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수필과 현대수필의 비교

2018.12.20 06:13

손광성 조회 수:5

전통수필과 현대수필의 비교
-고전 수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손광성


우리는 지금 수필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등록된 수필 전문지만 해도 20종에 가깝다. 종합지도 수필을 싣지 않고는 잡지 운영이 어렵다고 할 정도이다. 전국적으로 수필가가 몇 명인지 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줄잡아도 2천명은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가히 수필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질적 수준이 양적 팽창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 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나와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처방도 내려져 있지 않다. 더러 있다해도 추상적 이론에 머문 경우가 많다. 구체적 전범과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의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난세에는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현재가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문 수필 번역의 필요성을 절감해 오다가, 1997년부터 번역에 착수하여 1999년에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을 출간한 바 있다. 2년 동안 작품을 선정하고 번역하면서 현재 우리 수필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몇 가지만 들어 본다면 첫째는 구성이 산만하고 통일성과 논리성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언어의 절제와 균형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문장의 율격, 넷째는 대상을 보는 시각이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우선 고전 수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문 문장의 모든 갈래에 대해서 알 필요는 없다. 현대수필 창작에 원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갈래에 대해 공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權瑚(권호)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고전 산문은 모두 13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1.序跋類(서발류) 2. 論辨類(논변류) 3. 奏議類(주의류) 4. 詔令類(조령류)
5. 書簡類(서간류) 6.贈序類(증서류) 7. 傳狀類(전장류) 8. 碑誌類(비지류)
9.哀祭類(애제류) 10.頌讚類(송찬류) 11. 箴銘流(잠명류)  12. 辭賦類(사부류)  13. 雜記類(잡기류)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3번, 4번, 8번과 11번을 제외한 나머지 9개의 체재는 모두 문학성이 높은 글로써 현대수필이 필요로 하는 몇 가지 덕목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지면상 논변류와 전장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논변류은 說里(설리)와 立論(입론)이 수미 일관하는 논리적 형식을 취하는 체재이다. 이치를 따지고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예술성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이치나 의견 또는 교훈을 주장할 때 보조관념으로 드는 부분이 매우 구체적 사건이나 사물이어서 자못 예술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또 설은 예외없이 산문제지만 작품에 따라서는 길고 짧은 어구를 적절히 배치하거나 대구, 대조 등을 구사하여 文勢(문세)를 증강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문답법을 써서 극적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현대 수필에 원용하기에 좋은 형식이 아닌가 한다. 문답형으로는 이규보의 <虱犬說(슬견설)>을 들 수 있고 서술형으로는 강희안의 <盜子說(도자설)>을 들 수 있다. 도자설의 화소만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글의 구성을 보기로 한다.

⑴ 옛날 한 고을에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이 있었다.
⑵ 아들 도둑은 성장하면서 아비보다 힘이 세고 귀가 밝고 민첩해서 여러 도둑의 칭찬을 받았다.
⑶ 그러자 아들은 자만심에 빠져서 아비보다 자신이 여러 면에서 낫다고 자랑했다.
⑷ 그런 아들을 본 아비는 어느 날 야밤에 아들을 데리고 어떤 부잣집에 들어갔다.
⑸ 아들이 곳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비가 밖에서 자물쇠를 잠가 버리고 문을 흔들어 주인을 깨워놓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⑹ 주인이 나와서 보니 곳간 문은 잠긴 체여서 안심하고 들어가려고 했다.
⑺ 주인이 그대로 들어가면 아침에 하인들에게 잡힐 것이 뻔하다고 생각한 아들은 꾀를 내어 손톱으로 박박 긁어 소리를 냈다.
⑻ 들어가려던 주인은 곳간에 쥐가 든 줄 알고 와서 자물쇠를 열었다.
⑼ 순간 아들은 곳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⑽ 그러나 주인은 하인들을 깨워 그를 쫓아왔다.
⑾ 아들은 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자 꾀를 내어 큰 돌을 들어 연못에 던졌다.
⑿ 하인들은 도둑이 연못에 빠졌다고 소리치고 그리로 몰려 갔다.
⒀ 그 틈을 타서 아들 도둑은 집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다.
⒁ 집에 온 아들은, 자식을 사지에 몰아넣고 자물쇠를 잠그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대들었다.
⒂ 그러자 아비가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도둑이 되었다. 남에게서 배운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지혜는 한계가 없어 그 응용이 무궁무진한 법이다. 내가 너를 곤경에 처하게 한 것은 장차 너를 안전하게 하고자 함이다. 네가 만일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어찌 쥐 소리를 내고 돌을 던져 위기를 모면할 것을 알았겠느냐? 그러나 너는 그것을 터득했다. 그러니 이제 너는 천하의 대도가 된 것이다.
(16) 후에 아들은 세상에 제일가는 도둑이 되었다.
(17) 아들아, 도둑질 같은 천하고 악한 일도 스스로 터득한 지혜가 있은 후에야 세상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에 있어서이겠느냐. 너는 모든 일에 自得(자득)함이 있어야 한다.         
                                                                                    - <도자설>, 강희맹

