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61
어제:
176
전체:
474,534


시와 에세이
2003.03.03 14:14

사랑한다는 것으로

조회 수 945 추천 수 9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사랑한다는 것으로 / 홍인숙(Grace)



"미세스 홍, 된장찌개 끓여 놨으니까 빨리 오세요." 미세스 오의 전화다.
소박한 상차림이 정겹고,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가 봄볕처럼 따스한, 서로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 십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겉으로 우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저 항상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을 느끼게 하는 친구이다.

편안하다는 것, 이 것만큼이나 더 확실한 사랑의 확인이 또 있을까.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내 안으로 소중히 끌어안고 자연스레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까이 있어 주다보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애써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도 정다운 눈빛 하나로 가슴 깊은 곳까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난 가끔 이 쉬운 사랑의 개념조차 잊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늘어나는 잔주름이 마치 남편의 탓인 양 투정부리고,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쉴새 없이 잔소리를 해 대며 꼭 끝머리에는 이 엄마의 지고한 사랑 때문이라고 덧붙이곤 한다. 바로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그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이제는 너그러워지리라. 나의 사랑 안에서 그 누구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리라. 가족에게는 물론, 끊임없이 만나지는 사람들과도, 그 만남을 항상 첫 만남처럼 신선하고 소중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수준 높은 사랑의 감각을 가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친구가 맛있게 끓여 놓은 찌개가 식기 전에 남편과 함께 떠나는 차 속에서, 평소 좋아하는 서정윤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 서정윤


사랑하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희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홍인숙(Grace)의 인사 ★ 1 그레이스 2004.08.20 1748
68 안개 자욱한 날에 홍인숙 2003.08.03 604
67 시와 에세이 시인과 열 두 송이의 노랑 장미 홍인숙 2003.06.26 1059
66 어머니의 미소 홍인숙 2003.06.23 597
65 수필 새봄 아저씨 (2) / 아저씨는 떠나고... 홍인숙 2003.05.31 943
64 수필 새봄 아저씨 (1) 홍인숙 2003.05.31 764
63 사랑의 간격 홍인숙 2003.05.12 577
62 단상 내 안의 그대에게 (1) 홍인숙(그레이스) 2004.07.30 991
61 자화상 홍인숙 2003.05.12 548
60 마주보기 홍인숙 2003.04.26 577
59 가곡시 서울, 그 가고픈 곳 홍인숙(그레이스) 2004.08.04 1309
58 시와 에세이 아버지의 아침 홍인숙 2003.04.23 849
57 부활의 노래 홍인숙 2003.04.19 877
56 꽃눈 (花雪) 홍인숙 2003.04.08 571
55 봄날의 희망 홍인숙 2003.03.18 544
54 인연(1) 홍인숙 2003.03.18 526
53 노을 홍인숙 2003.03.14 493
52 봄은.. 홍인숙 2003.03.14 533
51 수필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하여 / 밤의 묵상 홍인숙 2003.03.03 985
» 시와 에세이 사랑한다는 것으로 홍인숙 2003.03.03 945
49 시와 에세이 마주보기 홍인숙 2003.03.03 784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