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야 울지 마라

2020.08.08 14:03

전용창 조회 수:1

白馬야 울지 마라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 거칠은 타관 길에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중략)

 

 “이 수병,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가?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밤이면 후배와 나는 검푸른 밤바다를 바라보며 밤새 노래를 불렀지. 최전방에서 매복 근무하며 고성방가하면 영창신세지만, 빗소리가 요란하니 마음껏 목청 높여 불렀지. 후배는 ‘명국환’의 「백마야 울지 마라」를 구성지게 불렀고, 나는 ‘나훈아’의 「꿈속의 고향」을 화답송으로 부르며 어머니를 그리워했지.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고향이기에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어머니기에

 하늘가에 흰 구름 바라보면서 / 향수에 젖어보는 사나이 마음

 천리타향 먼 곳에서 눈물~집니~다‘

 

 벌써 47년이란 세월이 흘렀군. 그때 후배는 일병이고 나는 상병이었지. 내가 해병대 251, 군번은 9381683이었으니 후배는 257기였겠구나. 한 달 선임이면 1개 기수가 빠른데 6개월이면 하늘과 땅이었지. 나는 J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사병으로 지원 입대했고, 후배는 경북 Y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지. 우리는 포항에서 복무하다가 백령도로 갔고, 그곳 어느 소대에서 우연히 만났지. 한눈에 서로가 통했고 함께 매복 근무 나가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노래도 불렀지. 백령도 앞바다에 ‘신기루’ 현상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해주만 ‘장산곶’도,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있는 ‘연봉’ 바위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지. 후배와 나는 ‘사곳’ 백사장에서는 맨발로 달리기 시합도 했었지. 그곳 모래가 어찌나 단단한지 천연 활주로가 되기도 했었지. 탱크가 지나가고, 덤프차가 달려도 희미한 자국만 생겼다가는 금세 없어졌지.

 

  우리 둘이 ‘중화동’에 외출 나갔을 때 생각나니? 후배도 나도 막걸리를 거나하게 들었지. 우리는 취했고 후배는 내 어깨를 껴안고 비틀거리며 “‘전 수병님, 전 수병님’ 제가 얼마나 선배님을 좋아하는지 아세요?”라고 했지. 선배에게 그러면 ‘빠다’를 맞는데도 말이야. 후배와 나는 매복 근무를 같이 많이 나갔지. 저녁 6시에 나가면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12시간을 근무해도 지루함이 없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했지. 우리는 친구처럼, 형제처럼 다정했지. 어느 날 후배는 말했다.

 

 “전 수병님, 혹시 애인 있으세요?

 “아니, 갑자기 무슨 애인 타령이야?

 “제 여동생이 너무 참하고 예뻐서 전 수병님께 소개해주려고요.

 “응, 그래?

 

 그 뒤로는 한 번도 여동생 얘기는 없었고 나는 전역했다. 얼마 뒤 그도 제대했다며 두어 번 편지가 오갔는데 그해 초겨울에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졸지에 가장이 되었고 평온했던 집안도 순탄치가 않았다. 이듬해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을 데리고 전주로 온다는 것이었다. 나의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내년에나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후배는 여동생이랑 전주에 왔다는 전화였다. 나는 당황했고 도저히 만날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학업을 마치고 취업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날 우리는 만나지 못했고 후배는 돌아갔다. 후배가 천 리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건만 선배라는 사람이 싸늘하게 돌아서 버린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미워했을까?

 

 “이상석 수병, 매정한 선배를 많이 미워하고 탓해주소.

 얼마나 선배를 좋아했으면 사랑하는 여동생을 소개해주려고까지 했는데…. 그러나 진심만은 그게 아니오. 내가 후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일 년 동안 함께 근무하며 지켜봤잖아?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받고 산책하며 '백마야 울지 마라’를 불렀다네. 정말 그때는 데이트할 처지가 아니었다네. 이 수병도 행복하게 살고 있고, 여동생도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언젠가 내 글이 대구지역 지면에 실렸으면 좋겠네. 그때도 ‘백마야 울지 마라’로 글을 쓸게. 그래야 후배가 얼른 알아보겠지. 사는 동안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구려. 우리 같이 팔을 높이 흔들고 해병대 군가를 불러보세.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 충무공 순국 정신 가슴에 안고 / 태극기 휘날리며 국토통일에 / (중략) 조국 건설 위하여 대한 해병대’

(202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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