이 글에서 ⑴부터 (16)까지는 구체적 사례이고 (17) 은 이 글의 주제가 드러난 중심 단락이다. 이렇게 설은 구체적 사례가 길고 說里(설리) 부분은 간결하다. 이때 설리 부분이 길면 지루한 잔소리가 될 우려가 있다. 전숙희의 <설>도 고전 수필로 치면 說(설)에 해당하지만 주제 부분이 글 전체의 반을 차지함으로써 지루한 설교조의 글이 되고 말았다.
설의 형식을 취하여 글을 쓰면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감동이 커서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런 설의 체재를 취하면서도 제목에 ‘설’자를 넣지 않는 것이 현대 수필의 특징이다. 윤오영의 <마고자>, 김태길의 <경주>, 유달영의 <초설에 부쳐서> 그리고 목성균의 <앞자리>는 다 설류의 체재를 원용하여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태준의 <이성간의 우정> 같은 관념적이 글도 ‘설’의 형식을 빌려 썼더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적인 문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관념을 구체화시키지 못한 것이 흠이다.

그런데 이 설이 문체상의 특징은 사라지고 그냥 장식적인 허사로 타락해 버린 예가 있다. 정진권의 <煙奴說(연노설)>과 강호형의 <酒奴說(주노설)>, 김수봉의 <釣奴說(조노설)>이 그것이다. <연노설>은 담배를 끊기 힘든 과정을 일기체로 쓴 글이다. 고전 수필 설의 특성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제목에 설자를 붙인 것이다. 바로 잡으면 <煙奴日記(연노일기)>로 해야 옳았을 것이다. 강호형의 <주노설>과 김수봉의 <조노설>은 雜記類(잡기류)이므로 그냥 <酒奴記>, <釣奴記>로 했어야 옳았다. 옛 법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사용한 결과라 하겠다.

둘째 辭賦類(사부류)는 한문 고전 수필 가운데 문학성이 가장 높은 체재이다. 辭(사)와 賦(부)는 운문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추이에 따라 산문화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사부류는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형식은 운문이면서 내용은 산문인 조선시대의 가사와 비슷하다.
사는 전국시대에 나타났다. 굴원은 전대에 사를 계승하면서 민요적 성격을 가미하여 楚辭(초사)를 지었다. 조사는 詩經(시경)의 4언 정형을 타파하고 5언 또는 6언, 7언을 적절히 구사하여 산문화시켰다. 도잠의 <귀거래사>는 산문화된 시의 좋은 예라 하겠다.

부는 탄생 과정에서 사의 영향을 받았다. 부는 네 가지로 나뉘는데, 古賦(고부), 徘賦(배부), 律賦(율부), 文賦(문부)가 그것이다. 고부는 한 대에 성행하였는데, 운문과 산문의 결합된 형태이다. 운문 부분은 4언, 6언을 위조로 하되 3언, 5언, 7언을 쓰기도 하고 보다 긴 구절을 넣기도 한다. 배부는 모든 자구가 짝을 이루는 것이 특색이다.

