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7 18:07
- 이기기론(-論)-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나는 칼국수를 좋아한다. 내 농장 가까이에 유명한 손칼수집이 있어, 그곳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요즘은 사업이 번창해서 시내로 가게를 옮겨갔기에 아쉽다. 그 가게 ‘김○○’여성사장은, 내가 갈 때마다 밀가루를 이겨대고 있었다. 정말 지극정성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댁 칼국수의 맛은 그 찰진 ‘밀가루 이기기’에서 비롯되었던 건 아닐까 하고서.
‘이기기’를 두고, 흔히 ‘반죽’이라 하는데, 이 ‘반죽’이란 말도 본디는 ‘半粥’이란 한자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말 그대로 밀가루든 찰흙이든 이기고 이겨 ‘반절쯤 죽’이 되도록 만드는 일.
내 둘레에 ‘이기기의 달인(達人)들’은 참으로 많았다. 내 어머니는 위에서 소개한 칼국수집 여성사장 못지않게 밀가루반죽을 잘 했다. 칼국수나 수제비를 빚기 위한 선행작업이었다. 내 둘째형님도 이기기의 달인이었다. 형님은 흙담을 잘도 쳤는데, 흙과 잘게 썬 짚을 섞어 줄기차게 이겨댔다. 그러면 찰져서 쫀득쫀득한 흙덩이가 되곤 하였다. 그리해야 장차 흙담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웬만한 시골 어른들도 이기기의 선수들이었다. 그분들은 내 둘째형님처럼 흙을 이겨댔다. 그리고는 흙덩이를 거듭거듭 지붕으로 던져 올렸다. 이른바 ‘알매받기’였다. 알매란, 기와를 일 때에, 산자(橵子) 위에 이겨서 까는 흙을 일컫는다. 유년시절, 이웃마을의 ‘흙기와공장’ 사장은 진짜로 빼어난 이기기의 달인이었다. 그분은 흙을 이기되, 손바닥으로 발바닥 뒤꿈치로 참말로 지극정성 이겨댔다. 끝으로, 쇠똥구리도 이기기의 달인이었다. 그 곤충은 쇠똥을 이겨 작은 공으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자기네 거소(居所)로 ‘영차!영차!’굴리고갔다. 장차 그 ‘쇠똥공’ 위에다 알을 낳고, 그 알들은 그 쇠똥을 요람삼아 지내다가 부화하고, 부화된 유충은 그 요람을 이번엔 먹이삼아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이기기의 달인들을 얼추 소개한 듯하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기기’의 효능에 관해 생각해볼 차례다. 재료를 균질화(均質化)하여 응집력을 드높이기 위함이라는 거. 단단해짐과 무척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방짜쇠’를 만들어내는 장인(匠人)도 이기기와 비슷한 작업을 한다. 그분들은 장도리로 놋쇠 등을 수없이 때린다. 그러면 쇠의 내부가 균질화된다는 거 아닌가. 이기기든 두드리기든 과학적으로 설명하라면 이렇다. 재료 내부의 기포(氣泡) 즉 거품을 밖으로 빠져나가게 한다는 거. 그리 되면 재료의 입자 또는 분자가 서로 결속력 내지 결합력이 드높아질 것은 당연한 이치. 좀 더 질겨질 것도 당연한 이치. 실은, 장인이 장도리로 범종(梵鐘)이든 꽹과리든 그렇게 거듭거듭 두드려 균질의 상태가 되면, 울림소리마저 명징(明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수작업으로 그렇게 하여 만든 쇠를 특히 ‘방짜쇠’라고 한다.
자, 수필작가인 내가 한낱 어떤 재료 이기기를 아주 정성껏 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마칠 성싶은가.
수필작품에서 소재는, 말 그대로 글의 ‘재료’이다. 제각각이었던 재료들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통해서든 합종연횡(合從連衡)을 통해서든 어찌 되었거나 한 덩어리로 뭉쳐져야 한다. 이기기를 통해서든 용해(鎔解)를 통해서든 ‘균질의 온전한 한 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작품 전체에 쓰인 각각의 문장이 질서롭게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때에 참 좋은 어휘가 하나 있다. 바로 ‘혼연일체(渾然一體)’가 그것이다. 각 소재와 각 문장이 하나로 결집되어 나타나야 함을 일컫는다.
일찍이 ‘윌리엄 와트’는 ‘좋은 글 12개 척도’를 제시한 바 있다. 그 12개 척도 가운데에는 ‘통일성’과 ‘일관성’도 들어 있다.
통일성에 관해, ‘리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단락은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통일성은, 단락 안에서 단 하나의 화제만 논함으로써 달성된다.
한편, 일관성에 관해, ‘맥크리먼’은 이렇게 적고 있다.
‘ 일관성이란, 충실한 결합을 뜻한다. 단락은 문장끼리 빈틈없이 짜여지거나 서로간 자연스레 결합되어 있을 때에 일관성이 있다. 독자는 문장을 쉬이 차례로 읽어나갈 수 있고, 단락을 독립된 문장의 혼집(混集)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덩어리로써 파악한다.’
사실 나의 위 ‘이기기론’은 윌리엄 와트, 리드,맥크리먼 등의 주장을 아울러서 달리 말했던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한 편의 수필작품은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있지 아니한가. ‘천사가 입는 옷은 솔기 즉 재봉선이 없다.’는 말이다. 한 편의 수필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또, 훌륭한 자동차 판금부 직원은 용접을 하되, 그 부위를 사포(砂布)로 문질러 매끈하게 한다. 한 편의 수필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누더기 같이 더덕더덕 이질적 문장들이 혼집되어 있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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