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의 노래

2009.09.02 08:13

고대진 조회 수:41 추천:2

겨울이 되면서 시작되는 시애틀의 비는 거의 넉 달이 넘게 왔다. 그것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부슬부슬 오다가 멈췄다가 하며 종일 계속되는 비였다. 이곳 W대학에서도 겨울의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겨울이면 여러 가지 공짜 파티를 열어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중충한 날 학교 아파트에 죽치고 앉아 비오는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몸이 물 속에 가라앉는 기분이어서 도서관에서 앉아있거나 연구실에서 음악을 듣는 것으로 겨울을 지내고 있었다. 드물게 하늘이 파랗게 보이던 어느 날 드라이브를 나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을 들으면서 플루트라도 다시 시작하면 겨울을 쉽게 지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오는 길에 악기 렌트점을 들려 플루트를 빌렸다. 플루트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소리와 거리가 먼 쉰 소리만 났다. 귀국하고 십 년도 넘게 닫아둔 음악이었다. 왜 그렇게 쫓기며 보내왔던 한국의 생활이었는지 분석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잊고 싶은 그 생활을 반성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교환교수로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 한가지는 해보자... 하며 레슨을 신청했고 일주일에 한시간씩 음악대학에서 목관악기 담당인 제인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이 거의 일년이 되어 왔다. “참, 민희. 너 새 플루트를 구한다고 했지 중고 야마하 플루트가 나왔는데 어때 ” 금요일 오후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나에게 제인이 물었다. “그래 너무 비싸지만 않으면 알아 봐줄래 ” “몇 년을 쓴 중고니 별로 비싸진 않을 것 같아. 플루트는 좋아. 같이 가자. 팔 친구와 지금 ‘붉은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잘 됐다. 나도 도서관에 가는데.” 붉은 벽돌로 포장되어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 도서관 앞 넓은 마당 구석에 있는 피라미드 조각 옆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그는 앉아 있었다. “하이 준. 미안해. 오래 기다렸니 ” “하이 제인. 조금. 플루트 살 사람은 알아봤어 ” “응, 여기 같이 왔어. 이쪽은 민희, 민희 이쪽은 내 친구 준, 플루트 팔겠다는 사람이야.” 플루트를 꺼내는 그의 얼굴은 분명 한국사람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수염까지 잘 안 깎은 듯한 모습을 보고 좀 머뭇거리자 “가지고 가서 불어보고 좋으면 이야기해요. 돈은 나중에 주셔도 되요.”라며 전화 번호를 적어주고 제인과 빗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값은 좀 비쌌지만 그의 야마하는 거의 신품이었고 소리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이 좋았다. 앞으로 다른 플루트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제인의 말을 들으며 그를 찾았다. 그의 사무실은 이 대학을 둘러싼 두 개의 호수중 하나인 유니온 호수에 접해 있었다. 사무실 앞에는 ‘수산학과 교수 장 준’이란 작은 명패 아래로 수업시간과 학생 면담시간이 걸려 있었다. 면담시간인데도 기다리는 학생은 없었다. 노크를 하고 살짝 열린 문으로 보니 그는 노크 소리도 듣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정신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낙-. 안녕하세요 ” 사무실을 들어가면서 내 첫마디가 그랬다. 한국말로. 그는 뒤를 돌아서 무슨 말을 하나 하며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아, 한국 분”하며 일어섰다. 갑자기 예상하지 않은 한국말을 들어서 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젯밤에 만났던 민희에요. 이 민희. 플루트를 가져갔던.” 그는 그제야 내 얼굴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수표를 써주고 그가 끓여주는 자스민 차를 마시면서 물었다. “호수에 뭐가 있나요 비가 와서 요트들도 없는데... 아니 너무 열심히 보셔서요. 노크도 못 들으시고...” “고래요. 고래 하나 물 속에 숨어있어요.” “민물고래가 있다는 말 처음 듣는데요. 하지만 아주 작고 귀여운 고래일 것 같아요.” 