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에서 웃지못할 헤푸닝

2017.03.30 08:41

김수영 조회 수:18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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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에서 웃지 못할 헤푸닝

                                       

     수필도 쓰고 시도 쓰다 보니 여러 문학모임에 가게 된다. 12월은 송년회가 많아서 여기저기 참석하게 되었다. 옷을 얇게 입고 재미시인협회에 참석했다가 으시으시 추워서 고생을 했다. 며칠 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송년회가 있어서 추위에 대비하여 두꺼운 겨울 오버코트를 입고 갔다. 용궁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히터를 털어놓아 무척 더웠다.

     코트가 두꺼워서 속 옷은 얇게 입고 갔는데 한 테이블에 앉은 오렌지글방 회원들이 삥 둘러앉아서 모두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가주 겨울 추위는 별로 춥지 않기 때문에 나처럼 추위를 대비해 중무장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기가 아둔해 보이고 더워 보이니 딱하게 생각해서인지 오버코트를 벗으라고 이구동성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성화를 했다. 거기다가 겨울 모자를 썼고 터틀넥크 셔츠를 입었으니 더욱더 더워서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고 정신이 몽롱해지기까지 했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코트를 벗어야 할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속 셔츠마저 벗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땀이 식기 시작하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정말 위기일발을 모면하여 안도의 큰 숨을 내 쉬었다.

     내가 오버코트를 못 벗는 이유를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몸매를 보자며 한꺼번에 여러 명이 졸라대니 나로서는 아찔했다. 어쩌자고 다 늙은 노인네의 몸매를 보자고 하는지 짓궂기 까지 했다.  ‘벗으라. 안 벗겠다.’ 실랑이하는데 중과부적이라 당할 재간이 없었다. 모두들 얼마나 깔깔거리고 웃어대는지 나는 완전히 사면초가였다. 에어컨 때문에 일촉즉발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솝 우화가 생각났다. 바람과 해가 걸어가는 행인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길 수 있는가 하고 바람을 계속 강하게 불어도 옷을 벗기는 커녕 더욱 옷을 마무새를 단단히 했지만 해는 더욱 햇빛을 내려 쬐자 더워서 옷을 자연스레 옷을 벗었다는 것이다.

     오렌지 글방에서 장기자랑을 하려고 각자가 많은 준비를 했다. 주제는 정몽주의 단심가

였다. 엉터리 영어 버전과 일본어와 중국어와 독일어 버전을 몇 사람이 각각 준비해서 단체로 일렬로 서서 발표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제일 어려운 독일어 버젼을 하라고 해서 못 한다고 사양을 했지만 허사였다. 할 수 없이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대학교 다닐 때 제이 외국어인 독일어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했지만 다 잊어먹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할 수 없이 멀리 한국에다 원조를 청했다. 오빠에게 부탁했더니 가까스로 번역은 하셨는데 독일에서 살다가 온 조카에게 보여 보라고 해서 조카가 끝마무리를 잘해 주었다.

 

 

번역은 다음과 같다.

Selbstvergessen(단심가)

Mein Körper kann sterben, wieder und wieder
Einhundertmal erneut
Wird in einem Haufen von Knochen und Staub zerfallen,
meine Seele kann oder kann nicht leben, aber
meine Loyalität zu meinem Land für immer bleiben unverändert.

젤습트페어게센(단심가)

마인 퀘어퍼 칸 스테르벤 비더 운트 비더
아인훈더트말 에어노이트
비르트 인 아이넴 하우펜 폰 크노헨 운트 슈타웁 체르팔렌
마이네 젤레 칸 오더 칸 니히트 레벤, 아버
마이네 로얄리태트 추 마이넴 란트 퓌어 임머 블라이벤 운페어앤더트.

원문

이몸이 죽어죽어 일백번(一百番) 고쳐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여 넉시라도 있고 없고
님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이시라.

영어 버전

My body may perish, again and again
Even one hundred times again, and
May turn into but a pile of bones and dust.
My soul may or may not live on. However
My loyalty to the king shall remain unchanged forever.

     독일어가 너무 발음이 강하고 딱딱해서 경상도 사투리 버젼을 만들어 읽었더니 한바탕 또 웃었다. 독일어 버전은 발음도  정확하게 써서 보내어 와서 그대로 발음하며 읽었다. 모두가 독일어를 잘 몰라도 엉터리 버전을 만들 수가 없었다. 국제전화를 걸고 이메일도 주고 받고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잘해 보려고 애를 썼다. 사회자가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줄 줄 알았는데 발음이 안 좋다고 해서 기분이 좀 언짢았다. 농담으로 말 한 줄 알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농담이라도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적적인 말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버코트 때문에 서로 한참을 배꼽을 쥐여 짜며 웃어대어서 앤돌핀이 많이 나와 끝마무리가 씁쓸했어도 넉넉히 이기고도 남았다. ‘웃으면 복이 와요가 개그맨들의 주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상들이 소문만복래라고 입춘대길과 함께 대문이나 기둥에다 창호지에 붓글씨로 써 붙여 놓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얼마나 좋은 말인가. 언제나 웃으며 사는 것이 좋지않을까. 웃음이 안 나올 때도 억지라도 웃어보면 좋겠다. 가짜 웃음도 진짜웃음의 절반의 엔돌핀이 나온다고 하니 웃음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건강에 좋은  명약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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