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의 말

2024.10.05 17:07

조형숙 조회 수:2

모스크바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는 길은 끝없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누가 저렇게 많은 나무에 흰 페인트 칠을 했을까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얀 나무는 똑바로 하늘을 탐내고 섰다
 
어디가 나무이고 어디가 땅인지 지바고의 설국이 보이고
공산당이 싫어요 외치던 이승복의 외침이 들려왔다
생전 처음 발을 디딘 공산국가의 두려움이었다
 
외로웠어 너희들을 보니 반갑네 매일 누구인가 오겠지 목을 빼고 기다렸어 
그러는 동안 내 몸은 가늘어 길어지고 피부는 하얗게 변해 갔지
두려워 하지마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야 괜찮아 조금 추울 뿐
추위를 이기려 바짝바짝 붙어 있는 나무떼가 바람을 타고 자작거렸다

가늘고 길게 오르는 자작나무 늘 맑은 마음으로 기다리며 살아 고운 피부가 되었나 
사람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도 없는 긴 길을 버스의 흔들림으로 빠져 나왔을 때 
나트막한 시멘트 집이 나타나고 창문 밖에 희끄무리한 헝겊조각들
 
그제야  긴 숨 몰아쉬며 자작나무 속삭임에 귀와 눈을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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