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그만의 독특한 향기

2015.07.31 08:18

노 기제 조회 수:282




20150624                         작가, 그만의 독특한 향기

                                                                                                노기제


   내가 썼던 글이 아니다. 어디서 주워 달았는지 싸구려 귀걸이가 걸렸다. 지저분하게 한 줄짜리 가짜 진주 목걸이로 치장 한 것도 보인다. 제대로 보호 해 주지 못해서 가슴이 아파온다. 내 잘못이다. 자신을 너무 낮추고, 겸허하게 보인 것이 화근이다. 남의 글을 성의 없이 잘라 내고, 구정물에 떨어뜨려 얼룩지게 하고, 어디선가 배급 받은 구호품으로 옷을 입혔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후회를 주체 할 수가 없다.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의 내 생각대로 작품들을 간수 했어야 했다. 내 글에선 내가 보인다. 내 글에선 나의 냄새가 난다. 선택해서 쓰는 단어 하나에도 내가 숨어 있다. 띄어쓰기나 철자법에 가끔 오류가 있을 때, 누군가 도와준다면 감사히 받아 고친다. 표현 방법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을 때라도 혼자 곰곰 생각한다. 고개 끄덕일 정도로 동의한다면 흔쾌히 고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손으로 내 표현으로 내가 고친다.


   그렇게 혼자 글을 쓰고, 간직하고, 세상 빛을 보게 하고, 내가 낳은 자식들이니 철저하게 내 방법대로 고이 키워 왔다. 몇 해 전 임헌영 교수의 세미나에 참석 했었다. 서로의 작품을 마음껏 비평하며 상처를 주고 솔직하게 느끼는 것을 나누는 방법이 바람직한 공부 패턴이라 들었다. 그 후, 세미나를 주관 했던 문학 단체에서 그렇게 모여서 공부를 시작 했다. 나도 마음 문 열고 함께 공부 해 봄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연회비를 내고 회원이 됐다. 여러 단체에 회비를 내고 회원이 되는 것을 기피하며 살다가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한 단체에만 속해 있어도 문인으로의 맥은 이어지는 것이니 문어발식 활동을 배제 했었다. 유명해지고 싶은 갈망, 문학상 수상의 욕심, 매스컴을 통한 알려짐, 어느 것 하나 도리질 할 항목이 없다. 나도 그런 거 다 하고 싶다. 나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때가 되면, 하늘이 허락하신다면 내게도 그런 일이 찾아오겠지.


   그러나 공부는 하고 싶다. 어느 단체 주관이던, 어떤 교수의 세미나던, 열심히 쫒아 다니며 배우려 했다. 강의마다 다 틀린다. 그 교수만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강의대로 따라하며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색깔을 보일 뿐이다. 그중에 나와 합할 수 있는 부분만 내 글에 접목을 시킨다. 그래서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는 작품 평에 의존하지 않는다. 의견을 들으면 나 스스로가 판단 한다. 좋은 의견이다. 예리한 지적이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도움이 많이 된다. 등등.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내는 지적은 그 사람이 공부하고 소화시킨 정도 만큼이다. 강의를 할 수 있는 검증 된 교수들이 말하는 지적 역시 오직 그 사람만이 가진 만큼일 뿐이다. 듣고 참고하는 선에서 나의 공부는 계속 되었다.


   등단이란 다리를 건너 온, 그러나 문학 년 수가 천차만별인 엘에이의 문인중 소수가 모여 공부를 한다. 검증 된 평론가도 없다. 자유롭게 남의 글을 읽고 짧은 시간에 느낀 것을 말한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 알 수 있는 기회라서 좋다. 열심히 빨간 볼펜으로 그들의 의견을 받아쓴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대로 내 글에 적용하진 않는다. 참고를 할 뿐이다. 간혹 내 맘이 좋다고 받아들이면 고치기도 한다.


   문학단체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미발표 작품을 올리고, 공부 한 후 수정 된 작품이 선택되어 작은 문집에 발표 되고, 그러는 순서가 있는 줄 난 모르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회원 전체가 모이는 월례회에 참석을 했다. 역시 몇 작품을 읽고 토론을 한다. 진지하게 작품 평이 쏟아진다. 맞춤법, 띄어쓰기 공부도 한다.