킥킥거리며 웃는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은 내 나이 정도 들어 보였다. “왜 플루트를 파시나요 사신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창 밖을 보는 그의 모습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 고등학교 때 험프백 고래의 노래를 흉내내고 싶어 플루트를 시작했다며 파란 고래가 그려져 있는 그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해양 동물의 인구역학(Population Dynamics)을 전공한다고 하면서. 그의 사무실을 나와 좀 늦게 도착한 아파트에서는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웬 전화를 그렇게 안 받아 ” “일이 안 끝나서 학교에 있었어요. 미안해요.” “됐어. 연구는 어떻게 거의 마무리 됐어 ” “아직 모르겠어요.” 남편은 항상 그랬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국제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걱정을 해 주었다. 불평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남편을 두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친정 어머니는 “넌 정 서방을 업고 다녀야해”라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못 낳는 것이 딸의 책임인양 사위에게 항상 미안해했다. 집안에서 큰 소리날 이유가 거의 없었던 우리의 사이는 겉으로 보면 부족할 것 하나 없는 교수 부부였다. 굳이 입양을 하라는 주위의 권고를 마다한 것도 아이보다는 서로의 일을 즐기기로 하자던 결정 때문이었다. 시댁의 눈치를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친정 어머니였으며 남편이었다. 일년 전 혼자 독일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온 남편에게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기로 했다고 했을 때 그랬다. “또 숨바꼭질인가 ” 사실 내가 청주에서 강의하고 남편은 서울에서 강의하기 때문에 결혼 초부터 숨바꼭질 부부가 되어 있었다. 남자 박사도 남아도는 마당에 여자가 전임 교수가 되는 것은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민희는 운이 좋았어...”라며 박사 학위를 마치고도 오래 시간 강사로 있는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요즘 들어 미국 시스템과 같이 만든다고 부쩍 연구논문 편수니 진급심사 강화니 하며 떠드는데 아무리 전임교수라 해도 학교 스케줄을 어기면서 영문학을 연구하러 남편과 독일을 가겠다고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중세사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 온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플루트를 그만 두었다던 준이 다시 제인에게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내 레슨 시간 바로 전이었기 때문에 밖에서 그의 연습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손이 무딜 것이라고 생각했던 난 그의 연습을 들으면서 완전히 기가 죽었다. 그의 연주는 제인과 비슷할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나 텔레만의 플루트를 위한 두개의 무반주 곡들을 신들린 듯 연주할 때는 그가 플루트를 전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날 제인과 연습을 마치고 나가던 그가 악보를 하나 건네주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에 있을 발표회에서 같이 연주하자고 하면서 준 것은 텔레만의 플루트 이중주 4번이었다. 그것 참 근사한 생각이다라며 제인이 옆에서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연습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 프로젝트로 무척 바쁘게 지낸다고 제인이 전해줬다. 난 혼자 갤웨이의 연주 CD를 사서 들으면서 텔레만을 듣기 시작했다. 뭔가 목표가 있으면 연습이 잘 되기 때문인지 열심히 텔레만의 음악에 빠져들어 갔다. 영문학자가 아닌 바로크 음악을 공부하러 온 사람처럼. “준비되었으면 맞춰 볼까요 ”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혼자 연습하고 있던 연주실에 갑자기 나타난 그가 플루트를 꺼내면서 말했다. “바쁘시다면서요. 일 다 끝났어요 ” “일에 끝이 있는 거 봤어요 자- 시작해요.” 그의 플루트에서 낮은 A가 흘러나오고 나의 플루트가 따라 A음을 내었다. 그는 플루트의 목을 조금 늘리고 다시 A음을 주더니 옥타브를 올리고 나와 피치를 조절했다. “소리가 아주 좋아요. E 마이너 알페지오를 해볼까요 그리고 3도의 하모니로...” 제인이 하던 투였다. 10년이 넘은 레슨의 결과일 것이다. ....잘 들어보면 우리가 좋은 하모니를 만드는지 아닌지 알지. 악보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처음엔 조금 천천히.... 제인의 레슨을 기억하면서 손에 힘을 의식적으로 뺐다. 얼굴과 팔의 근육이 많이 긴장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라르고부터. 시작할까요 제가 세컨드 플루트입니다.” 