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미득국

2020.06.23 01:34

김길남 조회 수:16

현대판 미득국(未得國)

안골은빛수필문학회 김길남

 

 

 남이장군의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너무도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이다. 무속인들은 남이장군을 신으로 모시고 받드는 경우도 있다. 귀신을 볼 수 있었고, 또 귀신을 쫓았다는 설화의 탓도 있지만, 억울하게 죽은 넋을 기리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남이 장군은 27세에 병조판서에 오른 걸출한 인재였다. 물론 조선 태종의 외손자이고 세종의 조카이며 세조의 고종사촌이니 금수저를 훨씬 능가하는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 다르기는 달랐다. 그는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27(1467)에는 이시애의 반란이 일어나자 우대장으로 참여하여 난을 토벌하는데 성공했다. 적개공신 1등에 오르고 의신군에 봉해졌다. 같은 해 서북면의 여진족을 물리치고 공을 세워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다.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새파랗게 젊은 국방장관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명성은 그게 끝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더니 그런 꼴이 되었다. 1468년 세조가 죽자 한명회 신숙주의 노골적 견제가 시작되었다. 강희맹 한계희 등 훈구대신들이 병조판서의 능력이 없다고 비판하자 예종이 즉위하고 나서 해임하고 겸사복장직에 임명하였다. 대궐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혜성이 나타났다. 남이가 그것을 보고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중얼거렸다. 그를 항상 질투하던 간신 유자광이 엿듣고서 역모를 획책한다고 모함했다.

 국청이 열리고 심한 국문에도 하지 않은 역모를 자백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백두산에 세운 평정비를 거짓으로 고쳐 들이 밀었다. 남이 장군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백두산에 평정비를 세웠다. 그 가운데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가 있다. 이 시의 미평국을 미득국(未得國)으로 꾸며 역모를 꾀했다고 고했다.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면’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바꾼 것이다. 아니라고 하자 여러 차례 백두산에 사람을 보내어 확인했으나 같은 패거리들이라 계속 미득국이라고 고했다. 결국 남이는 억울하게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현재에도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 죄를 뒤집어씌운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삼례 슈퍼마켓 살인 사건과 익산 오거리 살인 사건도 억울한 사람이 벌을 받았다. 수사하면서 협박, 회유,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 범인으로 만든 것이다. 다행히 진범이 나타나 억울하게 징역살이를 한 피해자의 한이 풀린 일이 있었다. 또 정치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한명숙 전 총리의 수뢰사건도 화제에 오르고 있다. 돈을 준 증거가 없자 증인을 매수하여 증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돈을 준 죄인과 같이 교도소에 있던 다른 죄인 두 명을 지은 죄를 면해준다고 꾀어 ‘돈을 주었다고 말하더라’고 증언을 하라했다. 잘 못 할까봐 예행연습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재판에서 검사의 요구대로 증언을 하여 피고인이 죄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 사실 여부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는 현대판 미득국이다. 검찰은 어떤 특정인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으면 계속 파고들어 죄를 찾아내고, 보아주려고 하면 있는 죄도 없다고 불기소처분을 한다. 이래서 법조계를 풍자하는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재판에서 전관예우라는데 이것도 부조리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한데 왜 유력한 변호사를 사면 무죄가 되고 재판을 이기는가? 누가 변호를 해도 결과는 같아야 평등한 것 아닌가? 돈이 권력이고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맞는 더러운 사회란 말인가?

 없는 죄를 만들어 정적을 몰락시키는 못된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독재도 끝났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이것은 권력층에서부터 고쳐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 현대판 미득국이 없는 깨끗한 나라를 보고 싶다.

                            (2020.6. 21.)

 

평정비 전문(북정가)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수음마무(頭滿江水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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