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있어요(퇴고 20140901)

2014.09.01 13:17

노기제 조회 수:187 추천:44





20040129                           이런 사람 있어요

                                                                                노 기제

        

        내겐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수줍은 마음으로 간직하고 싶은 추억입니다.  그래서 숨겨 놓고 싶답니다.  어떤 추억인지는 내가 말하는 만큼만 듣고 아는 척 하시면 된답니다. 앞질러서 내게 묻거나 하시면 소중한 내 추억이 상처를 받게 되니까요. 그냥 조용히 들어만 주세요. 그리고 머리를 끄덕여 주시면 난 그 추억을 오래도록 예쁘게 간직할 수가 있으니까요.

        갑작스레 편지가 쓰고 싶은 사람. 허나 할 말을 찾지 못하곤 시간을 보냅니다. 어디까지가 허용된 대화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음성이 듣고 싶다고 소망 합니다. 아주 가끔 만날 수도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안 될것 같아 쉽게 그 귀한 기회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리곤 이렇게 속삭입니다. 부부 사랑, 자식 사랑, 하나님 사랑 모두 건강하기만 기도한다고요. 진심이니까요. 보고프단 내 작은 소망따윈 언제나 지워야 하는거죠. 그래도 소망을 가질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소복이 쌓인 눈 길을 따스히 비추는 가로등, 아직도 숨 죽인 채 눈발이 날립니다. 여고동창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는 영상이지만 내 마음은 볼 수 있답니다. 그 사람이 조용히 그 길을 걷고 있음을.  곧 이어 내 모습도 보입니다. 그 사람 곁에서, 아니 그 사람 맞은 편에서 조용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머리에… 어깨위에 눈이 내려 앉습니다. 곧 우리 두 사람 서로를 마주 보며 살짝 미소하겠죠. 말 없이 함께 나란히 걷습니다. 아무 생각 안 해도 좋아요. 그냥 살포시 쌓인 눈 위에 우리 둘의 발자욱을 남기는겁니다.

        내겐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릴 때 생전 처음으로 내게 다가왔던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그 쪽이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냥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스무살까지 살았는데 나 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본 것입니다.

        난 겨우 그 사람이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의 반응이 너무 많이 빠르게 왔습니다. 현실로 다가온 사람은 그냥 꿈만 꾸며 좋아하기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큰일이다 싶었지요. 왜냐구요? 난 그 사람을 채워 줄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흔하게 꼽는 학벌이나, 인물이나, 집안이나, 뭐 이런 것들이 나를 겁나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때가 아닌거였어요.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겁나는 만큼 큰소리로 그를 내쳤습니다. 난 못해. 난 아냐를 외치면서 겉으론 무서운 표정으로 그를 쫓아 냈던거에요. 그러는 내 속은 울고 있었어요. 과분한 사람, 내가 가당치도 않은 사람, 그래도 바라보고 싶은 사람으로 간직했던거에요. 나만 아는 사람으로 숨겨 놓구요.

       많은 시간들이 흘렀습니다. 우연히 어떤 지인과 이야기 끝에 그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연결이 되었습니다. “연애했니? 언제? 그럴리가 없는데. 우리 동생이랑 고등학교 때 부터 좋아했었는데.  너랑 그럴 시간이 없었는데.”

        쉬지 않고 쏘아대는 공격에 난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혼미 해 졌습니다.   나도 잠시 그 사람을 의심 했습니다. 지인은 학교시절 친오빠 친구가 항상 자기 집에 들락이는 것을 보았었다니 나 보다는 더 많이, 더 일찍 그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나중에 안 일이죠. 지인과 나는 최근에 다른 인연으로 만난 사입니다. 그 동생과 내가 동년배이구요.
  
        갑자기 내 앞가슴이 풀어 헤쳐진 것을 느꼈습니다. 소중하게 숨겨 놓고 살짝 살짝 꺼내보던 내 보물이 누군가의 손에 나꿔 채임 당하는 듯한 위기를 당한것입니다. 우선 가끔 보아야 하던 지인을 안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볼 때마다 내 소중한 그 사람이 양다리 걸쳤던 비열한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너를, 즉 나를 좋아하진 않았을거란 암시를 계속 떠들어 댈테니까요. 아픔을 당해야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헐값으로 말해버리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듣고 싶지 않은겁니다. 불면 날아 갈세라, 잡으면 꺼질세라 조심스레 귀하게 불러야 할 그 사람의 이름이니까요.

       진실을 알고 싶어, 미국 방문중이던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물었습니다. 아아 그거어. 글쎄 우리 땐 뭐 나 너 좋다. 너 나 좋으냐며 연애하던 시절이 아니었잖아. 친구집에 드나들면서 친구 동생 먼 발치서 잠시 좋아했던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일 아닌가. 그래도 유일하게 여자친구라고 기억나는 사람은 오직…….

      거 보세요. 그 사람이 유일하게 여자친구로 기억하는 건, 나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허기사 첫 만남에서 단짝 친구와 둘이 똑 같은 순간에 그 사람을 맘에 담았던 때. 친구와 경쟁 할 수 없어 조용히 물러났던 내게, 확실하게 나를 선택 했음을 내 친구에게 알렸던 사람이었음이 기억나네요.

     자기 뜻을 분명하게 표현했던 단단한 그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이 망가져버리는 말을 가볍게 뱉아내는 지인과는 계속 만나고 싶지 않아요. 시기적으로, 그 사람이 지인의 집에 드나들 당시는 고등학교 시절이고, 나를 만나 대학 졸업식에 오라고 초청 한 시기는, 군대 다녀 와서 복학생 이었으니까요. 지인을 내 삶에서 빼어버릴 만큼 난 그 사람과의 추억이 소중하답니다. 아직도 예쁘게 내 가슴에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과의 잠간 만남이 강하게 숨쉬고 있으니까요.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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