악보를 펼쳐놓으며 그가 말했다. 세컨드 플루트의 다섯 음을 따라 내가 그의 음악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플루트 소리는 고향의 가을 하늘같이 깨끗했다. 두 마디를 지나니 벌써 이번 연주는 잘 될 것이라는 여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을 풀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음을 즐기면서... 그의 플루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두 플루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음을 주고받았다. 봄바람같이 따스하게 닿는 그의 속삭임에 내 소리가 나비가 되어 그의 귀를 살짝 간질인다. 쉼표. 그의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그의 눈을 본다. 그의 눈웃음. 하나 둘 ... 지금이야. 그의 낮은 옥타브의 음이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싼다. 다리에 힘이 없이 주저앉을 것 같다. 악보를 보아야해. 놓치면 안돼. 음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눈과 다시 마주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1악장 끝. 한숨을 돌리려는 나에게 그가 소리쳤다. “계속해요.” 놓으려던 플루트를 다시 들고 알레그로로 내가 먼저 들어간다. 16분 음의 빠른 템포가 시작된다. 항상 빠른 템포엔 손과 머리가 다르게 놀아서 힘들었는데... 그렇지. 음이 틀린 것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어깨에 힘을 빼고 배에서 나오는 그 소리로. 그의 음들이 통통 튀며 내 귀를 깨물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눈 코 입술 목을 간질이며 내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내 소리와 깍지를 꼈다. 점점 고조되는 두 가락이 어우러져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은 점점 빨라지고 내호흡이 가빠왔다. 어지러워서 도저히 계속 할 수 가 없었다. “왜 멈추지요 아주 좋은데...” “여기까지가 밖에 연습을 안했어요. 오늘은 그만해요.” 플루트를 챙기고 나오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옆으로 본 그의 얼굴도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봄볕 아래서 긴 시간을 보낸 듯 온 몸이 나른했다. 음들의 어우러짐은 사람의 어우름과 다르지 않았다. 꼭 포근한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위도가 높은 도시 시애틀에는 겨울밤도 일찍 왔다. “요즘은 너무 어두워서 주차장까지 갈 땐 좀 으시시 해요.” 캠퍼스 자전거 길에 강도가 나타나 지나가던 여학생을 덮쳤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날 지나가는 소리로 말했다.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음대 앞의 긴 돌 의자에 앉아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가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서요.” 그도 그 신문 기사를 읽은 모양이었다. 자전거를 가운데 놓고 주차장까지 별로 말이 없이 걸었다. 오랜만에 구름이 걷힌 서쪽 하늘에는 초생달이 실같이 떠 있었다. “고래좌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 어색한 침묵을 깨면서 그가 손을 들어 남쪽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의 여든 여덟 별자리 가운데 네 번째로 큰 별자리인데도 밝은 별이 없어서 전체의 모습을 보기 힘든데 오늘은 날이 맑아 볼 수 있네요.” “견우 직녀 같은 전설이라도 있나요 ” “희랍 신화에 나오는 고래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명령으로 안드로메타 공주를 삼키려다 공주를 구하려는 페루세우스 때문에 돌로 변했다는 괴물 말입니다.” “저 L자 모양의 물고기자리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선을 연장시키면 ‘미라’ 라는 저 별에 닿지요. 그 별을 중심으로 비틀어진 Y 모양의 별이에요.” “저- 실은 북두칠성을 빼고 아는 별자리가 없는데요. 나이 들어선 별을 본 일도 없고...” 그는 말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나서 내 등뒤로 가더니 내 오른손을 잡고 별을 가리켰다. “저기 북두칠성이 있지요 북극성이 저것이고요.” 하면서 북두칠성에서 시작하여 작은곰자리와 북극성을 찾고 W 자의 카시오페아를 보고 나서 ‘가을의 사각형’을 찾았다. 좁은 V자의 ‘안드로메타’좌가 누운 것이 보이죠 그 남서쪽으로 세 별이 한 줄로 빛나고 있는 것이 에어리즈(Aries) 그 옆으로 넓은 V가 피지스(Pisces) 그 아래가 시터스(Cetus) ‘고래좌’... 하며 뒤에서 잡은 내 손으로 가리켜 가며 이야기했다. 귓가에 스치는 그의 숨에서 남자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저절로 뒤에 서있는 그에게 등을 기대게 되었다. ....