율부는 對偶(대우)를 추구하는 형식이다. 문부는 당나라와 송나라에 이르러 한퇴지등에 의한 고문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대우와 운율을 중시하던 배부나 율부를 거부하고 장중하고 질박하고자 한데서 생겨난 형식이다. 다시 말해서 문부는 장중할 뿐만 아니라 화려한 면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구양수의 秋聲賦(추성부), 소식의 赤壁賦(적벽부)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다음은 성간의 新雪賦(신설부)의 일부이다. 김진섭의 <백설부>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해는 임신년 동짓달에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 바람이 사방에 휘몰아져 날씨가 처참하고 산과 바다가 희미하다. 내가 화로에 재를 헤쳐 차가운 불을 쬐고 휘장을 치고 갖옷을 입고 바깥 풍경을 보며 탄식하되, “아마 큰 눈이 올 징조로군” 하였더니, 이윽고 해가 서산에 지고 눈이 펑펑 내리는데, 꼼꼼히 한들한들 나불나불, 처음에는 처마 끝으로 살살 내려오더니 창문으로 살랑살랑, 퇴와 마루에 하얗게 비치고 난간과 창을 솔솔 때리며, 소나무 대나무를 눌러 꺾어 버릴 듯, 연못에 깔려 점점 평평해진다. 형세가 산만하고 동서가 아득하여, 짐승은 무리를 잃고 날뛰며, 새는 둥지를 잃고 놀라 날아간다. 조금 있으니 구름이 다 흩어지고, 달이 좀 밝아지니, 산이란 산은 모두 희고 골짜기는 푸른빛을 잃었는데, 희고 흰 은하수로도 그 깨끗함을 비유치 못하겠고, 물결 없는 바다로도 그 밝음을 비기지 못하겠다.
              - 양주동 역 국역 동문선: 민족문화추진회, 한문생략  東文選 1

김진섭의 <백설부>는 현대문이어서 거기에는 고전 수필의 규격화된 운율은 없지만 문장의 율격을 많이 고려한 글이다. 그가 백설이라는 제재를 제목으로 삼으면서 끝에 ‘부’를 붙인 것은 바로 자기 글의 체재를 고전 한문의 부에 접목하여 그 운율적인 효과를 얻고자 한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백설부>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아니, 남이 읽는 것을 귀로 들을 때 배는 더 즐거운 것이다. 그 후에도 ‘부’자를 제목에 붙인 수필들이 적지 않게 발표되었지만 운율적인 면은 전혀 고려에 넣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허한 장식어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김태길의 <待春賦(대춘부)>, 박송의 <待春賦>가 그 예다. ‘설’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라 하겠다.

봄의 발걸음은 예식장으로 들어서는 신부의 걸음보다도 수줍다. 한 걸음 나섰다 한 걸음 멈추고, 한 걸음 멈추고 한 걸음 물러선다. 한 걸음 물러섰나 하면 다시 두 걸음 나서고, 두 걸음 나섰나 하면 다시 한 걸음 물러선다. 물러섰단 멈추고 멈추었단 다시 나서며 나섰단 다시 멈춘다. 그러나 결국 봄은 앞으로 걸어간다. 앞으로 걸어갈 것을 믿고 기대할 수 있는 까닭에 이른 봄 하늘에는 한 줄기 광명이 뻗쳤다.
민주주의 발걸음도 봄의 수줍음을 본받은 것인가. 한 걸음 나섰다가 한 걸음 물러서고, 한 걸음 멈추었다.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도 결국은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리라고 믿고 싶다. 다만 여기에도 조그마한 차이는 있다. 봄의 발걸음은 저절로 앞으로 향하여 움직이지만, 민주주의의 발걸음은 이것을 앞으로 채찍질하는 인간의 의지를 고대한다. 봄은 하늘과 땅에 달렸고, 민주주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 <대춘부>, 김태길
                                         

