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봄호 미주문학 계간 (통권 62호) 유안진 (시인.대한민국예술원회원) *시 계간평 (미주문학 통권 62호 Page 275~285) [언어예술로서 시와 시조의 새로움과 감동을 위하여] ** 시는 언어경제학적 언어예술 ** 시는 언어예술이다. 최소한의 언어에다 최대한을 담아내는 "언어경제학적 언어예술"이다. 또한 시는 궁극적으로는 연가 아니면 애가이다. 우리 삶이 두 가지 대주제로 대별되기 때문에 우리가 쓰고 읽는 거의 모두가 연가(戀歌) 아니면 애가(哀歌)라고 할 수 있다. 자연적인 사물을 주제로 해도, 생명이라는 사랑의 절대 가치가 궁극이 되고, 이별을 노래해도, 사랑을 갈구한 슬픔이 되므로, 결국은 연가나 애가에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죽음을 노래해도 생명이라는 삶의 과정에 관련되는 기쁨을 상실한, 또한 다시 기쁨을 다시 얻기 위한 노래가 아닐 수가 없다. ** 시 쓰기는 거짓말로 참말하기 ** 또한 시작의 기법상으로 시는 거짓말로 참말하기라고 본다. 무궁한 언어표현 거짓말로 참말하기다. 이점에서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더 시인들이었다. "문닫고 들어오너라. 문닫고 나가거라."고 했다. 문을 닫고 어떻게 나가고 들어올 수 있느냐 말이다. 나는 한술 더 떠서 "문 잠그고 나가거라. 문 잠그고 들어왔어."라고 한다. 이는 문법상 비문법적이다. 시 쓰기는 비문법적인데다가 우리 한글과 어법의 일상적인 표현은 오랜 역사를 거쳐서도 비문법적인 거짓말로 참말하기로 이어져오고 있다. <거짓말로 참말하기>라는 시작 기법을 제목으로 내세운 시집을 낸바 있는데, 거짓말로 참말하기라는 시작기법은 내가 최초였다고 황홀했었다. 그러한 황홀에 자화자찬 중에, 무슨 책은 보니, 이미 장.꼭도라는 프랑스 시인이 "시인은 항상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쟁이 (The Poet is a liar who tell always a truth)" 라고 했음을 알고는, 그가 얼마나 밉고 화가 났었던지, 선구자 시인들이 너무나 많다고 새삼 깨달은 적 있다. 시 쓰기는 있는 그대로를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의 이미지화 하는 과정을 거쳐서, 엉뚱하게 처음 보는 듯 낯설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모든 시인들이 사용했던 이미지나 표현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법을 언어로 비틀고나 가꾸고 하거나 등으로 재구겅해서 써야 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낮설고 엉뚱한 놀라움의 감탄이거나 묘한 기쁨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쓴 시는 처음 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재미있고 미력이 느껴지고 놀랍고 좋다는.... . 따라서 시인은 가장 그렇듯한 거짓말로 진실을 담아내는 참말하는 사람이라고. 즉, 시인은 거짓말로 참말하는 사람. 쉬운 것을 어렵게 쓰는 사람. 직선적이 아니라 곡선적으로. 에둘러서 빙빙빙 돌려서 글 쓰는 사람이라고. ** 시인은 지는 것으로서 이기려는 사람 **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 또는 그 분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최고의 시인들이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내 어머니는 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나를 야단치셨는데, 프랑스 철학자이며 문인으로 <벽>등의 대단한 작품을 쓴 짜르트로가 있다. 그는 자기 철학에 맞춰 소설도 시도 많이 썼는데, 준다는 노벨문학상을 안 받겠다고 거절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바로 이 싸르트르도 내 어머니처럼, 시인은 "지는 것으로 이기려드는 사람"이라고 썼다. 우연한 기회에 그가 쓴 바로 이 문장을 읽고나서는, 싸르트르라는 사람은 고사하고, 그의 이름 조차 몰랐던 내 어머니가. 어찌 그리도 시인다우셨던가 감탄해마지 않은 적이 있다.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약자, 생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호히려 손해가 되는 글 쓰기에다 목을 매는 미국 이민 동포 시인들 같은 사람이 진정한 시인들이라고 본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도 어리고 유약한 것이 강하고 힘센 것을 이긴다고 했다. 이는 노자 철학의 핵심이 아닌가. 시인은 늘 지고 살기 때문에, 그래서 한도 억울함도 쌓여만 간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에는 시로 승화(sublimation) 시켜서, 시로서 복수하여 승리하기를 꿈꾸려고 애쓰는 사람이니까. 그것이 자기의 억울함도 고통도 스스로 치유(healing)하게 되는 '지는 것이 이기려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리석지 않으면 시가 써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리석어서 가장 지혜롭게 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본다. ** 매력적인 제목과 색다른 반전의 표현과 감동 ** 대강 위와 같은 시론과 시인론을 전제로, 2012년 (계간) 겨울호 <미주문학>에 발표된 시와 시조 몇 편을 감상 비평해 본다. 김미경 시인의 <모래주머니> 김미화 시인의 <다리미 보일러> 문인귀 시인의 <장모님의 안식> 서용덕 시인의 <영안실의 온도> 오정방 시인의 <다 자란 나무는 함부로 옮기는 게 아니다> 와 안규복 시인의 시조 <판토타임> 등 5편의 시와 한 편의 시조를 대상으로 솔직한 찬사와 불만을 지적하며 감상애 보고 싶다. 시라는 언어예술은 그림이나 음악등 여타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새로움과 감동을 생명으로 한다. 새로움이란 지난 시대에 발표된 무수한 시작품들과 다르게 쓴 신작시다우냐?의 1) 특수성문제이고, 그 시가 독자를 울리던가 웃기던가 화나게 하던가... 등등의 감동을 주느냐? 하는 2) 보편성문제가 핵심이 된다. 무수한 시들과 같거나 비슷한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은 것이면, 신작시가 아니다. 