   편집인이 나누어 주는 작은 문집을 받았다. 이번에 글이 실렸으니 많이 가져가란다. 특별히 줄 사람도 없고 내가 읽을 것 하나면 된다. 책자를 펼쳐 내 글을 읽으려는 데, 낯설다. 분명 내 이름이 있고, 내 사진이 있는데 초장부터 글이 읽혀지질 않는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 호흡이 곤란 해 진다. 술술 읽혀져야 할 내 글이 탁 막혀 버렸다. 이거 아니다. 내 새끼 아니다. 첫 눈에 알아본다. 내가 엄만데 내 새끼가 아닌 걸 왜 모르겠는가. 두뇌 작용이 마비 됐다. 눈을 감았다. 뭔가 정신 줄을 놓아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호흡을 고르려 애를 쓴다. 내 앞에 펼쳐 진 만신창이가 된 내 글이 고통을 호소한다. 애처롭다. 아, 어쩌니. 엄마가 너무 미안해. 어떻게 하니. 죽을 것 같이 아프다. 가슴에 품어 줘야 한다는 생각 뿐.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내가 품을 수가 없다. 짧은 비명도 내 지르지 못하고 원망스런 눈길을 거두지 못한 채, 벗어나려 팔딱 거린다.

 

   서둘러 편집인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누가 내 글 손 봤느냐 물었다. 자기가 토씨 조금 고쳤단다. 토씨 정도가 아니다. 문장이 바뀌고, 단어가 바뀌고, 표현이 바뀐 걸 토씨 몇 개라구? 그러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를 연발한다. 어쩌겠나?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옆에 앉은 회장에게 말했다. “ 아아, 제가 고쳤어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 제가 그냥 고쳤어요.”


   공부 하겠단 생각으로 그런 모임에 출석을 하면서 단체를 이끌어 가는 회장직이 곤하리란 배려를 했던 내 잘못이다. 지역별로 나누어 세 곳에서 각각 다른 날 모임이 있다. 회장이니 먼 거리 마다 않고 세 곳을 다 다니며 회장 임무에 충실하다. 작품 평도 해 주고, 자신이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중이니 실습도 할 겸 열심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잘 한다 잘 한다 칭찬 해 주고, 용기 주는 의미에서, 있는 껏 낮아져서 내 작품 좀 봐 달라는 청을 넣곤 했다.


   그렇다고 내 새끼를 자기 뜻대로 입히고 바꾸고 홀대해도 된다는 낌새를 준적은 없다. 모인 사람 중 더러는 지적을 하는 대로 고치고 바꾸고 완전 자기 색깔을 지운다. 남의 의견은 고맙게 받아 두고, 나머지는 작가 자신이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알리기도 했던 걸.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쩌랴.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애쓰는 회장 응원하는 것도, 독자의 의견이 듣고 싶다는 바램도, 다 접자. 나 하던 방식대로 토해 내지 못하면 견딜 수 없으니 쓰고, 써서 태어난 내 자식들은 부족한대로 내가 돌보며 키우자.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말자. 편 모 슬하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 성공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숫자의 독자를 만나서라도 그들 가슴을 울리고, 그들의 공감을 받아 내고, 그들이 다시 읽기를 희망하는 내 자식들로 키워 내리라.


   내 작은 소망을 말하고 싶다. 누구든지 남의 작품을 받아 편집 할 때, 띄어쓰기, 맞춤법, 간단한 토씨 정도를 넘어서 자신의 물감을 살짝 섞으려는 시도는 삼가 해 주면 좋겠다. 순간적으로 발동 되는 유혹이다. 이것도 글이라고 썼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남의 작품에 자신의 향을 떨구고픈 유혹을 이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의 작품은 독자가 평한다. 내가 편집할 기회를 받았다 해서 내 색깔을 섞어 놓으면 안 된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 보잘것없는 자신의 지식으로 남의 옥고를 망치지 말자.


   나의 소홀한 돌봄으로 만신창이 된 내 귀한 새끼에게 사죄하는 의미에서라도 당연히 사과를 받아야 된다. 걸쳐진 누더기 벗기고 원래 내가 입힌 옷대로 사실을 알리는 정정기사를 실어야 함에도 뒷구멍으로 슬쩍 전화로 사과만 하고는 알아서 원작을 딴 데다 발표 하란다.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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