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보고 싶다

2020.02.28 13:43

신효선 조회 수:2

친구야, 보고 싶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입춘이 지나서인지 새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낌새가 여기저기서 움트고 있다. 아직은 눈이 올만도 한데, 밖에는 눈이 아닌 비가 내린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남편 서재로 건너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한테 시집온 거 잘한 거지?” 의외의 질문을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거실로 나와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니 잊었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동창생 S가 머리에 스쳤다. S는 오십여 년 전 중학교 3학년 때 내 짝궁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S는 전주 J 여고에, 나는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S는 형편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있었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도 소식을 주고받았다.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S와 가끔 전화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날도 S와 다방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S한테 가끔 중매가 들어오는데 우리 동네 쪽에서 나왔단다. 같은 동네 초등학교 남자 선배가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만나지는 못했단다. 듣고 보니 소개해 준다는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초등학교 선배였다.

  사실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펜팔로 지내다가 도중에 소식이 끊겼었다. 그러다가 내가 군산에서 조산원 수습생으로 있을 때,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아 군산으로 왔다. 우리는 군산에서 가끔 차도 마셨다. 나는 마음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잘 안다면서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다. 선배한테도 연락했더니 쾌히 승낙했다.

  토요일 오후 2시에 부안 모 다방에서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날 직장에 출근하니 S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침 친구네 집 모를 심게 되어 집안일을 도와야 하니 못 나오겠단다.

  나는 약속 시간에 선배가 기다리는 곳으로 나갔다.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는 친구보다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군산에서 선배와 만날 때도 조금은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로만 대하고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기에 친구에게 소개하려 했다.

  선배는 처음부터 진심으로 나를 좋아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선배가 초등학교 때 어린이회장을 해서 잘 알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난감했다. 그 뒤로는 시간이 날 때면 보건소로 전화를 해 만나기를 원했지만 나는 일부터 멀리했다.

 

  성격이 내성적인 나는 결혼보다 어느 섬이나 낙후된 곳에 가서 봉사하며 살고 싶었다. 결혼적령기가 되니 친구들이 내 곁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주위에서 소개도 들어오고 부모님은 노처녀가 되어가는 딸을 위해 중매로 만나게 했다. 그때도 선배와는 가끔 만나고 있었다. 선배의 진심을 알고부터 좋은 곳에서 중매가 들어와도 만나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고심 끝에 어느 날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선배의 집이 바로 옆 동네이므로 부모님도 잘 아는 처지였다. 아버지는 선배나 부모님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당신의 딸이 부족하여 장남의 며느리로는 안 된다고 했다. 별나게 부모님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내가 어려운 형편의 시골로 시집가 고생할 것이 걱정되었나 보다.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했다. 처음엔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던 나도 '짝사랑 십 년에, 첫사랑'이라는 선배의 말에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결혼하여 사십여 년 동안 어려운 터널도 지나고 세월의 파도를 헤치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콩깍지가 낀 채로 변함없이 대해 주는 남편에게 황혼에 접어들면서 더욱 고마움을 느낀다.

  친구 S는 나보다 먼저 멋진 남자 만나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아이도 어느덧 마흔 살이 넘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그 많은 세월 동안 아직껏 한 번도 연락을 못 하고 지냈다.

  추억의 빛깔은 다를지라도 누구나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옛 친구 S가 생각나듯이…. 무심한 세월이 우리를 황혼의 문턱까지 데려왔다. 그 친구도 어디선가 나처럼 추억의 한 토막을 꺼내 보며 은은한 삶의 향기가 나는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친구야, 보고 싶다!'

 

(2020'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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