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2020.05.06 11:47

강창오 조회 수:22

힐러리

힐러리 는 몇년동안 같은 뮤직클럽에서 활동해왔던 멤버이다. 왜소한 몸매에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춤도 꽤나 솜씨있게 잘춘다. 누구의 노래가 나오면 그 가락에 맞춰 환한 웃음과 아울러 몸을 흔들어 율동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흥겹기 그지없다. 꾸밈없는그녀의 이런 모습이 종종 멤버들의 분위기를 사로잡곤했다.
클럽안에서도 나와 같은그룹으로, 같은 그룹좌석에 앉는데 만날때마다 두팔을 뻗어 듬뿍한 웃음을 선사하며 포옹을 하곤했다.
몇년전인가 그녀가 의사딸과 인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잘다녀오라고 인사를 한지 몇일안되어 병으로 급히 다시돌아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얘기를 들은즉 딸과 어느 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쓰러져 딸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측에 알려 긴급히 후송을 시켰다고 했다. 확인된 병명이 뇌종양이었다.
아무튼 일단 성공적인 뇌수술로 다시 회복되어 클럽에 나타났을때 우리 모두는 환호하며 그녀를 맞이했고 그녀는 다시 본연의 자세로 클럽무드를 고취시켰다.
그런데 작년말 그녀가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 사투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암울했다. 알고보니 몇년전 처음에 뇌종양을 수술하고나서 앞으로  5년이내에 재발가능성이 있고 그때는 힘들거라는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몇주동안 계속 사투를 벌인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만에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늘 환한 웃음과 율동으로 흥을 돋구워주던 그녀의 죽음이 한동안 우리 클럽멤버들에게 멘붕을 가져다줬다.
몇일후 동네 카톨릭교회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치러져 몇몇 클럽멤버들과 참석을 했는데 여지까지 참석해온 장례식에 참석인원이 그렇게 많은것은 처음보았다. 교회좌석이 빈틈없이 들어찼고 출입문 밖에도 사람들의 행렬로 빽빽했다.
헌데 더욱 놀라왔던건 그녀의 아들 하나가 자기 어머니의 eulogy를 얘기하는 과정에서였다. 자기 어머니가 유전공학박사였고 오랫동안 유전공학회 회장과 고문으로 봉사를 했다는것이다. 십여년을 같이 클럽 활동을 하면서도 진짜 힐러리에 대해서 알지못했던 우리들은 모두 의아해 혀를 내둘렀다. 늘 붙어다니던 단짝 한나도 알지 못했던터라 오히려 다른 회원들에게 그얘기를 물어왔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그녀가 노래와 율동으로 흥을 좋아하는 평범한 동네주부로 알았는데 그녀의 실체는 참으로 중요한 학자요 유전공학계의 vip 였던것이다.

오랫동안 영국에서 거주하면서 특별히 한국인들과 너무도 대조되는 문화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겸허함과 상대방 존중이다. 물론 인간사회니까 안그런사람도 있지만 일반적 문화가 내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내려다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를 내려다볼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남들의 위상에 대해서도 관심도 없거니와 자신의 위상을 그리 내세우지 않는것이다. 물론 상대를 알고나면 그만큼 상대의 존재가치는 판단할지언정. 여러 클럽활동을 통해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 왔는데 옥스포드나 캠브리지같은 일류대학을 나왔든지, 박사든지 아니면 갑부든지 몇년이 지난후에야 우연이 알게 뿐이다. 클럽활동이 끝나고 친교를 할때도 운전기사나 박사나 다같이 몰려가 맥주를 마시며 허탄하게 친교를 한다. 한국의 문화는 어떤가? 일단 만나면 학벌과 직업을 묻고 수입을  따져 상대의 잣대를 가늠하는 허식문화. 가끔 한국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대화하다보면 내가 묻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얘기하면서 그(녀) 가 어느대학출신이고 어느직장에 직위가 뭐라는등의 얘기로 우리 본인들과는 상관이없는 제삼자를 극진하게 띄어준다. 그리고는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기에 사람무시한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아무튼 다른건 둘째치고 이런 겸허함과 상대방존중의 문화가 빨리 한국사회에 토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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