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이 설었네

2020.03.02 23:40

최정순 조회 수:4

떡이 설었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최 정 순

 

 

  섣달 그믐날이면, 어머니가 시키지 않아도 도구질로 떡쌀을 빻아 놓았다. 그날은 닭장 문도 열어주지 말아야 한다. 닭들이 떡쌀을 보면 사정없이 쪼아댔다. 내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여기저기 털이며 닭똥을 갈기고 다니는 통에 정신이 없다. 내 어린 시절엔 방앗간도 멀리 있었다. 떡 만들기가 어찌 밥 짓기 같던가?

 

  설이 가까워지면 가래떡이나 떡쌀을 빻으려고 길게 줄을 섰던 골목 사람들의 진풍경도 사라진 지 오래다. 골목골목 방앗간도 사라졌다. 사라진 게 방앗간뿐인가? 지금이야 돈만 쥐고 나가면 이름도 모르는 온갖 떡이며 계절과 국경을 넘나드는 과일까지, 호랑이 눈썹도 사 올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더 앞서 전화 한 통이면 구매 끝이다. 그래서 ‘온라인, 오프라인’이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누가 만들기 번거로운 떡을 집에서 빚어 먹겠는가?    

 

  먼저 쌀을 불려서 물기를 빼야 한다. 다음엔 소금을 약간 넣고 돌확에서 빻아 채로 처서 몽근 가루로 만든다. 이 짓을 골백번 하다 보면 쌀이 쌀가루가 되었다. 옹기 너럭지에 담긴 하얀 쌀가루를 무엇에 비할까? 지금껏 그렇게 하얗고 정결한 가루를 보지 못한 것 같다. 행여 티끌이 들어갈까 봐 보자기로 덮었다. 종일 도구질로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아렸지만, 어머니 보따리 속을 상상하고 칭찬들을 일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막차를 타고 전주에서 오실 어머니가 오늘도 꼭 오실 것만 같은 망상에 젖어 거칠어진 내 손바닥을 만져본다.

 

  이제 떡을 쪄야 할 상서로운 시간이다. 시루에 떡을 안치는 어머니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액막이라도 하듯이 네 쌍둥이 같은 남동생들은 범접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시루에 김이 오를 때까지 오줌도 못 누게 하셨다. 솥과 시루 사이를 잇는 시룻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안다. 바람 빠진 타이어로는 달릴 수 없는 자전거처럼, 시룻번이 터져 김이 새기 시작하면 아무리 막아도 소용이 없다. 아궁이 불 조절이며 뜸 들이는 일까지 정성을 쏟아야 하지만, 떡의 성패는 시룻번에 달려있다. 이렇게 어머니는 떡을 신령스러운 음식으로 여겼다.

 

  떡을 아무 때나 해 먹었던가? 제삿날이나 명절, 생일 등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나 만든 음식이 아니던가? 떡이 잘 안 익은 것을 “설었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신앙 같은 떡이 어쩌다 잘 안 익으면 “정성이 부족하여 떡이 설었다.”고 믿었다. 그리고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남모르게 걱정하셨다. 어머니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집 ‘한중이어머니는 초사흘만 되면 부정 타는 것을 막으려고 복떡을 쪄서 부뚜막에 놓고 빌었다. 고사지내는 떡을 복떡이라고 했다. 자전거로 ‘간장 장사’를 하여 새끼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남편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행동을 내가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장성하여 중년에 접어든 아들이 어려서는 얼마나 개구쟁이 짓을 했는지 모른다. 울음소리가 커서 동네를 흔들었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다 발목을 다친 일이며, 개구리나 뱀을 잡아 꼬리를 흔들어 내던지는 일, 주판알을 콧구멍에 넣어 이비인후과 신세를 진 일 등 다 들추자면 끝도 없다. 그 아들이 다섯 살 무렵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남편의 첫 발령지 ‘고창 상하 유정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큰 항아리를 묻어놓은 노천 뒷간에 풍덩 빠저버린 것이다. 다섯 살짜리치고는 똘똘했던 놈이라 항아리 가장자리를 잡고 올라왔으니 망정이지, 어미의 무지로 큰 변을 당할 번했던 일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말을 들은 주인집 할머니는 부리나케 나더러 ‘뒷간귀신’을 달래야 한다며 ‘똥떡’을 찌라 하셨다. 뒷간귀신을 달래는 떡을 똥떡이라고 했다. 당황한 나머지 언제 떡을 만들겠느냐고 했더니 밀가루개떡이라도 만들어 아들에게 먹이라 하셨던 일이 역력하다. 그래서였을까? 아들, 딸 낳고 지금껏 잘 사는  게 ‘밀가루 개떡’ 덕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이실직고하지만 나는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고 나면 신트림이 올라와 속이 거북스럽다. 그래서 떡을 “개 꼬막 보듯 한다.” ‘밥순이’인 나는 떡을 2월 같다느니, 어정쩡한 음식이라고 폄하했다. 끼니로 먹기도 그렇고 간식으로 먹기는 더욱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본격적인 겨울도 아니고 초봄이라고 부를 만큼 화사한 기운이 도는 것도 아닌 2월같이 어정쩡한 떡. 또 만들어 먹기는 얼마나 복잡한가? 그렇다고 배고플 때 밥 한 그릇에 김치나 얼큰한 김치찌개면 그만인 것을, 도무지 이런 반찬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떡을 나로서는 좋아할 리가 없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어도 무방한 음식으로만 생각했다.

 

  몰라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오늘날 아무리 기계가 떡을 만든다 해도 떡이 없는 잔치가 어디 있으며, 정성이 없는 떡이 어디 있으랴. 예나 지금이나 초상마당이나 잔치마당 할 것 없이 제자리를 꼿꼿이 지켜온 떡을! 나는 그냥 먹는 떡으로만 보고 갈구했다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떡이 설었네!”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떡이 설익을 때마다 정성을 더 쏟으신 어머니! 떡이 곧 어머니였다

                                                                      (202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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