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그리움은 비슷하다. 자신의 기억과 익숙한 장면들이 흐릿한 회색 빛깔 화면으로 보이고, 낡아서 누렇게 퇴색한 사진들은 천연색 사진에 익은 눈동자에 머슥하다. 이제는 비눗방울처럼 바람에 날려 터져 버리는 아쉬움의 시간들이다. 아직도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것들의 사라짐을 가슴 아파하는 과거의 어느 시간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기억으로 남아야 할 추억들이 뇌리에서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내가 성실하게 살아왔던 장소와 시간들에 대한 추억들, 아직도 남아 있어야 하는 일들의 급히 사라짐이 어린시절 속에 몽실몽실 피어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지금은 광화문이 서있는 곳에 중앙청이 있었다. 안으로 가면 영화 자막에 더빙하는 큰 홀이 있었다. 뒷쪽 녹음실에 마이크가 몇개 있고 앞쪽의 화면에서 돌아가는 영화 장면에 말을 넣어 영화를 완성시키는 작업을 했다. 어릴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곳에 가면 성우들이 있고 영화감독과 관계자들이 있었다. 영화감독이 쉿하고 검지를 입에 대면 나는 아주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화 화면에는 입은 움직이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가 천천히 돌아간다. 성우는 자기가 맡은 배역이 나타나면 곧장 마이크를 잡고 감정을 넣어 녹음을 한다. 더빙이라 했다. 아버지는 작곡한 영화음악을 필요한 장면에 녹음을 하는 일을 하셨다. 중앙청이 일제 잔재의 건물이라 하여 어느 날 무참히 부서져 내렸다. 추억의 장소가 하나 없어지는 아픔이 있었다.
지금은 동시 녹음을 하고 있어 성우라는 직업이 많이 줄었고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지나쳐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다시 갈 수 없어도 화려한 아름다움이었던 것을 안다. 수 많은 만남과 하루하루의 행보가 아름다웠고 열심으로 펼쳤던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나였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내 삶의 여정에서 아주 작은 것들도 아름답고 소중하다. 행복과 함께 했던 시간은 사라져도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영상의 아름다움, 영화관에서 보던 영화들을 이제는 방에서도 다 볼 수 있다. 없어진 것들의 파노라마가 지나간다. 대장간, 공동우물, 공중전화, 다듬이돌, 소달구지, 초가집, 재봉틀 ,커다란 간장 항아리, 손으로 농사짓던 농기구들 그 외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을까만 마음 속에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고 있다.
예금하러 은행가는 일이 사라져 간다. 은행원들도 줄어든다. 집에서 입금이 되고 젤로 통장에서 통장으로 직결되어 만날 필요도 없다. 전화 주문으로 온갖 물건을 사들인다. 옛날을 그립게 하는 것들이다.
리메이크 한 노래가 많이 나온다. 즐겨 부르던 노래가 시대를 따라 바뀐다. 60년대의 팝송이 사라져 간다. 감동 받았던 영화들이 사라져간다. 같은 시절을 함께 하던 사람들만이 즐겼던 노래들이 리듬을 달리하고 무용수들의 몸짓을 따라 빠르고 신나게 돌아가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건물들이 허물어져 내리면 구불구불했던 골목길이 죽 뻗은 아스팔트가 되고 아파트가 높이를 모르고 위로 올라 간다. 편리하고 좋은 집이 생겨 나면 사람 냄새가 사라진다. 렌트비를 낼 수 없어 정들었던 보금자리를 비워야 하는 원주민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굽은 허리로 된장국을 끓여 손자들을 행복하게 하던 할머니는 갈 곳이 없다. 할아벼지의 자존심을 세워주던 문패가 붙어 있던 대문이 없어졌다. 정들었던 곳에 다시 돌아올 기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이 하늘 저 먼쪽을 바라보는 허망한 눈동자 속으로 들어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어릴적 멍석을 깔고 온 동네 모여 돼지고기 돌려 굽던 마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신작로가 넓게 나고 높은 집들이 생기고 어느 곳이 할머니 댁이 있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사라져 버린 어릴적 모습들을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통곡하고 먼저 간 자를 서러워 했던 인간의 모습이 아름다웠었다. 지금은 의식의 절차가 되어 버렸다. 떨어져 내리는 꽃잎이 아름다운 것은 항상 있다는 지루함을 가져가 주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삶의 시간들이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들을 위해 적당한 때에 사라져 주는 것 또한 아름다움이다. 늘 같은 세상이라면 지루하고 그렇게 귀하지 않을게다. 자꾸 없어지고 사라지니 더욱 그립겠지. 내가 사는 공간을 비워 주고 이별이 있어 슬프지만 변화하는 세상 중에 사라지는 것이 아름답다. 남은 시간이 적으니 노년의 행실이 부지런하고 열정으로 배우고 좋은 것을 남기려고 애 쓰는 것이다. 그 모습과 정성이 또한 아름답다.
샌디에고 다운타운에서 고풍의 옷들을 싸게 구입했다. 옛 시절에 입었던 스타일의 것들은 추억을 되살려 주고 과거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속삭인다. 친숙한 과거의 것을 새롭게 전환하려는 바쁜 일상들을 잠시 비켜나 잊고 있던 것들로 잠시 쉬어가게 한다. 사람의 손길로 되던 것들이 기계의 작품이 되고 죽음이 없는 기계만 오래살아있는 세상은 오히려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인정에 울고 가슴아픈 이별을 하고 헤어지는 장면들이 사라진다. 인생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천지가 희어 밖으로 뛰어 나갔던 눈내린 동네가 있었다. 엘레이에는 눈이 없어 눈사랑이 희미해져 간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북으로 차를 몰아 맘모스로 가서 원 없이 보았던 흰 눈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놓아주어야 하는 청춘의 사라짐이 못내 아쉽고 젊은 시간이 사라져도 현재의 열정이 아름답다.
눈을 들어 거울을 보니 유년 청년 장년 시절이 떠오르고 사라진 것들이 아름다움으로 기억을 헤엄친다. 지금의 나로 내눈에 아름다운 것 거울속에 보이는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옛 것은 사라져 가지만 우리 마음에 아름다움으로 남아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글 쓰게 한다.
(이 글은 미주문학 2024년 겨울호에 올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