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통곡

2017.03.29 07:01

김수영 조회 수: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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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통곡

                                    김수영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이 찾아오면 나는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 시골로 내려갔다. 삼면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높은 산이 아니라 마치 어머니가 옆으로 누워 아기에 젖 먹이는 모습으로 다가온 다정한 얕은 산이었다. 앞은 들판으로 통하는 길이 나 있는 확 트인 시야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향은 어머니 품이라고 했듯이 나에겐 언제나 가고 싶은 추억으로 점철된 따스한 곳이었다. 황혼의 들길에 서서 고향 집을 바라보는 운치는 참 아름다웠다. 저녁밥을 짓다가 매운 연기에 눈물을 빼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굴뚝에서 올라오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면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라와 발걸음을 재촉한 추억이 떠오른다.

     찾아갈 때마다 소꿉친구들이 나를 무척 반겨 주었다. 산 중턱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고 마을 입구는 큰 소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양 버티고 서 있었다. 나이가 지긋이 든 집안의 어른들이 긴 담뱃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며 소나무 밑에 툇마루를 깔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면서 낮잠도 자고 장기도 뜨고 화투 놀이도 하면서 더위를 잊고 있었다. 나는 더위를 시키려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할아버지들이 도시에서 왔다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예뻐해 주었다. 소나무 그늘이라 소나무 향도 좋을 뿐 아니라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어찌나 시원한지 나도 모르게 낮잠을 자기 일쑤였다. 솔솔 부는 이 바람은 무공해의 바람이요 온몸의 땀을 식히는 청량음료수처럼 상쾌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타고 매미울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 잠에서 깨곤 했다. 도시에서 들을 수 없는 매미 소리, ‘맴 맴 맴…..’.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울어대는 매미를 잡으러 매미채를 들고 쫓아다녔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개울물 따라 자라고 있는 포풀러 나무들이 일렬로 즐비 시 서 있었다. 하늘을 찌르듯 솟아있는 포풀러 나무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향해 첨탑처럼 솟아오른 포풀러 나뭇잎 사이에서 울어대는 매미의 합창소리, 나른한 한여름날의 시골농가의 정적을 깨트리는 이 매미울음 소리는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애끓는 가족사랑 비가였다.

     아버지가 급한 볼일로 시골에 내려가시자 인민군이 쳐들어와 안동 도시로 나오는 길을 막아 우리는 안동서 경주로 아버지 없이 피난을 갔고, 아버지는 홀로 시골에 남으셔서 가족의 생사를 모른 체 노심초사 오매불망 가족을 그리워하시다가 병을 얻어 오래 살지 못하시고 생을 마감하게 되셨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생사를 몰라 애태우실 때 그 비통한 심정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었을까. 어린 내 가슴에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고 아버지를 여읜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매미 소리를 들으니 아버지가 가족을 찾는 통곡소리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아버지의 뼈가 고향에 묻히고 내 잔뼈도 고향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시골에 오면 온통 아버지 환영으로 내 마음이 꽉 차기 때문이리라.

     매미는 일주일 혹은 여흘을 지상에 살면서 짝짓기를 하기 위해 그토록 사력을 다해 울부짖다가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그토록 짧은 생을 살기 위해 유충으로 7년에서 10년을 땅속에서 고난을 견디어 내야만 성충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와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고 하니 참 매미의 일생도 순탄한 삶이 아닌 것 같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긴 세월을 땅속에서 지내다가 일주일에서 열흘 반짝 일생을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는 매미는 어쩌면 인간을 닮았는지 모른다. 허나 인간은 계속 땅속에만 있다가 매미처럼 마음 껏 노래 한 번 못 불러보고 허무하게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삶이 될까.

     하잖은 곤충인 매미에게서 나무 위에 벗어놓은 매미껍질을 보면서 성충이 되기 위한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 인간은 죽을 때 옷 한 벌 입고 관 속에서나 화장을 당하는데 매미처럼 옷을 훌훌 다 벗어 던져 버릴 수는 없을까. 염려의 옷, 탐욕의 옷, 부귀영화의 옷, 권력의 옷, 명예의 옷 등등말끔히 벗어 던지고 새사람이 되어 남은 삶을 매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기뻐하며 생을 찬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생을 마감하기 전 자기 특유의 노래를 마음껏 목청을 다해 부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허무한 인생에 무언가 발자취를 남기고 가면 보람된 일이라 생각된다. 오늘도 열심히 매미처럼 울어보리라. 허공을 향하여, 사람들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목청을 돋우어 보리. 온 힘을 다하고 죽어 간 매미야. 잘했다. 너를 닮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목마른 내 목을 추겨 주는구나.

     요즈음 시골에 내려가도 그 옛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아련한 추억을 더듬을 길이 없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각인된 고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항상 고향 품에 안기어 살리라. 매미 소리를 듣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가족을 찾는 애끓는 단장의 아버지의 울부짖음이 매미 울음소리로 들림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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