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추스려주는 동창 모임

2007.12.16 04:42

정찬열 조회 수:4


   송년모임이 한창이다. 동창회 광고를 보면서 특별했던 내 학창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요즈음 인터넷 창을 열면 광고란에 ‘고마운 대학교’란 글씨가 반짝 거린다. 어떤 대학인가 보았더니 한국방송통신대학 광고다.
  언젠가 본 난에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방송통신대학 제1회 졸업생이다. 지금이야 방송은 물론 인터넷 수업을 하는 사이버대학도 생겨났지만, 당시만 해도 방송이나 통신을 통해 수업을 하는 학교는 생소했다. 교실도 없는, 늦은 밤시간이나 새벽에 방송을 통해 공부를 하는 학교였다. 수신상태가 좋지 않아 라디오소리가 자주 가물거렸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강의를 들었고, 방학 때는 협력학교에 가서 보충수업을 받았다.  
  하마터면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할 뻔 했는데 통신대학이 있어 대학 배지를 달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검정고시를 거쳐 일반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다시 대학원 과정까지 마치게 되었으니 이 대학이야말로 나에게는 은인과 같은 고마운 학교임에 틀림이 없다.
  고맙지 않은 학교가 있겠는가만, 나에게 또 하나의 고마운 학교가 있다. 내가 졸업한 야간고등학교다. 중학을 졸업한 다음 지게를 벗 삼아 농사를 짓다가 스물 한 살 나이에 고등학교를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데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를테면 너무 늙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행히 K상고 야간부에서 입학을 허가해 주었다.
  가로등에 불이 밝혀질 무렵, 주간 학생들이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에 학교에 갔다. 이따끔 공부시간에 전기가 나갔다. 몇 분 후면 불이 들어오곤 했지만, 끝내 불이 들어오지 않아 책가방을 싸 들고 집에 돌아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겨울 밤, 그 흔한 난로하나 피우지 못한 교실은 발이 시렸다.
  낮에는 일 하고, 밤에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때 그 야간학교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할수록 고마운 학교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 그 ‘고마운’ 야간 고등학교가 없어졌다. 몇 년 전, 이곳 어느 단체에서 한국의 고등학생을 선정하여 장학금을 지급하자는 결정을 내렸었다. 기왕이면 힘들게 공부하는 야간 학생이면 좋겠다 싶어 학교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야간 고등학교제도가 없어졌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지원학생이 적어 자연스럽게 폐교가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고등학교 정도는 이제 걱정 없이 다닐 만큼 형편들이 나아졌는가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진학 길이 막히겠다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연말이면 모임이 많아 동창회 날짜가 겹치는 수가 있다. 그럴 때는 K상고와 방송통신대학 모임에 참석한다. 내가 졸업했던 다른 학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 희망의 끈을 내밀어 인생의 길을 열어 준, 두 학교에 대한 특별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동창회에 나갔다 오면 힘이 난다. 어려움을 털고 일어나 푸른 꿈을 안고 당당하게 살아가던 그 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풋풋했던 시절의 젊음과 패기가 되살아나고, 느슨해진 삶을 추스릴 수 있는 동력을 얻어오기 때문이다. 동창회 모임이 기다려진다. <12/12/07년 중앙일보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