소월 김정식의 <진달래>나, 김현승의 <가을>을 능가한 작품을 써내지 않으면, 진달래나 가을을 제목이나 주제로 시를 쓸 생각을 하지 말자는 말이다. "비슷하면 가짜이다" 그래서 엇비슷 누군가의 시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도 가짜이다. 그래서 자기만의 독특한 시상(詩想.詩像)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현 시단에서는 미래파라는 젊은 시인들이 발표하는 어려운 시(?)들이 문제가 된다. 기법상으로는 독특하지만, 감동은 고사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시인들도 많고, 심지어는 이렇게 어려운 시를 길게 쓰면서,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불편>동인이라는 젊은 시인들이 있다. 기법상의 1)특수성문제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감동이라는 2) 보편성에는 문제가 많다는 평판을 듣는다. 발표된 작품들이 이런 특수성과 보편성의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2012년 <미주문학 겨울호>의 5편의 시와 1편의 시조는 두 가지의 충족에 가깝다는 의견을 들어주고 싶다. 서용덕 시인의 <영안실의 온도>는 잘 읽혀지고 감동에서도 성공적이라고 보았다. 더욱이 연갈이(연 나누기)없이 쓴 것도 특징으로 보였다. 제목과 시의 첫 구절이 엉뚱하게 시침떼고 달라서 낯설게 하기에서 좋았다. 제목과 시작하는 첫 구절이나 첫줄이 동일하면 초보자로 보이니까. 그만치 시 쓰기가 까다롭다. "앞으로 앞으로 가다보면 숨이 다하는 여기다 하고 오던 길 돌아갈 수 없는 땅 끝 하늘 얼음 덩어리 영하 섭씨 10도 녹지 않는 덩어리 영안실의 온도는 얼음덩어리 살아있는 사람은 벌벌 떨고 벼랑에 서서 목숨을 느낀 온도 살아 있어도 영안실에 갇혀 지내는 북쪽 끝에 하늘 닿은 얼음 땅 끝이 없는 것은 여기까지야 그 끝나는 곳이 또 다른 출발을 바라보고 가는 하늘 높은 곳 쌓인 눈밭에는 있던 길도 없으니 없는 길 찾아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 <영안실의 온도 전문> 아마도 여행이나 어떤 계기로 영하 10도이 녹지 않는 얼음땅에 갔던 듯, 삶이 왜 아니 이런 곳에서의 느낌이 아니랴. 우리 사는 세상은 어찌 영안실 같은 춥고 외로운 혼자라는 느낌에서 마지막이고 끝이라고 느낄 때가 더 자주 체험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랴. 좀더 자기화가 필요하고, 좀 더 살아있는 존재의 근본적 고독과 추위를 더 깊게 담아 냈으면 하지만,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행은 "있던 길도 없으니"를 좀 더 다르게 표현했으면 한다. 죽음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는, 이미 영안실이라는 세상, 춥고 고독한 혼자만의 얼음 땅에 갇혀있다는 길 없음의 길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만 실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없는 길을 찾아가려는 방황 아닌가. 아쉬운 점들을 다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 머나먼 타국에서도 생리적인 모국어를 잊지 않고, 모국어란 혈육적이고 천륜전(天倫的)인 민족혼 그대로의 모국어에 매달려, 쓰고 발표하기를 쉬지 않고 노력해 마지않는 미주시인들의 거룩하고도 갸륵한 노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언어예술로서 시쓰기로서, 고국의 그리움과 일상적 삶의 여러 통증이 조금이라도 치유되기를. 아무리 써도, 나 역시 나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이 완전히 치유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쓰고 지우고 고치고 또 쓰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무가치한 시 쓰기가 베풀어주는 무한가치에 무한정 감사하고 싶다. 시인의 삶이여! 고통이 우리 시인들의 존재증명이 되어주니, 좋아라.(*) ----------------------유안진 시인은 ------------------ *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달) (별) (위로)가 실리면 등단했고, 첫 시집 (달하)를 출간했다. * 이향아.신달자와 함께 펴낸 <지란지교 芝蘭之交를 꿈꾸며> 1986년도에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 주요작품으로는 시집 <절망시편 ;1972> <물로 바람으로;1976> <그리스도 옛애인;1978> <날개옷;981> <꿈꾸는 손금; 1985> <달빛에 젖은 가락;1985> <약속의 별 하나;1986> <풍각쟁이의 꿈;1987> <남산길;1988>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1993> < 누이;1997> <봄비 한 주머니;2000> <다보탑 줍다;2004> 등이 있으며. 수필집 <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1985> <그리운 말 한마디;1987> <한국여성:우리는 누구인가;1991>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1990> <땡삐;1993>등이 있다. * 미국 유학시절 우리 민족의 가치에 눈떠 30여년간 한국 전통사회의 아동 및 여성 민족을 연구하여 <한국전통 아동심리요법;1985> <한국전통사회의 육아방식;1988> <한국전통사회의 유아교육;1991> 등의 연구서와 <아동발달의 이해> <아동환경론> <부모교육론> 등 다수의 이론서를 출간했다. * 문학상 수상은 <세한도 가는길>로 제10회 정지용문학상;1998년, <봄비 한 주머니>로 제35회 월탄문학상 ;2000년, <성병聲病에 걸리다>로 제7회 유심작품상;2009년,<거짓말로 참말하기>로 제4회 이형기문학상;2009년. * 숙맥. 바보가 나에게 멘토 5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 ; 문예중앙>에서 "허둥지둥 살지 말자. 어리석게 살자"라고 다독인다.(*) <입력 20013년 6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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