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첫 부임지에서

2018.06.12 21:49

조형숙 조회 수:15

  청라의 봄은 보물창고였다. 막 자라기 시작한 청보리는 싱그러운 정열을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다. 넓은 들판과 밭두렁에는 쑥이 지천으로 넘쳐난다. 돌 틈에 고개 내미는 달래와, 드문 드문 모여 자라는 개망초는 강한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개망초는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데쳐서 찬물에 헹구어야 색깔이 안 변한다'고 하며 맛있는 나물로 무쳐 주신다. 마늘 다지고 쪽파 송송, 멸치 조림장, 죽염을 빻아 조물조물 무치고 참기름으로 마무리, 잣과 깨로 고명을 한 나물은 정말 맛이 좋았다. 소박하지만 입안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는 봄을 타는 내 입맛을 돋구어 주었다.

   대학에서는 졸업하기 몇 달 전에 가고 싶은 학교의 희망 도시를 쓰라고 했다. 감성이 풍부하던 때라 서울보다는 지방으로 가보고 싶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좀 멀고 경기도는 서울과 가까워 떠나는 실감이 나지 않고 남한의 중간 지역인 충청도를 희망했다. 졸업 하기 전에 충청도 신설 중학교에 부임하게 되었다. 

   수업하러 들어가는 교실 창문 옆을 지나려니 쑥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 곳은 쑥이 참 많구나. 서울 사람들이 보면 부러워 하겠다." 지나치며 하는 말에 아이들이 신기해 하며 묻는다. "왜유우?" "서울엔 쑥이 많이 없어.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광주리에 담아 파는 쑥을 사먹는단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캐오는 거야. 그것 사다가 쑥떡도 해먹고 국도 끓여 먹고 그러거든." 다음날 아침 교장실에 불려갔다. "조 선생은 재주가 많네요. 아이들이 밤새 손전등을 켜고 쑥을 캤다고 부모들이 전화를 했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책상 밑에 가봐요."  내 자리로 돌아가니 쑥이 담긴 봉지들이 쌓여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나도 놀랐다. 서울에서 온 여선생에게 보여준 아이들의 사랑이었다. 난 그냥 질펀히 올라온 쑥을 보며 한 이야기 였는데, 미안하고 민망했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정말 고마웠다.

   작은 중학교에서 한 과목으로 법정 수업을 채우기에는 수업시간이 부족했다. 한 과목을 더 맡아야 했다. 미술과 음악 중 어느 과목을 택할 것인지를 놓고 나는 선뜻 음악을 골랐다. 아버지는 작곡가였고 언니는 음악선생이었고 나와 형제들은 음악이 익숙했다. 조회시간에는 애국가를 선창하고 지휘를 했다. 나중에는 풍금을 운동장에 들고 나와 반주하며 불렀다. 각 반의 음악시간을 맡아 노래를 가르쳤다. 아이들의 밝고 낭낭한 노래 소리는 음악실 창문을 넘어 넓은 들판으로 퍼져 나갔다.

   국어와 미술을 가르쳤던 문 선생은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다. 장학사의 시찰이 있어 교육할 자료를 큰 차트로 만들었다. 내 혼자 힘으로는 벅차 체육선생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저녁 늦게까지 애써 완성한 차트를 책상위에 두었는데 아침에 보니 없어졌다. 여기 저기 찾아도 없던 차트는 박박 찢겨져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기가 막혔다. 문선생은 체육 선생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나보다. 교사생활 시작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교장에게는 잘 간수 하지 못했다고 꾸중을 듣고, 혼자 낑낑대며 무릎 꿇고 엎드려  밤새 다시 만들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무릎이 아프다.

   축구공을 구입한 체육선생이 운동구점에서 촌지를 받았는데 교장에게 가져 가는 것 같았다. 가정시간에 여학생들의 실습을 위한 수예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교장실에 불려갔다. "조 선생, 수예점에서 봉투 주지 않았나? 가져와요." "네?" 다음날 수예점에서 배달이 왔고 촌지도 함께 있었다. 곧장 교장실로 갔다. 나중에 관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무주임 댁에 부엌 달린 방이 비어있다고 해서 집을 옮겼다. 간단한 가재도구를 준비하고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마당 중간에 수도가 있고  안채가 있었다. 그 뒤켠에 개도 있고, 닭장이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쪽으로는 갈 일이 없었다. 어느날 교무주임 사모님이 어린 아들에게 소그소근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닭이 알을 몇 개 낳았는지 잘 세어 놓아. 조선생이 꺼내 가는지 잘 살피고 알았지?"  듣는 순간 피가 하얗게 머리 끝으로 치밀어 올랐다. 분이 났지만 참았다. 
"여기는 사는 것이 왜 다 이럴까?  가난 때문일까?" 용서하자고 마음먹고 치사한 날들을 용케도 참고 살았다.
내가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따지고 덤볐을 것이다. 왜 그때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어요?" 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교무주임에게 하극상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을까? 용기가 없어서였을까? 

   세상이 좀 더 아름답기를 바라는 젊은 날이었다. 순수하게 아이들과  호흡하고 싶어 택했던 첫 부임지에서 낭만보다는 아픈 상처가 있었다. 그 시절은 아직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고 낭만보다는 현실이 급급할 때였던 것 같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고 당장 짐 싸들고 떠나고 싶었던 시간이었지만 참고 견디어 이제는 내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의 장이 되었다. 

   봄이 오면 늘 그 곳이 생각난다. 입맛 돋구던 개망초 나물, 뜨거운 태양 아래 아이들과의 공놀이, 함께 노래 부르던 음악시간, 충청도 사투리를 따라하면서 웃던 일, 소풍 때의 노래와 박수는 잊을 수 없다. 세월이 가면 좋은일도 나쁜일도 다 아름다움으로 바뀌어진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오면 금방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리웠다. 주일 성가대 찬양을 하고 나면 다시 기차를 타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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