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미소짓는 해바라기

2018.09.25 07:03

김삼남 조회 수:9

 누워서 미소 짓는 해바라기    

                                                    신아문예대학 수필반 김삼남

 

 

 

 

 누워서 미소짓는 해바라기는 지난해 거두지 않아 밭에서 겨울을 보낸 엄마 해바라기에서 독생자처럼 씨앗이 떨어져 태어난 아들이다. 텃밭에 심은 약초 강황 밭에 해바라기 어린 싹이 콩나물 시루처럼 뾰족뾰족 돋아 났다. 뜻밖의 어린 새싹들이 자라는 것을 솎음질하여 키우다가 늦은 봄 텃밭 둘레에 옮겨 심었다, 거름이나 돌봄이 없어도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마치 산야초처럼 혼자서 잘 커가는 강한 해바라기였다. 유난히도 덥고 가물었던 금년 여름을 무사히 견뎌내는 것을 보니 더욱 사랑스러웠다. 집에 머무는 동안 조석으로 물을 뿌려 주었더니 3미터 가량 장승처럼 키가 크고 자그마한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꽃봉오리처럼 날로 부풀어 가는 모습을 홀로 두고 전주집으로 돌아왔지만 해바라기의 귀여운 모습이 영상처럼 떠오르고 혹시 바람에 낙상이나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태풍 '솔릭'의 경보가 발령되어도 집안의 안위보다 해바라기가 더 염려되었다. 텃밭은 높은 시멘트 담장 안에 있어 안전하지만 평시에 구봉산 골짜기 회오리 바람은 태풍처럼 나무와 곡식들을 헤치기 때문이다.

 

 다행히 태풍 솔릭이 방향을 바꾸어 우리나라에 큰 피해 없이 지나가고 더위를 몰아왔던 마녀같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가 조석으로 서늘한 9월을 맞았다. 홀로 두고 온 해바라기들이 쟁반같이 둥근 얼굴로 맞이할 모습을 그리며 진안 집으로 달려갔다. 차에서 내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노오란 해바라기 얼굴이 반기는 것을 보고 올 여름을 무사히 넘겼다고 안심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강황과 함께 있는 해바라기들은 너울너울 춤을 추듯 반겨주는데 대문입구 수문장 같은 한쌍의 해바라기는 일자로 나란히 시멘트 마당에 몸을 부리고 있었다. 무사한 해바라기들을 보며 호사다마라고 자위하면서도 누워있는 해바라기가 재생할 수 없을 것 같아 무척 안쓰러웠다. 예기치 못한 불행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도 오는 것임을 느꼈다.

 

 먼저 쓰러진 약초들을 세우고 누워있는 해바라기들을 살펴 보았다. 쟁반같이 둥글고 노란 얼굴이 사슴같이 긴 목에 의지하여 햇님을 바라보고 밝게 웃고 있었다. 잎새들도 너울너울 싱그럽고 장대같은 줄기도 상처없이 꼿꼿했다. 노란 꽃술에 꿀벌들도 열심히 꿀을 따고 있었다. 불현듯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총탄이 철모를 스쳐가도 살아남는 것처럼 해바라기도 바람이 할퀴고 간 전쟁 마당에서 노병처럼 살아 남은 것 같았다. 키가 커서 세우면 바로 넘어져 재생치 못할 불구자로 될 것 같아 자포자기하고 일생을 곱개 마무리하게 해주려고 했다. 밭으로 가서 뽑혀진 뿌리를 살펴보니 강풍에 버티다가 뽑힌 뿌리의 일부가 땅에 묻혀있고 반쯤 남은 뿌리 줄기가 흙을 달고 있었다. 사람과 같이 연약한 실핏줄이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여 생명을 지탱하면서 구세주의 구원을 기다린 것 같았다. 흡사 최근 태국소년 축구선수들이 동굴에 갇혀 동굴속 물을 받아 먹으며 구원을 기다리는 모습 같았다. 바로 삽과 괭이로 거름과 흙을 파서 누워있는 해바라기 뿌리에 수북히 덮어 주고 다진 뒤 그 위에 물을 흠뻑 주었다. 누운 한쌍의 해바라기는 응급처치를 받았으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고, 이제 살았다는 자신감을 갖고 누워서도 씨앗을 영글어 가며 보람된 삶을 누릴 것 같았다. 마치 불구의 몸으로 온전치 못한 헬렌켈러나 영국의 홉킹 박사처럼 인류에게 많은 공헌을 한 위인들이 생각났다. 누워있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어떠한 고난과 절망을 당해도 삶의 희망과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행운의 여신은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임을 느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살고 있다. 6.25전쟁과 월남전 참전, 각종 사건 사고와 천부적으로 불구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고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해바라기는 비록 연약한 식물이지만 재생의 희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같고 우리 주변에 불편한 이들이 많이 있어도 이들과 상부상조하면 기쁨과 밝은 세상이 되어 서로 웃고 행복하게 살 것 같다. 시멘트 바닥에 몸을 부린 한쌍의 해바라기는 환한 얼굴로 햇님을 맞으며 싱글벙글 웃고 있다. 늦가을이면 까맣고 튼실한 씨앗을 영글며 유난히도 덥고 태풍이 지나간 지난 여름이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201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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