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만 향기나는 꽃

2009.02.01 09:50

정해정 조회 수:1554 추천:80

밤에만 향기 나는 꽃

정해정

  한반도 서 남쪽 항구도시 목포에서, 다시 서 남쪽으로 약 5시간 거리에 '타리’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섬에 집이라고는 모두 아홉 채가 섬의 양지바른 쪽에 조가비를 엎어놓은듯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이 섬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문명이나 공해가 전혀 없는 아름다운 섬이랍니다. 섬 사람들은, 대대로 밭 농사를 짖고  민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난하지만 아주행복한 어촌입니다.
  나는 그 섬의 한쪽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옹색하게 살고있는 이름도 없는  풀꽃 나무 입니다. 바위 사이라  뿌리를 더 뻗기도, 가지를 더 늘리기도 몹시 힘이 듭니다. 그러나 파란 하늘과, 초록 바다와.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투명한 햇빛과, 맑은 바람을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어떤 새벽이면 중국 상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도 합니다. 나는 초 여름이면 여지없이 연두색 이파리를 달고, 하얀 작은 꽃들을 송알송알 피워 냅니다.
  저녁 노을이 잘익은 홍시감 색깔로 온 세상을 뒤덮습니다.  햇님이 수평선으로 꼴깍 넘어가면 어두운 밤이오고 그때서야 나는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지요. 그 향기가 하늘까지 올라가는지 별똥별들이 향기를 타고 내려옵니다. 별똥별과 나는 밤새도록 세상 이야기,하는나라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 받으면서 밤을 지새운답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별똥별이 묻습니다.
  “얘! 너는 살아가면서 꿈이란걸 가져봤니?"  “꿈? 꿈이 있다면 목포 '유달산'에서 살아보고 싶은거야.유달산은 이곳처럼 바위산인데 엄청 큰 산이야. 그곳은 사람들도 많고, 볼거리도 많단다.그런 곳에서 한번만이라도 꽃을 피워 봤으면..."
  "그럼 여기서 불만도 있겠구나?"
  "왜 없어?. 불만투성이지.첫째는 내가 발을 묻고 사는 곳이 옹색한 바위 사이라 더 커질 수가 없어  불만이지만, 더 큰 불만은 밤에만 향기가 나는 것이야. 낮에는 향기도 없이 풀꽃으로 가만히 있다가 모두들 잠이 든 밤에야 눈을 뜨고 향기를 뿜으니......도대체 이게 뭐야? 삶의 의미가 없어.”
  “아니야. 모르는 소리. 언젠가 너는 엄청나게 큰 일을 하게 될 거야.”
  “언제?”
  “머지않은 날…”
  별똥별은 자기가 꼭 ‘예언자’나 된것 처럼 으시대며 말합니다.

  어느날 이었습니다.
섬의 날씨는 예상 할 수가 없습니다. 섬의 남자들은 새벽에 민어잡이를 나갔는데, 갑자기 바다에는 온통 짙은 안개로 덮더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폭풍우가 파도를 산더미 처럼 몰려와 섬을 삼키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어요. 이럴때면 섬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슴을 조리며 오직 바다에 나간 뱃사람들만 걱정하며 폭풍우가 잠들기 만을 가슴을 졸이며 기다릴 뿐 입니다.
  민어잡이를 나선 고깃배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성난 파도에 밀리며, 하루종일  나뭇잎 처럼 떠다니고 있었지요. 성난 하늘의 힘 아래서는 사람의 힘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배를 삼킬듯한 바람소리와, 돛대 퍼덕거리는 소리… 사방을 둘러봐도 눈을 꼭 감은 것처럼 깜깜함......빗물인지, 바다물인지모른 거센 폭풍우....... 사람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이 하늘에 모든것을 맡긴채 불안과 공포 속에서 목숨도 포기하고 무작정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무작정요.
  제일 나이가 많은 선장은 'ㅇ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배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데 까지 해보자' 하며 갑판으로 올라 갔지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 갑판 위에서 쿠르르쾅!, 쿠르르쾅!.비 바람을 맞으며, 미끌어지고 넘어지며 더듬더듬 기어서 어렵게 돛을 잡았어요.
  
