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그리고 다음 날

2020.02.05 01:15

신팔복 조회 수:2

설 그리고 다음 날

안골은빛수필 신팔복

 

 

 

 

  민족의 대 명절, 설은 귀성객들로 고속도로가 한 차례 몸살을 앓고 나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목을 맞은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싸고 질 좋은 물건이 있을까 봐 대형 매장도 둘러보았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는 항상 바빴다.

  오늘도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도마질하는 소리가 유난히도 청량하게 들렸다. 고소한 냄새가 거실로 퍼져 나왔다. 나는 진공청소기로 큰방, 작은방을 휘젓고 거실을 청소하는 동안에도 자식들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밀리는 차량에 사고라도 날까 봐 눈이 자주 가는 전화기를 그대로 놀렸다. 도중에라도 연락이 오기만을 토끼 귀처럼 세우고 기다렸다.

  작은아들 세 가족이 먼저 도착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제쳐두고 우르르 달려가 어린 손자를 덥석 보듬어 추켜올리며 “성윤이, 오느라 고생했네.” 하고 말했다. 애완견도 반갑다고 폴짝폴짝 뛰며 달려들어 입을 치켜 새우고 “우우∼”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용하던 집안이 갑자기 웃음으로 넘쳐났다. 손자는 내려놓자마자 바둑판으로 달려가 바둑알을 흩뜨려 놓고 놀기 시작했다. 추석에 와서 놀았던 기억을 잊지 않은 듯했다. 그때보다 조금 커 보였다. 바둑알을 옮기며 “하나, , ,” 하고 제법 숫자를 셌다. 그걸 본 아내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직 기저귀를 찬 손자의 엉덩이를 ‘달싹달싹’ 다독여 주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우르르 방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뒤뚱뒤뚱 거실로 뛰어나오기도 했다. 갑자기 방과 거실이 놀이마당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큰아들 가족 네 명이 도착했다. 추석에 만나고 이제 만나니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큰손자 성준이는 성윤이를 보더니 달려가 안아주었고 또 손을 잡고 다니며 잘 데리고 놀았다. 재원이도 성윤이를 어루만지며 그냥 예뻐했다. 곧바로 몰려다니며 북새통이 벌어졌다. 밤에 운전하고 내려온 큰아들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이들은 장기와 바둑알을 가지고 놀다가 소파로 올라가 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즐거워했다. 놀이 기구가 없어도 잘 어울렸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사촌형제의 우애가 커서도 이렇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옛날에도 설에는 친척이 모이고 오랜만에 객지에서 돌아온 친구를 찾아 소식을 듣고 어울렸다. 연날리기, 윷놀이, 널뛰기, 숨바꼭질, 쥐불놀이 등 민속놀이를 즐겼다. 특히 좁은 골목길에서 깡통 차기로 숨바꼭질을 했던 놀이는 그 시절에만 있었던 추억이다. 집 앞, 텃논에서 새끼로 엮은 공을 차며 놀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누구는 서울서 공장에 다니며 돈을 잘 벌어 가방 가득 선물을 가져왔고, 누구는 어렵게 남의 집안일을 돌보며 살고 있다는 둥 이야기는 뉴스거리가 되어 방앗간 기름 냄새처럼 금방 퍼져 나갔다. 예쁜 서울 말씨에 고운 옷과 새 신발을 신으니 고향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했던 시절이라서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초가지붕 위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두메산골에 어둠이 내리면 놀이도 끝났다. 집집마다 등을 켜 처마에 달았고 밤늦도록 부엌에서 떡을 쪄냈던 어머니는 찾아온 자식들을 위해 설맞이 장만을 했었다.