생일이 언제시죠 3월28일이면 ‘양’이군요. 저기 세 별 에어리즈... 전 피지스 물고기좌. 이웃이네요. 제가 몇 살이 더 많군요.... 천지가 별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저 나이까지 별을 보는 남자라니 하며 웃었지만 이 날 이후 나에게도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별자리를 볼 때마다 나의 별자리와 또 이웃하는 그의 물고기자리를 보면서 별자리로라도 둘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연주가 가까워 오자 듀엣 연습을 매일 하기 시작했다. 연습을 한 뒤에는 으레 주차장까지 같이 걸어갔고 주차장에 서서 한참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는 참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 경계하지 않으며 자로 측량할 필요 없이 편하게 이야기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하듯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와의 대화를 오래된 책 같이 되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곤 했다. 그는 바다에서 고래를 보고있는 모습으로, 혹은 나와 벼랑 끝에 앉아서 별을 보는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기도 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사랑에 빠지거나 할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뱀같이 차갑고 냉정한 사람에게 누가 말이나 붙여보겠어 ... 라던 남편의 말이 생각났다. 10년을 살면서도 한번도 누구에게 기대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던 내가 꿈에서까지 누구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남편이 독일에서 돌아온 뒤 각방을 쓰기 시작하고 남자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나였다. ...연주만 끝나면 그만이야. 네 나이를, 네 위치를 생각해... 매일 거울 앞에서 이제는 20대가 아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준의 모습을 대하면 그때까지의 결심은 모두 무너져 버렸다. ....나 정말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 이런 감정을 가져보았지 여고생 때 이제야 사춘기를 맞다니 우스꽝스러워. 준도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꿈에 본 그의 눈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어.... 텔레만의 이중주는 시간이 갈수록 자리를 찾아 하모니를 만들고 있었으나 나의 머리는 점점 깊은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혼돈은 무척 고통스러웠고 또한 엄청나게 달콤했다. 작은 강당에서 열린 ‘제인과 친구들’이란 제목의 연주회는 성공이었다. 제인과 그 제자들로 구성된 작은 연주회는 해마다 열렸었지만 이번 연주가 그중 가장 멋있었다고 제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주를 끝내고 제인의 집에서 가진 파티에서 준이 자기 가족을 소개했다. “이쪽은 자네트, 내 딸 ‘밍키’의 엄마. 이쪽은 민희, 내 듀엣 파트너.” 그의 아내는 금발에 초록빛 눈을 가진 꼭 광고의 모델같이 아름다운 여자였다. “듀엣의 하모니가 너무 좋았어요. 그 동안 준에게서 많은 이야기 들었고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하며 손을 잡는데 연주 후 느꼈던 희열이 한꺼번에 꺼지는 기분이었다. 준은 자기 집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You were so beautiful, daddy.” 하며 그의 목에 안기는 열 살 가량의 딸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베를린 벽처럼 힘없이 무너지던 옳음과 그름의 경계가 엄청난 속도로 하늘까지 두껍게 올라갔다. 화장실에서 가서 비친 거울 속의 나에게 말했다. “그래. 넌 듀엣 파트너일 뿐이야. 정신차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저녁식탁에 모여 웃으면서 부인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부인에 대해 한 마디도 안했는데. 바보... 미친년... 울지마... 혼자 중얼거리면서 슬그머니 파티를 빠져 나왔다. 눈이 모래가 들은 것 같이 쓰리고 명치끝이 아파 왔다. 연주회 뒤 갑자기 차가워진 나를 준은 의아해 했다. 옛날같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같이 주차장으로 걸어가야 할 때도 나는 바쁘다고 도서관으로 빠지곤 했다. 3월이 거의 지나던 어느 날 플루트 연습을 마치고 그가 물었다. “고래가 갑자기 육지로 밀려와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지요. 