그러다가 선장은 화들짝 놀랍니다.
  “어? 이게?...무슨 향기지?... 이 향기를 따라가 보자.틀림없이 육지가 나올꺼야."
  선장은 나이 많은 사람의 지혜답게 조심히,그러나 죽을힘을 다 해서 배의 키를 향기 나는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마냥 갔습니다.밀리고, 또 밀리면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은 순해졌고, 사방은 거짓말처럼 고요해 졌어요. 어스름 새벽이 오는지 어둠 속에서 거므스름하게 섬이 보입니다.섬이 가까워 올 수록 낯이 익습니다.
  "아!아! 우리 섬 이다. 우리의 타리......" 돌아온 것입니다. 그 향기 때문에......
선장은 소릴 질렀어요.
  "야!!! 살았다, 살았어,"
   고깃배 사람들은 맥이 빠지고 지쳐 생명을 하늘에 맡기고, 다 들 쓰러져 있었는데 선장의 외침소리에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오는 것일까요. 고깃배 사람들은 힘껏 만세를 불렀습니다.
  “야! 살았다. 만세! 만세!”
  섬 사람들도 희미하게 배가 보이자 웅성웅성 모두 바닷가로 모여왔어요. 환성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어요. 땅을치며 몸부림을 치는 사람도 있었구요. 뱃 사람들은 섬으로 올라와 모두들 가족 품으로 돌아갔지요. 그러나 선장은 궁금한 것이 있어 도저히 쉴 수가 없었지요.
   “그 향기가 뭐였을까?  내가 꼭 찾을꺼야. 꼭 ”
선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섬을 돌아다녔지요. 그러나 아무리 섬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었네요. 선장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돌아 헤매다가 어느새 밤이 되었어요.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선들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어? 저거다. 바로 저 향기야. 우리를 살려준 향기....”
  선장은 죽었던 자식이 살아온 것만큼 기뻤어요. 선장은 바위 가까이 가서 향기를 맘껏 피워내는 하얀 작은꽃들을 달빛 아래서 보았지요.
  “밤에만 향기 나는 꽃이 바로 너로 구나. 우리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 꽃이……고맙다...”
  다음 날 뱃 사람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그 꽃을 찾았는데 이름이 없나봐.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자.우리의 은인인 꽃의 이름을."
  선장은 가만히 생각합니다.
  “그래 밤에만 향기가 나 우리를 살려준 우리 섬의 이름을 따라 <<타. 리. 향.>>이라 하자”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나에게 이 섬의 이름을 따서 ‘타리향’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섬사람들과, 내가 모르고 살아왔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했습니다.
  날이 저물자 타리향은 향기를 더 짙게, 더 멀리 뿜어 내었습니다. 그때 별똥 별이 웃으면서 기인 꼬리를 달고, 하늘나라 에서 세상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울 엄마 은가락지 정해정 2016.12.22 216
100 아버지의 눈 정해정 2016.12.22 219
99 수호천사 정해정 2010.06.07 1012
98 봄편지 정해정 2010.03.12 968
97 가을하늘 정해정 2010.03.09 940
96 꼬마 마술사 비두리 정해정 2010.01.09 1471
95 금테 안경 [1] 정해정 2009.09.10 1595
94 고해성사 정해정 2009.09.10 1053
93 개똥벌레의 여행 정해정 2009.03.14 904
92 그림 같은 시, 시 같은 그림 정해정 2009.03.07 1037
91 바람 (신년시) 정해정 2009.02.02 884
» 밤에만 향기나는 꽃 정해정 2009.02.01 1554
89 조화 정해정 2009.01.23 744
88 구부러진 못 정해정 2009.01.23 758
87 깔깔문, 껄껄문 정해정 2009.02.01 734
86 가을 기차 정해정 2009.01.28 809
85 자존심 정해정 2009.01.04 694
84 반달 곰 정해정 2009.01.04 786
83 San Juan Capistrano 정해정 2009.01.04 692
82 기다림 정해정 2009.01.04 693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4,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