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등뼈는 조금 무너졌지만
2008.03.14 05:43
비록 등뼈는 조금 무너졌지만
지난 주부터 체했다며 몹시 고통스러워 하시던 어머니. 약해 보이시지만 강단이 있으셔서 병치레 한번 하시지 않던 분이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누우실 때도 어구구 신음이 대단하시다. 평소 위가 좋지 않아 소화제랑 위장약을 드시던 터라 당연히 체하신 줄 알았다. 등뼈로 시작하여 갈비뼈를 빙 돌아 허리 전체가 아프다며, 등을 두드려 달라 쓸어 달라 몸부림을 치셨다. 도와 드릴 일이라야 고작 등을 쓸어드리고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일이라 열심히 해 드렸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작년 봄부터 몇 달에 한번은 이런 고생을 열흘 정도씩 하셨다고 하는데 통 몰랐었다. 맛있는 것 드시러 가자고 하면 싫다고 손을 저으시던 모습에 또 체하셨구나 지레짐작만 했을 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병원을 들락거리며 정부 돈 낭비하는 것 싫다고 하시던 어머니도 이번에는 견딜 수 없으신지 자진해서 위내시경,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위도 장도 깨끗하여 도무지 아플 이유가 없다는 의사 말씀에 안심하며 돌아왔다.
병원을 다녀온 뒤, 검사 결과와는 상관 없이 계속 힘들어 하셔서 또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의 호소에 고개를 갸우뚱하시던 의사 선생님. 엑스레이를 찍어 보시고는 등뼈가 조금 내려 앉은 걸 발견하셨다. 골다공증이 심하면 이렇게 등뼈가 부서져 내리고, 그것에 신경이 눌려서 아픈데 2주 정도 지나면 적응이 될 테니 걱정 말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작년 봄부터 조금씩 등뼈가 무너지느라고 그렇게 힘드셨구나 생각하니 어머니의 작은 육신을 80 여 년이나 지탱하고 견뎌준 그 존재가 새삼 크게 다가왔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다. 의사 선생님은 골 밀도를 높여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주사를 2년간 매일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뼈주사 맞는 것은 물론, 쇠약해지신 어머니를 위해 간호사를 집으로 보내주어 링거를 맞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틀 날 방문해 준 간호사에게서 주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한 달간 맞을 양의 약이 들어 있는 주사기로 매일 한 눈금씩 주사해야 한다고 했다. 주사기를 돌리고 공기를 먼저 빼 내고, 또 돌려서 주사를 하는데 약이 들어갈 때는 띠띠 소리가 나는 게 의료 행위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조금 복잡했다. 첫 날 배울 때는 뭐가 뭔지 모르겠더니 이틀째에는 서툴게 놓아 드렸고 사흘째에는 능숙하게 놓아드렸다. 유난히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를 싫어하시는 분이 매일 아침 문을 두드리는 내가 부담스러우신지 사흘째에는 당신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당뇨병 있는 친구들도 인슐린을 자신이 주사한다던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떼를 쓰셨다. 어제도 내가 하는 것을 유심히 보며 방법을 되뇌시는 어머니께 마음대로 기동하실 때가 되면 가르쳐드리겠다고 했었는데. 오늘 혼자서 주사를 했으니 오지 말라고 아침 일찍 전화를 주셨다. 너무 뜻밖이라 말문이 막힌 나를 보고, 간호사가 일러준 말을 그대로 외우신다. 아니, 오히려 간호사보다도 더 쉽게 설명을 하신다. 마지막에 '따다닥' 하는 약 들어가는 소리도 들으셨단다.
"별라다~ 별래. 우리 할매 우째 이리 별날꼬. 할매가 좀 할매다우셔야지. 진짜 못말리는 할매네."
이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며칠 주사를 맞았는데도 옆구리가 계속 결려 오늘 또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야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만, 이왕 오셨으니 확실히 검사를 하자며 CT 촬영을 해 주셨다. 결과는 여전히 '모든 장기에 이상 없음'이었다. 집에 돌아오며 어머니는 당신의 병에 대해 정리를 해 주셨다.
"나는 말이다. 집으로 칠 것 같으면 인제 다 낡아삐린기라. 창문이 뿌사짓그나 찌그러졌으몬 마 갈아끼우몬 되는거제. 대문이 뿌사졌시몬 새로 고치몬 되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집에 큰 기둥이 무너진기라. 집에 큰 기둥이 무너지몬 우찌되노. 벽이 갈라지고 지붕이 새고 창문이 깨지고 난리가 안 나겠나. 천장에 전기 다마도 떨어지고 말이다. 그라니까 뿌사진 등뼈가 아프고 옆에 갈비뼈도 아푸고 주위에 모든 등허리도 아푸고 하는 거 아니겠나. 그자?"
비유가 어찌나 적절한지 핸들을 마구 두드리며 웃었다. 더 이상 어떻게 어머니의 병 상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오장육부 모두 깨끗하고 노인병도 없으셔서, 잘 잡숫고 원기만 돋우면 된다는 내 말에 기분 좋으신 어머니는 앞으로의 계획도 명쾌하게 세우신다.
"내 몸 구석구석 뒤적이서 병이 어데 숨었는지 인제는 다 찾아봤다. 이래 디다보고 저래 디다보고 찾아내는데 지 넘이 어데 숨어있을끼고. 내 몸에 병은 없다 아이가. 인자부터 무조건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 호호호"
몇 주간의 고생이 꿈이었던 양. 어머니의 웃음 소리가 따사한 햇살 사이로 꽃잎처럼 날아간다. 어머니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님. 우리 엄마 하나님께 가시는 그 날까지 지금 이 건강 상태 그대로, 조금도 변치 않게 지켜주세요. 비록 등뼈는 조금 무너졌지만 마음의 기둥은 튼튼히 서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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