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

2016.12.22 08:33

정해정 조회 수:219

아버지의 눈
                                                             정해정



   내 아버지의 눈은, 쌍꺼풀 이 없고. 눈 꼬리가 아래로 약간 쳐졌다. 얼른 보면 선하고 순하게 보이나, 누구도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는 위엄과 고집이 베어있는 눈매이기도하다. 내 가슴에 아버지의 그  눈 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찍혀 버린 것은 육십 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한반도 남쪽 작은 항구 도시 목포에서 쉰 살에 일곱째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곧은 마음 바다와 같아라. 하는 뜻으로 내 이름을 ‘'해정’'(海貞)이라 짓고 쉰둥인 나를 유별나게 귀여워했다.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신안군, 임자도 에서 새우어장으로 일본에 수출을 해서 젊은 나이에 엄청난 돈 을 벌었다. 아버지는<남양환>이라는 자가용 배와, 호남에서는 최초로 라디오를 가지고 일기예보를 들으며 그 당시 목포에서 하루 종일 걸리는 거리를 물 때 맞추어 서너 시간에 왕래 하곤 했다. 아버지는 목포에 어업조합을 만들고, 개화기 우리나라 수산업에 앞장을 섰다. 아버지 그늘이 만 리라고, 부근 섬사람들의 생계는 물론 똑똑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골라 목포 집에서 학교를 보냈다. 친척들도 서울로,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고, 학비며 생활비를 넉넉하게 대주었다.  

  아버지는 남한의 명사십리라고 불리는 끝도 갓도 없는 모래벌 과, 무인도 유인도 를 합쳐서 대여섯 개 의 섬 을 가지고 있었다.  

  행정상으로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태이도, 우리는 이 섬 을 <타리>라고 부른다. 타리는 아버지의 섬 중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치의 그섬을 아버지는 제일 사랑 했다. 흩어져 공부하는 친척들에게도 타리는 여름방학을 보내는 아주 좋은 휴양지이기도 했다.  

  타리섬 남쪽으로 설탕보다 더 고운모래벌이 있어 여름철엔 해당화가 만발하고,  섬의 양지바른 남쪽에는 커다란 기와집인 우리집 뒤쪽으로 조가비를 엎어 놓은 듯 옹기종기 아홉 채의 초가집들이 사이좋게 모여 있다.
섬의 뒤 언덕마루에는 몇 백 년이 넘었다는 팽나무가 우람한 모습으로 터줏 대감 처럼  버티고서있다. 건너다보이는 두 무인도 중 한 섬에는 한약재를 심고 염소 한 쌍을  넣었다고 했다. 그 것이 불고불어나 몇 천 마리가 되었는지, 몇 만 마리가 되었는지... 타리 뒷산 언덕에서 건너다보면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염소 떼들로 섬이 온통 움직이는 꽃밭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그 광경을 보시기를 참 좋아했다.   


  내 나이 아홉 살. 6.25 사변이 일어났다. 우리가족은 주변에 사는 친척들과 남양환을 타고 그 어디보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타리섬 으로 바리바리 싸가지고 피난을 갔다. 몇 달은 그럭저럭 휴양지로 편히 들 지냈다.
   우리아이들에게는 전쟁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을 못했다. 더구나  숙제도 없고, 거기다가 학교까지 안가니 마냥 즐겁기만 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란  송아지 만 한 사냥개 두 마리, 매리와 세리가 좋은 친구이기도해서 날마다, 날마다 즐겁기만 했다.  

