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댄싱 퀸

2015.07.31 07:20

노 기제 조회 수:529




20150615                   L.A. SUNNY 65

   이화 65 동기 L.A. 모임 연락병인 전서경의 편지다. 한국에서 있을 졸업 50주년 재상봉 만찬에서 우리가 한 순서를 맡았기 때문에 연습을 위해 모이라는 부탁이다. 이메일도 아니고 카톡 채팅도 아닌, 손수 타이프 하고 예쁜 삽화가 들어간 편지지에 조리 있게 써내려간 만나야 할 이유다.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서경이 말 한대로 무용 연습에 필요한 복장과 신발을 준비 했다.


   크고 작은 모임에 상관없이 필요에 따라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김영주가 우리가 맡은 무대를 위해 전문가의 레슨을 받도록 준비 했단다. 우린 그냥 시간 내서 일주일에 한 번, 8주를 참석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자기 몫을 담당하면 된다. 참석 예상 인원 10명으로 하고 8번의 단체 레슨비는 선불로 지불 됐다. 결석하면 김영주가 손해 본다. 내 돈 안 냈다고 자칫 방심하기 쉽다. 뭔가 꼭 이루자는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되고 첫 연습에 임했다.


   무용이라 말할까? 춤이라 일컬을까? 그럴듯하게 댄스라 부를까? 지난 경력을 보면, 하와이언 훌라 댄스, 라인 댄스 등은 공연을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이번엔 음악도 무척 빠른 젊은 애들의 몸놀림이다. 영주야, 너 어쩌자고 너를 기준으로 음악을 선택했니? 우리가 칠순인 거 잊었냐? 김영주 부부는 L.A.에서 검증 된 커플댄서다. 최근에도 두 시간씩 라인댄스가 일상인 영주에겐 생활의 일부 정도겠지만, 나머지 우리들은 평생 댄스에 디 자도 모르고 사는 몸치들임을 감안 했어야지.


   첫 날 강습에서 선생님이 보이는 시범을 각자 동영상으로 찍으며 집에 가서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충성을 약속 했다. 작은 스마트폰에 담은 동영상이 우리의 무대에 어떻게 작용을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동작을 보면서 따라 할 때도 헛 몸짓이 다반사였는데 무슨 재주로 혼자서 연습을 한단 말인가.


   아홉 명 숫자를 맞추고 원근각처에서 모이는 친구들의 사정도 가지각색. 졸업 50년 만에 처음 만나는 구희숙이 가장 멀리서 온다. 그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것 속죄하는 의미에서 두 번째 강습 날엔, 시간 전에 만나잔다. 구희숙이 점심 쏘겠단다.


   댄스 팀 9명에게 일일이 전화나 이메일 하기도 마뜩찮아 구릅 카톡 방을 만들었다. 대부분 스마트폰이라 가능하다. 더구나 FREE LUNCH 소식이니 기쁘게 알린다. 속속 답글이 달린다. 댄스 팀만의 채딩 방이다. L.A. DANCING QUEEN 65 라고 영주가 간판까지 걸었다. 뭔가 특별한 느낌이 살짝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얘들아,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영주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일찍 한국으로 떠나는 나를 비롯해서 연습 날짜에 순조롭게 모여지질 않게 된 거다. 은근히 걱정이 된 내가 번개 모임을 열고 특별 연습을 시도 했다. 동영상을 무작정 따라 할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을 끊어서 집중적으로 동작 연습을 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 때 이어 주면 된다. 순서 기억하기가 많이 수월 해 졌다.


   하면 되려니 자신 있었는데 기억력에 문제 있음을 알았다. 처음 모임에선 친구들에게 용기 주겠다는 생각으로 큰소리를 쳤다. 그 결과 책임감에 눌려서 오히려 더 외워지질 않는다. 친구들의 미소와 더불어 환청으로 들리는 소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기순이 너 열심히 해야 해. 틀리면 안 돼. 우린 뒤에서 너희들 보면서 할 거니까.” 맨 앞줄에서 모범 동작을 보여야 할 전애린, 김영주, 서병희, 박기순이다.


   5월 24일 외국에서 오는 친구들에게 이화 동창회가 사랑으로 마련해 준 숙소인, 바비앵 호텔에서 댄스 팀이 반갑게 모였다. 한 달 만이다. 준비가 잘된 듯 했지만, 안심 할 단계는 아니다. 공연이 내일 모레인데 순서도 완전히 외우지 못한 상태들이다. 외우긴 외웠는데 생각이 안 난다. 음악에 맞춰 한 번 흔들어 본 정도에 몸은 벌써 피곤하다고 아우성이다. 뒷줄 댄서들은 침묵으로 앞줄 댄서들을 주시 한다.


   그런 와중에 L.A. 팀이 대상 후보로 막강하다는 솔깃한 풍문을 영주가 전한다. 대상 상금이 오백만원이 걸렸단다. 모두들 술렁인다. 상금 타면 뭐할까? 로 연습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크다. 한 마디로 딱 잘랐다. 회장단 및 운영진들에게 역으로 기부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신이 나서 연습 할 힘이 솟는다.


   의상 선택이나 표정 관리나 신경 쓸 일이 자꾸 생긴다. 의견 모으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팀의 이름을 L.A. SUNNY 65 로 바꿨다. 곡목을 이용해서 인지도를 높이자. 재주껏 섹시(sexy)한 포즈로 관중을 사로잡아야한다. 살인미소를 잊지 말자. 그리고 얘들아 우리 정신 바짝 차려서 순서 까먹지 말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최선을 다 하자. 차례가 되고 줄 맞춰 무대에 섰다. 웃어라. 정신 차리자. 맨 처음 동작이 뭐였지? 음악이 왜 안 나오나?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단 느낌이다. 미쳤어. 지금 어떻게 화장실에 가니? 함성이 들린다. 아이돌 공연 때 들렸던 그 함성이다. 1 번, 2 번, 1 번, 3 번, 한 줄로 정렬,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1 번, 2 번. 옳지 순서는 생각났다. 틀리면 안 되는데. 얘들아,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우린 할 수 있다.


   마의 3 번, 아무도 기억 해 내지 못하고 애교 섞인 살인미소로 관중을 현혹 시킨다. 허리라인, 히프라인 쓸어내리는 동작으로 함성을 끌어낸다. 마지막 각자 특유의 귀염스런 포즈로 박수를 받는다. 가랑이 일자로 찢고 앉았던 순간이 길어지면서 재빨리 트위스트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신명나게 흔들어 본 한 마당이었다.


   그래. 우린 비록 칠순이라지만, 우리들 머릿속은 아직 이화여고 학생이다. 모이자. 뭔들 못 하겠니. 자주 얼굴 보고 뭔가 또 꾸며서 다음 무대에 올려보자. 아프지 말자. 연락병 서경인 여전히 바쁘게 연락망을 맡아 주고, 지원병 영주도 물러서지 말고 계속 지원 해 주고, SUNNY 65 를 이끌고 어디든 가자. 양로원 위문 공연, 병원 위문 공연, 노인정 위문 공연,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섹시하게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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