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행복

2020.02.17 16:50

박제철 조회 수:6

노년()의 행복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고사성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거나 나이 들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옛날에는 늙으면 아들과 같이 사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3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보통이었고, 4대가 한 집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핵가족 대가 되면서 따로 살기 시작했다. 나도 아들딸을 출가시켜 독립시키고 부부만 산 지가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수십 년간 부부모임을 같이 한 다섯 부부가 모여 송별회 겸 저녁식사를 했다. 태어나서 80여 년을 살았던 고향을 등지고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대전으로 이사를 간다는 친구를 위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남들은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났어도 나이 들면 다시 고향을 찾는다는데, 노년에 고향을 떠나야 되는 한스런 사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친구는 젊었을 때 다친 골반에 문제가 있어 10년 주기로 수술을 받으며 살았는데 이젠 늙어서 수술도 할 수 없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었다. 부인은 2-3년 전부터 치매기가 있었는데 요즈음엔 더 악화되었다. 외출했다가 집도 찾아올 수 없고 조금 전에 한 말도 잊어버리는 등 병세가 악화되어 이젠 둘만의 힘으로는 살수 없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둘이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서로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남의일 같지가 않다.

 

 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니 아들과 며느리가 걱정인 모양이었다.

 “아버지, 이젠 서울로 올라가서 같이 살게요. 서울에 가면 병원 가기도 좋고 또 병원비도 저렴하니까요.

 사실 나도 아들 곁으로 갈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 더구나 아들이 우리 부부가 살 집을 몇 년 전에 준비해 두었다. 아들 내외가 사는 집괴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지근거리에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그 집엘 직접 가보기도 했었다. 아들은 서울 립대학에 근무하고 있다. 그 대학병원에 가면 가족 혜택을 많이 받는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는 사람도 없는 그곳에 가서 어떻게 살지? 이곳엔 친구도 많고 형제자매들도 있고, 내 취미활동도 마음껏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가고 싶은 마음이 사르르 없어지고 만다.

 “아들, 그리고 준석 에미야, 고맙다! 아직은 그런대로 건강하니 고향에서 살고 너희들에게 의지해야 할 때쯤 너희들 곁으로 갈께.”

  오죽하면 이삿짐을 싣고 나면 시아버지가 애완견을 보듬고 차에 먼저 탄다는 말이 있겠는가? 풍자겠지만 이삿짐을 싣고 아버지를 버리고 갈까봐서 그런다고 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부모를 챙길 아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 아닌가?

 

  아들딸 결혼시켜 독립시키고 건강할 땐 두 내외가 살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아들집으로 가고 더 심한 문제가 생기면 요양원으로 가서 생의 마감 준비를 하는 것이 요즘 추세인 성싶다. 그러나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저승가기를 원하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성싶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아프다가 가기를 희망하는 '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희망사항이고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난 1월 친구 조문을 간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팔십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만에 저 세상으로 갔다. 가는 날도 자기가 이 세상에 온 생일날에 갔다. 생일을 축하하고자 아들 딸 자까지 왔었단다.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고자 나가자며 일어서다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호송하였으나 소생하지 못하고 자기 생일날 저승으로 갔단다. 전날까지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화투놀이도 했다한다. 가족들도 한마디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 서운할 뿐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가셨다며 위로를 삼았다.

 

 요양원에 지인의 면회를 간 일도 있다. 병실은 적막이 흘렀다. 각 병상에는 여읜 노인들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숨만 쉬고 있는 분이 있는가하면,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요양원을 현대판고려장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런 절차에 의해서 가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누구도 그 길을 피할 수는 없다.

 

 요즈음은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하는 웰 다이빙에 눈을 뜨고 있다. 존엄사 시행 2년여 만에 85천여 명이 신청했으며 치료불가능 상태에 이르렀을 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도 누적 57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존엄사를 선택했다 한다.

 

 구구팔팔이삼사든, 현대판고려장이든, 존엄사든 누구도 면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고 죽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가 문제다. 아들딸이 부모를 챙긴다지만 행복까지는 챙겨줄 수 없지 않는가? 노년의 행복은 내가 챙겨야 한다. 정보의 바다에는 클릭만 하면 노년의 행복한 삶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눈이 어두워 지고, 귀가 어두워 지고, 냄새도 못 맡으며, 입맛이 없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은 나이 먹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리(順理)다. 평생 저축만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자기고집만 세우다가 마을 모임에서 쓰리아웃 되는 친구도 보았다. 그런 친구들에게서도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노년을 보낼 것인가 교훈을 얻는다. 지식은 얻으면 활용해야 내 것이 되고 노년의 삶이 중요함을 알았으면 실천하면 된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노년의 나에게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아들 곁으로 떠나는 친구도 노년의 행복과 안녕이 같이하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2020.2.17.)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47 그 녀석 장지연 2020.02.19 7
1246 징검다리 홍성조 2020.02.18 6
1245 풍년화 백승훈 2020.02.18 4
» 노년의 행복 박제철 2020.02.17 6
1243 아카데미상 4관왕을 수상한 한국영화, 기생충 강우택 2020.02.17 5
1242 첫눈 내리는 날 홍성조 2020.02.17 1
1241 길은 멀어도 신팔복 2020.02.16 10
1240 고향 땅 구연식 2020.02.16 9
1239 동전의 위력 홍성조 2020.02.16 3
1238 막내여동생 신효선 2020.02.16 1
1237 의사와 환자 김창임 2020.02.15 3
1236 한 개인의 영화사 한성덕 2020.02.14 1
1235 행복 바이러스 홍성조 2020.02.14 2
1234 가족의 기쁨 김용권 2020.02.14 1
1233 베트남 의료봉사의 의미 김용권 2020.02.14 5
1232 미륵사지 곽창선 2020.02.13 14
1231 아, 영화감독 봉준호 김학 2020.02.13 52
1230 가까이서 오래 보면 정근식 2020.02.13 17
1229 쪽지덕담 박제철 2020.02.13 322
1228 사랑의 콩깍지 한성덕 2020.02.1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