  부산 나게 아침밥을 먹고 우리아이들은 여늬 날처럼 뒷산 수수밭에 꿩알을 찾으러 가는데 늘 앞장을 서던 그 녀석 들이 그 날은 왠지 따라 오지를 않는다. 우리는 그날따라 꿩알은 못 찾고, 산딸기랑 까막중이랑 따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타앙! 탕! 탕!!_ 하는 섬뜩한 소리가 섬 을 울린다. 어? 집 쪽 이다. 나도 몰래 정신없이 뛰어서 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마루로 갔다. 뭔가 집 주변이 어수선 해 보인다.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어린나이에도 무슨 예감이 있었던지 단숨에 구르듯이 집으로 내려왔다.언덕을 미끌어 지듯 내려오는데 동네 아낙 하나가 길을 비키며 다급히 말 했다.
  “언능 가봐라~ ”
   국군이 인천을 상륙했다는 소식에 지방폭도들은 큰 섬을 쑥밭으로 만들었고 그 불똥이 조그만 이 섬에까지 튄 것이다. 팔뚝에 붉은완장 을 두른 청년 두 명이 장총을 들고 처마 밑에 서있다.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아! 메리와 세리가…… 아까 그 총성 이 바로……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은 송아지보다 훨씬 크다. 피투성이가 된 메리는 긴 주둥이를 벌리고 이빨을 다 드러낸 채 였고, 세리는 순한 눈을 감지도 못하고, 검붉은 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 탓인지 피 범벅인 근육이 약간씩 꿈틀 거린다.    나는 꿈에서처럼 발이 움직여 지지가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 있을까…… 숨이 쉬어지지가 않아 겨우겨우 모퉁이를 돌아섰다.아! 아! 아버지가……우. 우리 아버지가……깡마른 붉은 완장이 아버지한테 긴 총을 드리대고 있고,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내 키보다 더 큰 금고에 열쇠를 돌리고 있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의 저 초라한 뒷모습.   나는 숨이 멎는 것 같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꿈에서처럼. 도대체 엄마는 어디 갔을까 도대체 엄마는 ……아버지는 금고를 다 열었는지 힘없이 돌아앉는다. 내 눈 과 마주쳤다. 그 순간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짜릿했다. 아버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미소가 무슨 뜻 이었을까?  

  아버지는 힘없이 두 팔을 벌려 내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엉겁결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품에 안겼다. 따뜻했다. 이것이 나한테 아버지의 마지막 체온이었다.   잠시 후 붉은 완장들에 호위되어 아버지는 나룻배를 탔다. 죽은 메리와 세리도 무겁게 억지로 끌어서 태웠다.
파도소리와 함께 서서히 멀어져가는 나룻배의 가운데에 선 아버지와 나는 다시 눈이 마주 쳤다.-그 눈……-그 눈……그 눈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문신처럼 그때 내 가슴에 찍혀 버렸나 보다.  

  아버지만 의지하고 살던 순한 섬사람들은 놀라 모두 쏟아져 나왔다.
점점 멀어져가는 나룻배를 멀거니 쳐다보며 감히 항의 한 번도 못해 보고, 남의 일인 양 구경만 하고  있었다.그때 진한 홍시빛깔 노을이 섬과 바다를, 온 세상을 피처럼 덮었다.
어디서 왔는지 거짓말처럼 까마귀 떼 들이 마당에 시꺼멓게 내려앉았다.  


  여기저기서 섬사람들이 수근 거렸다.
--어제 밤 내내 섬이 울었다고--.
   정말 섬이 울었을까?  

   모두 정신이 들기 시작 했는지 아낙 몇 명이 땅 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우덜은 인자 어찌살꼬!…… 어찌살꼬. 우덜은 인자……나는 정신이나가 멍청하게 서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어디 있다가 왔는지 엄마가 목석처럼 서있다. 엄마의 얼굴도, 하얀 모시 적삼도 온통 노을에 물들어 홍시색깔이다. 나는 엄마에게 쓰러질듯 기댔다. 엄마는 혼 까지 흘려버린 듯 헛개비 처럼 느껴졌다.  

   그 뒤 바로 아버지는 그놈들에게 학살당하고 시체는 바다로 던져 버렸다.
   훗날 어른들을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섬에 들여보낸 붉은 완장들은 외부에서 원정 온 생소한사람들이었고, 아버지의죄명은 <악질지주>에서 특별히<악질>자를 빼준 그냥<지주>라는 죄명이었다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버지가 학살당할 때 아홉 살 된 막내딸년을 그냥 두고 눈을 감을 수 없으니, 내 재산 다 줄테니 고 녀석이 열다섯 살 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위엄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사정사정했다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면도칼로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에 치를 떨었다.  

  아버지의 눈.  

  그 눈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손등에 눈물이 마르지 않게도 했지만 언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주기 도 했다. 그리고 바른길을 가르쳐준 눈 이기도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만히 불러 본다.  

  “아-부-지-이—-“


                 아직 떠도는 섬


                                 문인귀


육이오 때
정부자鄭富者만 그랬겠습니까만
목포 앞 바다에
시퍼렇게 뜬 눈 수몰水沒당했다지요


정부자鄭富者만 아비였겠습니까 만
아홉 살 베기 막내딸년
열다섯 살 나도록 살려만 주라고
살려만 주라고
유독 커다란 피의 절규
파도 위에 남기더랍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섬은
열다섯 해를 네 곱이나 살아온
막내딸 가슴에
아직껏 동동 떠있다는데
어찌 정부자鄭富者집 막내딸만 그러겠습니까.
                 -문인귀 시집- (떠도는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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