왜 그럴 것 같아요 ” “왜 그런데요 ” “자기가 물에 사는 짐승이 된 것을 잊어버리고 갑자기 물이 무서워져 육지로 도망가다 그런다는 설이 있어요.” “장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견디지 못한거죠. 다른 고래들과 생각하는 것이 틀려서. 달아난 것이 아닌가 해요.” 마치 내 사고방식이 한국 여자들과 달라 미국으로 도망 와서 사는 거라고 여긴 것일까 왜 갑자기 자살하는 고래이야기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걸어가는 음대 앞 광장 길에는 봄이 가득했다. 오래된 벽돌건물들로 둘러 싸여 있는 네모진 광장은 시골의 큰 기와집 마당같이 아늑한 기분을 주고 있었고 마당 안을 가득 메운 벚꽃은 찬란하다 못해 슬플 정도로 아름다웠다. “말해줄래요 ” 하며 그가 물어왔다. “뭐요 ” “뭐가 잘못됐는지. 당신과 나... 왜 갑자기 준이라고 부르지 않고 장교수라고 부르죠 ”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장 교수님은 어때요 사모님에게 아직도 제 이야기를 매일 보고 하시나요 ” 아주 차갑게 내뱉는 나의 말에 준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 땅을 쳐다보았다. “밍키의 엄마는 제 엑스 입니다. 2년 전 헤어졌지만 딸 앞에서는 친구로 보이기로 했죠. 연주회에도 그래서 온 거고. 민희가 산 플루트 그 사람이 준 선물이었죠. 기억을 지우고 싶어 팔았죠. 민희를 만나고 플루트를 다시 시작했지만. 제인이죠. 플루트를 다시 시작하라고 한 사람은. 오랜 친구예요.” 어색한 침묵이 오래 계속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반지를 안 낀 것이며 아내라고 하지 않고 밍키 엄마라고 소개한 것 등 모두 이해가 되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가는 바람이 불어 후르르 날리는 꽃잎들이 눈송이 같이 춤을 추며 떨어지고 있었다. “아- 눈이 와요.” 하늘을 보면서 마치 눈송이라도 붙잡을 것 같이 손을 뻗으며 그를 향해 웃었다.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겨울엔 비만 왔었지. 눈이 내렸으면 했는데... 그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 그때까지 느꼈던 부끄러움이 봄눈송이처럼 녹아버렸다. 그날 따라 두껍지 않은 스웨터 하나를 걸치고 나온 몸을 갑자기 부르르 떨자 그는 외투를 벗어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의 옷에서 따스한 기운이 전해져오고 싱그런 아카시아 향기가 났다. 음-하며 작은 한숨이 입에서 나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눈이 오고 있어. 그것 뿐이야. 펑펑 눈송이 같이 바람에 날리는 꽃잎 사이를 걸으면서 가만히 그의 팔을 끼었다. 그는 걸음을 멈춰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 속에 내가 행복하게 보였다. 준이 내 팔을 가만히 끌어 당겼다. 그의 입술이 이마에 멈추고 눈에 살짝 닿았다가 귓가에 닿았다. 따스했다. 그의 코가 다가와 내 코를 비비고 그의 입술이 내 입을 포개었다. 눈이 저절로 감기었다. 세상에 이렇게 부드러운 것도 있구나. 사르락 사르락 꽃잎이 머리에 눈썹 위에 쌓이고 있었다. 시간이 멎는다. 노오란 유채꽃이 가득 피어있는 돌담 너머로 마파람이 분다. 꽃들이 흔들리고 하얀 나비가 펄렁 펄렁 바람을 따라 날아든다. 바다가 보이는 이곳은 어디일까 시간이 멈추는 곳... “북극해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 아파트 앞까지 온 그가 말했다. “실은 내일 알래스카로 가요. 두 달 그곳에 있어야해요. 한 일주 알래스카에 여행할 수 있어요 ” “논문을 마쳐야 하는데. 여름에 귀국해야 하니까...”하며 고개를 숙이는 나를 보고 준이 말했다. “비행기표는 다음 주 월요일 공항에서 픽업할 수 있도록 해 놓겠습니다. 일주일 정도 방해를 안 받으면서 조용한 알래스카에서 논문을 써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귀국 선물이라 생각하세요. 잘 자요”하며 이마에 살짝 입맞추고 뒤돌아 걸어갔다. 전 남편이 있어요. 아시죠 혼자 자유롭게 여행이라뇨....라는 말이 자꾸 입안에서만 맴돌았다...넌 아내가 있으면서 어떻게 남의 여자인 나에게 그렇게 친절했니 날 어떻게 알고 이렇게 무시하는 거야 ... 하며 그에게 쏘아주던 생각은 방향을 바꿔 나에게 돌아와 박혔다. ....넌 남편이 있잖아. 그러면서 어떻게 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네 감정에 책임질수 있어 책임이 뭔데 네가 결혼반지도 안 끼고 있었다는 것을 잊었어 .... 준이 보낸 비행기표는 앵커리지까지 가서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로 바꾸어 바로우(Barrow)란 곳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곳 원주민인 에스키모들은 푸루도 베이 유전 개발로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유전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얻은 경제력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찾기 시작했고 자기 말을 가르치며 ‘고래사냥’이 중심이 된 그들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허용된 고래사냥의 쿼터를 늘리기 위해 고래 인구조사 및 생태조사를 실시했다. 