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1 14:03
토끼와 씀바귀 - 이만구(李滿九)
어릴 적 국민학교 오 학년 '실과' 과목에서
추억의 토끼 키우는 과정 챕터가 있었다
난 대나무 베어다 손수 토끼장을 만들며
울 아버지 밤사이 짜주신 망태기 메고,
황새목 낫을 챙기어 넣고 풀 뜯으러 나갔다
토끼가 토끼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씀바귀 꺾어다 토끼장에 넣으면, 토끼가
흰 뜨물 나는 이파리와 줄기 좋아하는 것
지금까지도 나 혼자만 아는 건지도 모른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날더러 공부하라고
어머니 장에 가시어 다 팔아버린 기억과
아버지 아들사랑 생각나게 하는 옛일이다
이국의 산책길, 장마통에 씀바귀 무성하고
뿌연 뜨물이 나오는 씀바귀가 틀림없는데
어둑해지는 때, 꽁지가 흰 토끼 가족들이
새끼까지 데리고 다니는면서 그냥 지나친다
그 귀한 씀바귀 소 닭 보듯 하는 산토끼들
이곳은 아마 토끼조차 살기 풍요로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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