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오시라고

2020.08.07 22:45

윤근택 조회 수:1

그대 오시라고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그대 오시라고, 나는 올해도 초봄부터 바지런을 떨었어요.

초봄, 관리기로 농막 앞 밭, 그야말로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로터리쳤어요(갈았어요). 나의 밭 두 뙈기는요, 사계절 흐르며 8미터가량 천폭(川幅)을 지닌 개여울이 휘감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루만진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곳에 자리해 있어요. 그 개울을 지나 내 농막에 닿는 콘크리트 다리[橋脚]는 셋입니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위해 그 세 개의 다리 가운데에서 중앙의 다리와 나의 농막 사이에 조그만 오솔길을 만들어두는 걸 놓치지 않았어요. , 관리기로 밭 전체를 로터리쳤으되, 행인이 지나다닐 만큼 지름길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 지름길 오솔길 바닥에는 양탄자까지는 못되지만, 부직포를 깔았어요. 그대가 신은 하이힐이 흙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질세라, 그리하였어요. 밭 중앙에 가르마를 탄 듯한 오솔길. 저 아랫녘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밭 둔덕에 자리한 나의 농막까지는 지름길이 된 겁니다. 기왕지사 그처럼 밭 가운데 가르마를 탔으니, 이쁘게 치장도 해야지 않았겠어요.

   나는 그 오솔길 양편에 옥수수를 심을 요량이었어요.

 초봄,‘박사옥수수씨앗을 여러 봉지사다가 따로 모를 부었어요. 그대도 잘 아시겠지만, 옥수수 씨앗은 교잡이 너무 잘되어 퇴화(退化)되는 탓에, 나는 해마다 돈냥께나 들여, 새 씨앗을 그렇게 사곤 해요. 그리고는 일기예보 ‘131’을 통해 비가 내리는 날을 골라, 그 옥수수 모를 때맞춰 이식(移植)했어요. 물론 옥수수가 다비성(多肥性) 식물, ‘생장초기에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임을 알기에 비료도 많이 주었어요. 농학도였던 내가 그걸 놓쳤겠어요? 옥수수 모를 이식하되, 오솔길 양편에다 열병식(閱兵式)하듯 군기(軍氣)(?) 잡아, 이열횡대(二列橫隊)로 가지런히 심었어요. 그대 오실 적에 그것들은 일제히 잎사귀를 서걱서걱흔들거나 마치 치어리더들처럼 그 특유의 꽃술(옥수수 수염)을 흔들며 그대 환영할 거 같았거든요. 더군다나 그대는 삶은 옥수수를 대단히 좋아하신다고, 나의 옥수수를 노래함이란 글에 댓글까지 달아두시지 않았던가요?

    한편, 나의 농장은 농로(農路)의 끝에 자리한 곳인데, 나는 그대를 위해 나의 승용차 주차공간 외에도 여벌로 그대 승용차 주차공간도 마련해 두었어요. 그대 고운 발목 이슬에 젖을세라, 그곳에는 제초작업도 수시로 했다는 거 아녜요! 그밖에도 그대 오시라고, 올해만 해도 내가 행한 소소한 작업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방울토마토·오이 ·참외·포모사 자두·준 베리(유월에 익는다하여 준 베리슈퍼 오디·곤드레 나물·토종 파·왕보리수 · 청계(淸鷄)닭과 그것들 파란 알 등등 예년보다 더 관리를 잘해왔어요. 하지만, 올해는 다 그르쳤어요. 나의 농작물들은 그야말로 넘고 쳐져 (넘쳐)’버렸거든요. 이 무슨 이야기냐고요? 이 모두 그대 오시라고 벌인 일이건만, 그대는 여태 아니 오셨으니까요.

    이제 팔월 중순. ‘더위를 처결한다는 처서(處暑)도 다가오건만, 농막 둘레에 수컷 귀뚜라미들이 짝을 맺으려 세레나데를 제각각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불러대건만, 그대는 여태 아니 오시네요. 오시겠다는 기별도 여태 없으시군요.

   오늘 해질녘, 나는 그대 오시라고 밭을 가로질러 가르마 탄 그 오솔길의 옥수수를 그루째 차례차례 낫으로 하릴없이 베었어요. 너무 여물어, 더는 삶아먹을 수도 없는 옥수수들. 나는 그것들을 광주리에 담고 있었어요. 이제 그것들 껍질을 차례차례 벗겨 내 농막 처마 끝에다 장식품으로 수북수북 달아맬밖에요. 잘은 모르겠으나, 그대 이빨도 내가 곧 까게 될 옥수수 알갱이들처럼 가지런하고 이쁘겠지요?

   안타깝게도, 그대는, 그대는 택배로라도 내 모든 사랑을 부치고자 하나, 주소조차 여태 알려주시지 않는군요.

   그대 오시라고 여태 벌려 놓은 농사. 참말로, 그대는 언제 오시려는지요? 올해 농사 다 망쳤어요. ‘넘고 쳐졌다는 말입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47 따가운 시선 한성덕 2020.08.11 3
1746 '코로나19'가 준 교훈 이진숙 2020.08.11 4
1745 평생 처음 본 물난리 오창록 2020.08.11 2
1744 5월에 만난 친구들 소종숙 2020.08.11 2
1743 백승훈 백승훈 2020.08.11 6
1742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송창길 2020.08.10 55
1741 역지사지 정근식 2020.08.10 2
1740 모전자전, 부부전, 그리고 자식전 김정길 2020.08.10 2
1739 윤 수필가, 도이장가를 음미하다 윤근택 2020.08.10 2
1738 순대국밥 주세요 공광일 2020.08.09 2
1737 도토리거위벌레의 사랑 신팔복 2020.08.09 5
1736 비오는 여느 여름날의 일기 김효순 2020.08.09 3
1735 노인들의 고독 김일성 2020.08.08 22
1734 상생을 깨달으며 하광호 2020.08.08 1
1733 백마야 울지 마라 전용창 2020.08.08 1
1732 신비의 여인, 쓰마라구 윤근택 2020.08.08 4
» 그대 오시라고 윤근택 2020.08.07 1
1730 수필로 쓰는 수필론 윤근택 2020.08.07 9
1729 뚝딱 시인 전용창 2020.08.07 3
1728 무한화서 윤근택 2020.08.0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