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안식처

2018.12.19 05:30

이윤상 조회 수:9

노년의 안식처

행촌수필,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해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물들면, 나는 형님을 모시고 내장산을 비롯하여 대둔산, 덕유산 등지로 단풍구경을 다닌다. 하지만 금년 가을은 접어야 했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만인의 소망이다. 하지만 노년에 병원신세를 지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형수님이 4년 전에 별세하셨지만, 건강한 몸으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을 하시는 형님이 10월 중순에 효자동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시다 갑자기 주저앉아 허리가 삐끗하셨다. 근처 신경외과에서 물리치료를 1주일 받아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허리가 더 아프다고 하셨다. 바로 열린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MRI 촬영을 해보니 척추 압박골절이라 입원치료를 받으라는 진단이 나왔다. 바로 시술도 못한다고 1주간은 약물로 치료한 뒤 골절된 척추1 ~2번 사이에 실리콘 비슷한 끈끈한 약제로 시술을 하고는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말고, 용변도 간병사가 기저귀로 받아내며, 밥도 누워서 드시라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시술하고 1주일간 주사제로 치료를 하더니 퇴원하라고 재촉했다. 일주일 만 더 있게 해달라고 원장한테 사정을 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하니 퇴원할 수밖에. 척추시술은 잘 되었으니 바로 퇴원하라는 명령이다, 환자상태에 따라 입원기간이 그렇게 엄격한지는 몰랐다. 아무래도 불안하여 소견서, 입원확인서를 발급받아 퇴원하면서 바로 삼천동 노인복지병원으로 갔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니 2개월 입원하라고 하면서 210호 병실로 안내했다.

 노인복지병원은 전주시에서 건립하여 2000년12월 개원하였으며 원불교삼동회재단에서 위탁 운영하는 병원이다. 어떤 환자든지 간병사는 쓰지 않고 병원에서 전담하니 환자 부담금도 저렴하다. 평소에 드시던 약은 간호사가 보관했다가 매일 시간에 맞추어 갖다드리고 매일 2~3회 혈압, 체온을 측정해가며 일주일에 1회씩 간병사가 목욕도 시켜 주니 이런 효자병원이 어디 있겠느냐 하시며 매우 만족해 하셨다. 완산고등학교 캠퍼스 동편 야산지역으로 주변 산책하기도 아주 좋은 위치다. 이 병원이야 말로 노인들의 최상의 안식처로 느껴졌다. 나는 거의 매일 병원에 가서 형님과 정담을 나누면서 병원의 운영상황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형님은 특별히 치료를 받는 입장은 아니다. 자유롭게 산책하고, 외출도 하시며 그냥 편안히 쉬면서 요양하기로 했다. 이 병원에 처음으로 와보니 6.25 참전용사, 상이용사, 국가유공자 등 보훈처의 지원을 받는 환자들이 많았다. 장기요양하는 분들과 휴게실에서 담소를 하며 식사도 휴게실 식탁에서 몇몇이 도란도란 함께하니 댁에서 혼자 식사하시는 것보다 쾌적한 공간이었다. 식사메뉴를 보니 안골노인복지관의 점심메뉴 정도로 반찬이나 국 등이 잘 나왔다. 물론 며느리와 딸이 김장김치, 외장아찌, 사골탕 등을 갖다드리니 찬거리는 충분했다.

 병원 구조는 1층은 원무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한방과 진료실이고, 2층~4층은 병실이다. 병실 당 5명씩 층마다 60명 환자가 입원하니 최대 180명까지 수용한다. 침대가 비워지면 바로 대기 환자가 입원하여 빈 침대가 별로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병원이다. 누구나 만년에는 이런 복지병원에서 요양하다가 고종명(考終命)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먼 곳의 실버타운에 가는 것보다 낫겠구나 싶었다. 그러자면 이런 병원을 시에서 더 많이 확충해야 하지 않겠는가? 2층 병동에서 거동이 자유로운 입원환자 중에서 형님과 90세 동갑내기가 여섯 분이 있어서 말동무로 친하게 대화를 나누니 심심치 않다고 하셨다.

 2층 병동에서 특별한 효자 한 분을 보았다. 아마 40대 후반이나 됨직한 젊은 남자가 자기 부친 병간호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분은 병원 내 별실에서 침식을 하면서 아버지를 휠체어에 싣고 실내운동을 시켜 드리며 매일 목욕을 시켜드리고 옷도 갈아입히는 등 24시간 간호를 전담했다. 그 아버지는 상체는 건전하고 말도 잘하며 의식은 완전한데 하체를 못 쓰는 상태였다. 담요로 하체를 덮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다리를 절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젊은 아들이 생업은 접어두고 병원에서 아버지와 동거를 하면서 간병하니 만고의 효자로 보였다.

 순창이 고향이라는 어떤 분은 90세 참전용사인데 상이용사 5급으로 매월 150만원 연금을 받고 복지병원비도 보훈처에서 지원한다니 우리나라 복지는 세계에서 최상이 아닌가 싶었다. 2층 병동에 보훈처 지원받는 입원환자가 6명이고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원 받는 자도 상당 수 있다니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하지만 생로병사는 자연의 섭리인지라 누구도 만년에 노인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전국적으로 노인병원이 1,500여 개이고 노인요양원은 1만5천 개라는 신문보도를 보았다. 하지만 태부족이란다. 전주시는 앞으로 이와 같은 복지병원을 증설해서 노인들의 안식처를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무리 복지병원이 친절하게 대우한다 해도 어디 내 집보다 자유로운 공간이 있으랴. 내가 권유해서 11월 한 달을 간신히 복지병원에서 요양하신 뒤 형님이 퇴원하고 싶다 하셔서 30일에 댁으로 모셨다. 아무리 호사스런 병원이나 실버타운이 있을지라도 자기 집이 가장 자유롭고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겠는가? 다만 취사는 하지 않고 마트에서 햇반을 사다놓고 사골탕과 몇 가지 밑반찬으로 식사를 하시겠다니 형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아무쪼록 여생을 강녕(康寧)하게 사시기를 기도드리며 자손들이 모여 90회 생신을 축하해 드리니 매우 흐뭇해 하셨다.

                                                [2018. 12. 8. (토)]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7 2018년 우리 집 10대 뉴스 김학 2018.12.25 6
366 냉이는 로제트 윤근택 2018.12.25 6
365 동백꽃 백승훈 2018.12.25 3
364 학마을의 벽화들 김삼남 2018.12.24 4
363 늦기 전에 이형숙 2018.12.23 6
362 산행 김학 2018.12.21 5
361 수줍어 말못하는 금강산이 김학 2018.12.21 3
360 아내바라기 곽창선 2018.12.20 6
359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장정식 2018.12.20 9
358 좋은 수필쓰기 서종남 2018.12.20 190
357 전통수필과 현대수필의 비교 손광성 2018.12.20 5
356 대상을 여는 일곱 개의 열쇠 손광성 2018.12.20 4
» 노년의 안식처 이윤상 2018.12.19 9
354 으아리꽃 백승훈 2018.12.18 9
353 박사골 쌀엿 최기춘 2018.12.18 5
352 이종여동생 김세명 2018.12.18 7
351 내 조국도 사랑해다오 한성덕 2018.12.18 5
350 좋은 글을 쓰고 싶으세요 두루미 2018.12.16 12
349 배추의 변신 김학 2018.12.16 11
348 누구나 나이가 들면 곽창선 2018.12.1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