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 (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고 )

2011.03.08 10:25

서용덕 조회 수:360 추천:46

젊어서는 능력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나, 늙어서는 재물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다. 재산이 많을수록 늙는 것은 더욱 억울하고, 인물이 좋을수록 늙는 것은 더욱 억울하다. 재산이 많다 해도 죽어 가져갈 방도는 없고, 인물이 좋다 해도 죽어 가져갈 도리는 없다. 성인군자라도 늙음은 싫어하기 마련이고, 도학군자라도 늙음은 싫어하기 마련이다. 주변에 미인이 앉으면 바보라도 좋아하나, 주변에 노인이 앉으면 군자라도 싫어한다. 아파 보면 달라진 세상 인심을 잘 알 수 있고, 늙어 보면 달라진 세상 인심을 잘 알 수 있다. 대단한 권력자가 망명신세가 되기도 하고, 엄청난 재산가가 쪽박신세가 되기도 한다. 육신이 약하면 하찮은 병균마저 달려들고, 입지가 약하면 하찮은 인간마저 덤벼든다. 일이 풀린다면 어중이 떠중이 다 모이지만, 일이 꼬인다면 갑돌이 갑순이 다 떠나간다. 잃어버린 세월을 복구하는 것도 소중하나,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 것도 소중하다. 여생이 짧을수록 남은 시간은 더 소중하고, 여생이 짧을수록 남은 시간은 더 절박하다. 개방적이던 자도 늙으면 폐쇄적이기 쉽고, 진보적이던 자도 늙으면 타산적이기 쉽다. 거창한 무대라도 공연시간은 얼마 안 되고, 훌륭한 무대라도 관람시간은 얼마 안 된다. 자식이 없으면 자식 있는 것을 부러워하나, 자식이 있으면 자식 없는 것을 부러워한다. 대개 자식 없는 노인은 고독하기 마련이나, 대개 자식 있는 노인은 심난하기 마련이다. 못 배우고 못난 자식은 효도하기 십상이나, 잘 배우고 잘난 자식은 불효하기 십상이다. 있는 자가 병들면 자식들 관심이 집중되나, 없는 자가 병들면 자식들 부담이 집중된다. 세월이 촉박한 매미는 새벽부터 울어대고, 여생이 촉박한 노인은 새벽부터 심난하다. 계절을 잃은 매미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고, 젊음을 잃은 노인의 웃음소리는 서글프다. 심신이 피곤하면 휴식 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이 고단하면 안식 자리부터 찾기 쉽다. 삶에 너무 집착하면 상실감에 빠지기 쉽고, 삶에 너무 골몰하면 허무감에 빠지기 쉽다. 영악한 인간은 중죄를 짓고도 태연하지만, 순박한 인간은 하찮은 일에도 불안해한다. ---------------------------- 獨 笑 홀로 웃다 / 다산 정약용 有粟無人食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창愚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家室少完福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며, 月滿頻値雲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세상 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 걸. ---------------------------------- 靑山兮要我 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선사(懶翁禪師) 1연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2연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는 고려 말 불교계의 명승이자 고승(高僧)으로 왕사(王師)이다. 본명은 혜근(慧勤:1320∼1376)), 호는 나옹(懶翁), 강월헌(江月軒)이다. 처음 이름은 원혜(元惠)이다. 나옹선사는 고려 충숙왕 7년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339년 이웃 친구의 죽음에 무상을 느껴 출가한 후 1344년(고려 충혜왕 5)에 회암사에서 수도를 하고, 1347년(충목왕 3)에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指空禪師)에게 서 2년간 수도(修道)하였고, 불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1358년(공민왕 7) 오대산 상두암(象頭庵)에 머물다가 1361년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고 신광사(新光寺) 주지가 되었다. 1365년(공민왕 14) 회암사의 주지가 된 이후 10여 년 동안 여기 머물면서 사세 (寺勢)를 크게 확장시켰다. 1374년 공민왕이 승하하고 우왕(瑀王)이 즉위한 후 왕사로 봉해졌다. 1376년(우왕 2), 1년 전에 들어간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였는데, 부도는 그 해 9월 16일 그가 오래 머물었던 회암사에 세워졌다. 시호(諡號)는 선각(先覺)이다. 조선조 왕사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그의 제자 32명 중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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