많은 연구비를 들여 과학자들에게 용역을 주는 한편 고래 사냥의 쿼터를 조정하는 국제 포경위원회에도 과학자들을 파견하여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게 하였다. 고래 인구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준도 그 고래 인구 조사단의 일과 함께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해 알래스카의 북단 바로우에 자주 머물렀다. 시골역 같은 바로우 공항에 트럭을 몰고 나온 준은 우선 에스키모들이 입는 파카로 나의 몸을 감싸주었다. 4월인데도 밖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고래인구 조사 팀은 바로우 읍내를 지나 바로우 곶(Point Barrow) 북쪽의 얼은 북극해 위에 베이스 텐트를 치고 있었다. 짐을 부리고 나서 그가 내미는 에스키모의 장갑과 파카를 걸치고 신발 위에 두꺼운 장화를 신고 나왔다. “허리를 꼭 잡아요”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스노모빌에 올랐다. 그의 등은 넓고 따스했다. 사방이 다 하얗게 빛나서 준이 준 헬밋이 없이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얼은 바다는 평평한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얼음 바위가 여기 저기 쌓여 있었고 그 사이를 돌아 30마일 정도 가서 10미터도 넘는 커다란 초록빛 얼음 바위 옆에 멈추었다. 위에는 바람막이가 병풍처럼 서 있고 꼭대기를 깎아 만든 조그만 자리에는 두 사람이 50야드 전방에 있는 얼음판이 갈라져 생긴 바닷길을 지나가는 고래를 세고 있었다. 검은 바다에는 얼음조각 사이로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짝지어 지나가는 고래들이 숨을 쉬러 물위에 올라와서 분수를 뿜고 있었다. 얼음 위의 준의 텐트는 생각보다 무척 크고 훈훈했다. 에스키모들이 북극에 살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둘러보니 구석에 야전 침대에 슬리핑백이 깔려있고 그 옆으로 길다란 책상 위에 녹음기 네 대가 계속 돌아가며 뭔가를 녹음하고 있었다. 물 속에 수중 마이크를 넣고 고래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소리들이 지나간 위치를 계산하고 고래의 자취를 만들어 그 빈도를 인구조사에 이용한다고 했다. 헤드폰을 끼고 들어보니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며 바람소리 또 카나리아 새들의 노래가 들려 왔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꼭 깊은 산중 숲 속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이거 바다 속에서 나는 소리가 맞아요 ”라는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새소리는 흰 고래 노래, 시냇물소리는 얼음을 흐르는 바다물 소리죠. 잘 들어보면 여러 종류의 고래의 노래들을 들을 수 있어요. 종류에 따라 아주 다른 소리가 나니까.” 얼음같이 찬 바다 속에서 이민하는 고래들의 소리는 다양했다. 멀리서 흐느끼는 듯이 들리는 플루트 소리가 험프백(humpback) 고래의 노래였다. 이노래는 6개월정도에 한번씩 유행이 바뀌는데 새 곡이 시작되면 전 세계에 한달 이내 퍼져서 그 노래만 한다는 말도 했다. 물 속을 흐르는 물 바람 소리 사이로 짧고 낮은 황소 울음소리가 밖에서 보았던 활 같은 입을 가진 보헤드(bowhea) 고래의 소리였다. “내일 출발이네. 벌써 그렇게 지났구나.” 떠나기 전날 밤 그의 텐트에 들어가자 옷을 입은 체 슬리핑백 위에 누워있다 일어나 앉으며 이야기했다. “미안해요. 일이 바빠서 구경도 못시켜드리고. 자꾸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니...” “아니어요. 덕택에 혼자 스노모빌을 몰고 북극해 구경을 실컷 했는걸요. 정말 신비한 곳이에요. 제가 다녀본 곳 중에 가장 신비한. 마치 화성에라도 온 기분이던걸요.” 작은 텐트 안이 무척 아늑하게 느껴졌다. “고려속요 ‘만전춘별사’가 생각이 나네요. 아세요 ”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이야기 해봐요.” “얼음 위에 댓닢자리 보아 님과 함께 얼어죽을 망정 정둔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얼음 위는 맞는데 낮과 밤의 구별이 없는 여기선 더디 샐 밤이 없어 어쩌지 ” 나를 향해 돌아앉은 그의 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갑자기 몸이 떨린 건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가만히 그의 가슴에 머리를 대어보았다. 아무 생각도 말아야지. 이곳은 화성이다. 세상엔 나와 이 사람 뿐이다. 나는 그의 피리가 되었다. 그의 숨이 내 몸 가운데로 흐르면서 온 몸에 뜨거운 바람이 가득했다. 그도 나의 피리가 되어 나의 숨을 받았다. 우리의 소리는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우리는 두 마리의 험프백 고래가 되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찬 바다 속에 뛰어들었다. 빙글 빙글 서로를 돌며 춤을 추다 꼬리를 솟구치며 공중을 향해 수직으로 높이 뛰어 하늘을 보았다. 