐어요." 라고 말하는 닉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인 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는 회계와 재무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는 점점 더 어려운 일에 도전했다. 수영과 축구, 서핑과 같은 거친 스포츠도 친구들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됐다. 키 작은 남자 닉의 활동무대는 점점 넓어져,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호주와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전파하는 닉. 2010년 2월, 그가 또 다른 행복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절망을 이기고 희망으로 거듭 태어난 남자, 닉 부이치치. 한국을 찾아온 그가 선사하는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팔과 다리는 없지만 세상으로 나와 우뚝 선 남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닉의 가슴 따뜻한 행복 나눔을 W에서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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