말의 운율적인 면을 고려한 흔적이 없는 건조한 산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 붙은 ‘부’는 장식에 불과하다. 내용상으로나 이치를 설파한 것으로 볼 때 오히려 <待春說(대춘설)>이라 해야 옳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사부류의 율격을 그대로 빌려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율격은 글을 낭창거리게 함으로 문장에 탄력을 준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셋째 傳狀類(전장류)에서 傳(전)과 狀(장)은 고인의 일생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狀(장)은 고인과 가까운 친구나 후손이 쓰는 것이지만, 傳(전)은 고인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쓴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行狀(행장)은 그 사람의 미덕만을 칭송하게 되지만 전은 그 사람의 생전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은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은 처음에는 司馬遷(사마천)과 같은 사가들이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공과를 평가하여 후세에 오래도록 기리기 위한 목적에서 쓰기 시작한 것인데, 일반인들이 자기 주변의 특정한 사람에 대하여 전을 쓰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문장 양식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전을 쓸 때는 몇 가지 일화나 구체적 사실을 들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것으로 傳記(전기)와는 다른 형식의 글이다. 다시 강조한다면, 전이든 장이든 모두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고전 작품 가운데 ‘傳’자가 들어간 것 가운데 수필이냐 소설이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작품들이 많다. 시대의 추이에 따라 꾸며낸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여 독자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을 전공하는 학자는 박지원의 <허생전>이나 <민옹전> 같은 글을 소설로 보는가 하면, 수필가 윤오영은 그것들을 모두 수필로 보았다. 같은 대상을 달리 보는 것은 객관적 분류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필은 사실의 기록이라면 소설은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이다. 따라서 소설이냐 수필이냐 하는 분류 기준은 허구성 여부에 두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춘향전, 심청전, 허생전, 민옹전 같은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실존적 인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소설이다. 전장류가 아니다. 그러나 궁중소설로 보는 <한중록> 같은 것은 필자가 겪은 사건을 서술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허구성이 없다. 직접 겪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제 삼자에 대해서 쓴 것이라도 허구성이 없으면 그것은 전장류의 글이다. 이런 글은 수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율곡 이이가 자기의 어머니에 대해서 쓴 <先比行狀(선비행장)> 같은 것은 대표적인 전장류에 드는 작품으로 수필로 봐야 한다.

오늘 우리 수필 가운데 대부분이 자전적 수필이다. 이런 수필을 쓸 때에도 고전 수필에서 전범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선 객관성과 진실성을 배워야 한다. 자기나 자신의 부모나 형제를 미화해서는 안 될 것이며, 자기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각색해서도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고전 수필 가운데서 현대 수필이 배워야 할 점에 대해서 논변류 가운데 설과, 사부류 가운데서 부와, 전장류 가운데서 전과 행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밖에 잡기류와 애제류 같은 것이 오늘날 수필에 가장 근접한 체재지만 지면상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오늘날 수필의 공통된 결함은 문장이 탄력이 없다는 것, 구성이 산만하여 통일성과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어에 대한 절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장 민감한 청소년기를 소설적 문장에 익숙해 왔다는 데 있지 않은가 한다. 수필의 문장과 소설의 문장은 엄연히 다르다. 수필의 문장이 절제되고 강한 응집력을 요구한다면, 소설적 문장은 절제보다는 세부적 디테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스토리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그렇게 강한 응집력이 있는 문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필은 그런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예로부터 문장에 중점을 두어 왔다. 그래서 산문 작가를 문장가라 했고, 글을 짓는 것을 도를 닦듯이 했다. 文章道(문장도)란 말이 나온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오늘날 수필은 주로 내용에만 신경을 쓰고 말의 결이나 문장의 맛에는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고전 수필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런 전통적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문예운동》2006년 봄호



[참고문헌]
1.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 손광성 편역 / 을유문화사 1999
2. 고전수필개론 : 權瑚(권호) / 동문선 1998
3. 에세이문학 80호 : 에세이문학사 2002
4. 한국대표수필문학전집 9권과 10권 : 을유문화사 1975
5. 국역 동문선 1 : 민족문화추진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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