  가족들이 모였으니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식을 하고 싶었다. 맛이 좋다는 순대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순대전골을 주문하고 또 각자 먹고 싶은 음식도 시켰다. 빙 둘러앉아 즐기는 식사는 감미로웠다. 가족의 의미가 더욱 새로워지는 시간이었다. 순대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젓가락이 분주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로 입가심을 하는 동안 큰아들이 계산했다. 동생에게 미루지 않고 형 노릇을 하는 것 같아 든든했다. 손자들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로 갔다. 이것저것을 고르더니 할아버지가 사줘야 한다고 했다.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도 할아버지는 물주가 되었다. 연장으로 나무를 썰고 깎아 맞춰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던 내 어린 시절에 비하면 장난감들이 무척 좋아졌다. 요리조리 맞추어 잘 가지고 놀아서 좋았다. 움직이는 자동차, 변신하는 로봇 등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눈을 떼지 않고 가지고 놀았다. 인지기능과 창의력이 발달되었으면 좋겠다.

 

  설날은 병풍을 두르고 아내가 장만한 음식으로 차례상을 차렸다. 옛날 아버지가 한복에 두루마기를 챙겨 입었던 것처럼 나도 용모를 단정히 갖추고 가족 모두가 조상님께 차례를 올렸다. 새해에 가족의 건강도 기원했다. 어린 손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눈을 뜨고 제 엄마와 아빠를 쳐다봤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내와 함께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었다. 올해 성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축하하며 30만 원을 주었더니 제 누나가 동생만 준다고 뾰로통해졌다. 4년 전에 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걸 본 제 아빠가 얼른 만 원을 더 주어 달랬다. 내가 어렸을 땐 세뱃돈도 적었다. 공책 값 정도였다. 지금은 잘살게 되어서 세뱃돈도 커졌고 의무가 되었다. 제 할머니한테서 받고, 제 아빠와 엄마로부터 받고 또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로부터 받으니 손주 한 사람당 27만 원은 넘었다. 어디에 쓰려는지 받는 대로 각자 가방에 꼭꼭 집어넣었다.

  고속도로 혼잡을 피해서 자식들이 서둘러 떠났다. 아내는 이것저것 보따리를 챙겨 손에 들려줬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딸 가족이 왔다. 든든한 사위와 차츰 의젓해지는 손자 손녀가 반가웠다. 세배를 받고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을 주었다. 나와 아내도 자식들로부터 효도비를 받았다. ‘저들 살기도 어려울 텐데.’ 고마웠다. 자식들이 떠난 방을 아내가 쓸고 닦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집안이 빈 둥지처럼 조용해졌다. 만남은 짧고 또 기다림은 길어진다. 언제나 바쁜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자식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키운다고 키웠어도 물가 높은 서울 생활에 큰 보탬을 주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걸린다. 경자년 새해에도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바란다.

                                                                               (2020. 1. 31.)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07 유행하는 주먹치기 홍성조 2020.02.07 16
1206 외모 콤플렉스 두루미 2020.02.06 6
1205 링겔만 효과 두루미 2020.02.06 5
1204 트로트와 보이스 퀸 김창임 2020.02.06 38
1203 11호 산악자전거를 타고 홍성조 2020.02.06 1
1202 수필아, 고맙다 한성덕 2020.02.06 222
1201 창임 섬 김창임 2020.02.05 0
1200 한 손으로도 박수를 치다 두루미 2020.02.05 2
1199 대왕참나무의 월동 김현준 2020.02.05 23
» 설 그리고 다음 날 신팔복 2020.02.05 2
1197 혹시 이 사람이 홍성조 2020.02.04 4
1196 나눔과 사랑 김용권 2020.02.04 3
1195 달콤한 즐거움 김용권 2020.02.04 4
1194 참는다는 것 한성덕 2020.02.04 10
1193 큰올케 신효선 2020.02.04 7
1192 입춘이 왔다 두루미 2020.02.03 27
1191 얘야, 밭에 가자 홍성조 2020.02.03 4
1190 서울의 낮과 밤 두루미 2020.02.03 3
1189 임플런트 치료를 하면서 김창임 2020.02.02 22
1188 90년대생이 온다 정근식 2020.02.0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