두 마리의 고래가 바다에 떨어지며 일으킨 큰 물보라. 가슴의 울렁거림은 오랫동안 자지 않았다. 시애틀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 밖으로 레이니어 산이 구름 위에 우뚝 솟아있었다. 일주일을 구름 위에 머무르다 가는 것일까 나는 짙은 안개 속을 내려가는 비행기가 되었다. 땅 아래의 일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고래는 숨을 쉬지 않고 한시간을 물 속에 잠수할 수 있다는데 나도 찬 물 속에 머리를 박고 가라앉았으면. 물위에 있는 나의 문제를 다 잊고 준만 생각할 수 있으면. 얼음 위에서 그의 가슴에 기댄 나를 안고 준은 말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일까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눈으로 대답했다. 나도 당신을 그만큼이나 사랑해온 것 당신 알아요 저녁에 도착한 시애틀의 아파트에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가득한 것을 보니 오래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 “어떻게 왔어요 방학도 멀었는데...” “전화도 안되고 사고라도 난 줄 알았잖아. 어디 간다면 허락을 받고 가야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 알래스카로 떠나기 전에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꼭 거짓말을 줏어대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간 것이 화근이었다. 강의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급히 날라왔다고 하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져갔던 컴퓨터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갑자기 논문 때문에 여행할 일이 생겨서 나갔어요. 저 지금 많이 피곤하거든요. 내일 이야기해요. 당신은 밖에서 주무세요.”하고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정말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와 주체를 못할 지경이었다. 북극에서 잠을 거의 못 잔 탓이었다. 탕 하고 뭐가 문에 부딪쳤다. “말해. 누구랑 갔어 ” 남편이 밖에서 소리쳤다. “너 정말 독한 여자야. 꼭 복수를 이렇게 해야 한단 말이지. 몇 년 동안 그렇게 빌었으면 됐지 네가 뭔데.” 그는 자기가 독일에 있을 때 독일 여학생과 한달 넘게 이탈리아에 여행했던 일을 내가 복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베니스에서 한국 식당을 열고 있던 친구가 귀국했을 때 말하지 않았다면 그냥 묻어버릴 일이었다. “동양남자와 금발의 여자가 하도 다정하게 굴기에 자세히 봤는데 그놈이 네 남편이었지 뭐냐. 참 여자 이름이 ‘잉가’더라. 딴 말은 독일 말이라 난 못 알아들었지만.”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던 친구였다. 얼굴을 잘 못 볼 리가 없었다. 그가 귀국하면서 우린 침실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이혼을 요구하는 나에게 호기심이었지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고 자기를 이해하라고 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달을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이었다. “남정네들은 그럴 수 있다. 네가 용서해라.”하면서 이혼을 용납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완고한 친정에서도 절대 이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집안에서 이혼한 사람은 아직 없다. 그 정도 가지고 집안망신 시키지 말라면서. “여행이나 다녀오자. 그리스에 가고 싶어 했었지. 가자. 햇빛이 좋을 거야.” 침실에서 나오는 나에게 남편은 마음이 가라앉은 듯 말했다. 난 고개를 저으며 그의 눈을 보았다. “당신 나랑 이렇게 사는 것 행복해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또 시작하는 거야 ” “진짜 행복하냐구요 ” “행복 그게 뭔데 ” “그러면 당신은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인생이란 그런 거야. 행복한 것도 그렇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구.” “아니요.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없어지면 당신 당장은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겠지만 살다보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혹시 알아요 아이도 낳을지. 당신만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그런 사람 만날 거예요. 사랑한다는 것, 산다는 것 좋은 것이에요. 당신이 잉가와 지냈던 것 가지고 이러는 거 아니예요. 정말.” “그렇지 않아. 잉가 일은 실수였다고 했잖아. 몇 번이나 용서를 빌었고. 