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으로 / 홍인숙(Grace)
"미세스 홍, 된장찌개 끓여 놨으니까 빨리 오세요." 미세스 오의 전화다.
소박한 상차림이 정겹고,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가 봄볕처럼 따스한, 서로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 십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겉으로 우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저 항상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을 느끼게 하는 친구이다.
편안하다는 것, 이 것만큼이나 더 확실한 사랑의 확인이 또 있을까.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내 안으로 소중히 끌어안고 자연스레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까이 있어 주다보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애써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도 정다운 눈빛 하나로 가슴 깊은 곳까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난 가끔 이 쉬운 사랑의 개념조차 잊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늘어나는 잔주름이 마치 남편의 탓인 양 투정부리고,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쉴새 없이 잔소리를 해 대며 꼭 끝머리에는 이 엄마의 지고한 사랑 때문이라고 덧붙이곤 한다. 바로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그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이제는 너그러워지리라. 나의 사랑 안에서 그 누구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리라. 가족에게는 물론, 끊임없이 만나지는 사람들과도, 그 만남을 항상 첫 만남처럼 신선하고 소중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수준 높은 사랑의 감각을 가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친구가 맛있게 끓여 놓은 찌개가 식기 전에 남편과 함께 떠나는 차 속에서, 평소 좋아하는 서정윤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 서정윤
사랑하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희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