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수필가, 도이장가를 음미하다

2020.08.10 12:08

윤근택 조회 수:2

윤 수필가,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음미하다

                                                                                                                    윤근택(수필가)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서도 익히 아시지만, 나는 아파트 전기주임으로 재취업해 9개월 남짓 이곳 팔공 보성1차타운전기실에 근무하고 있지요. 나는 오늘도 아침 일곱 시 반 무렵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승용차 시동을 걸어, 40여분 그 애마(愛馬)를 몰고 이곳 근무처로 달려오고 있었어요. ‘파군재(破軍-) 삼거리에는 여느 때처럼 신숭겸(申崇謙)장군의 동상이, 마치 이곳 팔공산 일대를 다 지켜줄 듯 서 있었어요.

  사랑하는 당신,

  수필작가라도 뛰어난 수필작가인 나는, 9개월여 이곳으로 오갔으면서도, 정작 명산(名山)으로 알려 있고, 유서도 깊은 팔공산(八空山)’에 관한 글은 한 편도 쓰지 않았군요. 해서, 당신께서는 당신이 무척 아끼시는 이 수필가가 그 어느 아파트에 근무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겁니다. 해서, 지금부터 간략간략 이곳을 소개해드리려 해요.

  이 아파트는 팔공산 초입(初入), 솔숲이 우거진 산에 에워싸여 있어요. 공기가 맑아, 요양차 이 아파트에 입주한 분들도 꽤나 되어요. , 연령층으로 따져 노령의 입주자들이 많아요. 이곳 八公山이란 산 이름은 본디公山이었다는군요. 그 이름이 바뀐 내력은 이렇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전투를 벌이다, 전세(戰勢)가 왕건에게 크게 불리하게 돌아가며 결국 지금의 팔공산까지 오게 되었는데... . 왕건의 신하 8명이 왕건을 피신시키고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결사항전을 벌였다는 겁니다. , 그때 왕건의 최측근이자 고려조 최고의 충신인 신숭겸이 왕건처럼 분장을 하고 후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지 않아요. 견훤은 신숭겸의 목을 베어 자신의 전차에 걸어두고 도성으로 갔다고 하며, 신숭겸과 김락(金樂)을 포함한 8명의 장수들이 모두 후백제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왕건은 매우 애통해 하며 8명의 신하를 공산에 묻었는데, 후에 8개의 봉우리가 되었다고 하며, 왕건은 공산에서 8명의 충직한 신하가 잠들었다고 해서 공산을 八空山이라고 부르게 했답니다.

  보고싶은 당신,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는,‘동화천(桐華川)’이란 개울 건너에 신숭겸 유적(遺蹟)’을 두고 있어요. 신숭겸 장군이 순절(殉節)한 자리라는군요.그곳엔 조경수로 배롱나무가 많이 심겨 있고,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어요. 오늘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감기몸살 약을 사려고 그 신숭겸 유적 옆 약국으로 가고 있었어요. 장군의 유적 담벼락에는 장군의 유적에서 펼쳐질 국악 한마당에 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내용인즉,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읊조리다였어요. 이 무식함이여! 그 도이장가는 바로 신숭겸 장군에 관한 가요이거늘... .

  고려 16대 왕,예종(睿宗) 1120년 향찰표기의 가요를 한 편 짓게 되는데요... . 시월 상달에 예종이, 토속신께 지내는 제사 의식인 팔관회를 참관하던 중, 관복을 입은 허수아비 둘이 말을 타고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해요.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아뢰었대요.

  신숭겸과 김락은 태조가 견훤과 싸워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대신 목숨을 바친 공신인데, 태조가 그 공을 기리고자 팔관회를 열어 추모했으나, 정작 팔관회 자리에 두 공신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짚으로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옷을 입혀 자리에 앉혔다고 해요. 그러자 두 허수아비가 술을 받아 마시며 춤을 추었다는 거 아녜요.

  이러한 설명을 듣고 예종이 감격해서, 한시와 함께 이 悼二將歌를 지었다고 합니다. , ‘두 장군을 애도하는 노래란 뜻이지요. 이 노래를 현대어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아요.

  “님을 온전케 하온/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니/넋이 가셨으되/몸 세우시고 하신 말씀/직분(職分) 맡으려 활 잡는 이 마음 새로워지기를/좋다, 두 공신이여/오래 오래 곧은 자취는 나타내신져.”

  사랑하는 당신, 悼二將歌는 향찰표기(鄕札表記)의 가요로서,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 가운데서 임금이 지은 가장 오래된 향가로, 제작연대와 제작경위가 밝혀져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해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이처럼 유서 깊은 팔공산 초입에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 유적지 옆에서, 격일제로 근무를 해요. 사실 내가 아침마다 출퇴근하는 길의 이름들도 고려 태조 왕건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반야월(半夜月)’은 왕건 군대가 달아다나가 하늘을 쳐다보니 반달이 있었음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안심(安心)’은 적으로부터 쫓기다가 안심했다는 뜻이고요. ‘해안(解顔)’은 그제야 얼굴을 폈다는 뜻이지요.

  사랑하는 당신,

  그러한데요, 요즈음 나는 염량세태(炎凉世態) 니 감탄고토(甘呑苦吐)니 하는 말을 새삼 떠올려요. 정권이 바뀌어 여야(與野) 또한 바뀌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던가요. 국민은 안전(眼前)에도 없이 마구 저질러 놓은 세력들이, 이제 와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인 걸 당신께서도 똑똑히 보실 겁니다. 한 때는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이들이, 속된 말로 니 떡 나 몰라라.”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잖아요. 끝까지 자기 주군(主君)을 지키려는, 진정한 충신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러한 점에서도 고려 개국 충신 신숭겸과 김락은 두고두고 존경받아야 할 위인들이네요.

  무척 그리운 당신,

  내일이 추석날입니다. 그 누군가는 이 아파트의 시설을 지켜야 해요. 해서, 나는 불평 없이 이 전기실에 앉아 있어요. 파군재 삼거리에 큰 칼 옆에 차고 서 있는 신숭겸 장군 동상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기회 보아가면서, 다시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그곳 유적에 참배(參拜)드리러 갈 겁니다. 이럴 때 당신께서 가까이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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