난 당신과 함께 하는 삶을 후회해본 적이 없어. 우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잖아.” “그렇다고 행복해 하지는 않았지요 잘 생각해봐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10년도 전에 한 결혼이란 종신 계약 때문에 의무로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 행복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나올 정도로 기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요 ” “소설에서나 가능해. 꿈에서 나와. 문학 박사가 아니랄까봐 그래 ” “그래요. 전 항상 꿈을 꿔요. 그러니 당신 나를 책임지려고 하지 말아요. 제발 나를 놓아줘요. 나도 살아서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삶을 찾고 싶어요.” “난 그럴 수 없어. 당신 딴 남자 만나고 있지 이 일기에 나오는 이 자식이 누구야. 젊은 놈이지. 속으로는 혼자 호박씨 까면서 고고한 척 하지마. 당장 귀국해.”하며 노트북 컴퓨터를 내던졌다. 예정을 두 달이나 앞당겨서 귀국한 뒤 나의 생활은 감옥이었다. 노트는 물론이고 이메일과 편지까지 모두 뒤져본 흔적이 있었다. “당신을 매장시키는 것 아주 쉬워. 신문에 나게 할 수 도 있어. ‘국립 ㅊ대학 영문학 여 교수 연하의 미국 학생과 간통하다’ 라고. 두고 봐. 내가 가만 두나.” 내가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잉가’ 정도 나이의 미국 남자와 만났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나에게 열 배쯤 더 고통을 주어야 공평하다며 흥신소까지 동원해서 나의 학생들에게까지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준에게는 이런 상황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한국에 온 그를 남편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한국에선 법적으로 처벌대상이라는 것을 준이 이해할 리 없었다.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준은 그럴 것이다. “어떤 것이 간음이지 사랑 없이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치르는 관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 준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 그에게 간단히 이메일을 보냈다. ...너무 힘들어 생각조차 올바로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여기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락을 하지 마세요. 절 위해서. 사랑해서 행복했습니다. 나 때문에 많이 아프지 않으시길... 민희 “중년의 위기가 뭔지 알아 다 호르몬 탓이야. 케미칼. 어느 날 하나님이 프로그램한 시간에 스위치가 올라가고 테스토론이란 호르몬이 줄면서 에스트로젠이 늘어나는 거야. 그러면 너나 그 사람같이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는 사추기를 경험하게 돼. 여자가 갱년기를 겪듯이. 그랬잖아.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뇌에서 세 가지 화학요소가 섞여서 빚어내는 화학반응이라고. 3년 이상 가는 법이 없다고. 기다려봐. 그런 감정은 없어질 테니...너 미국 가서 뭐하고 살래 대학 교수 웃기지 마. 영어 미국에선 개도 영어로 짖는다는 것 몰라 넌 네가 지금까지 쟁취한 독립된 삶을 포기하는 거야 이 바보야.” 그냥 미국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내 말을 들은 의사 친구가 말했다. “선택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습니다. 난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당신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라고 준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나도 대차대조표를 놓고 냉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 버렸다. 생각 속의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말했던 ‘왜 뭍짐승인 고래가 바다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을까 ’ 라는 물음이 생각났다. 고래가 처음 바다로 가면서 느꼈을 숨을 참는 고통이 이러했을까 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해서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준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당신의 책임은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인생에 있어요. 자신을 배반하지 말아요...” “왜 이혼을 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과 ” 알래스카에 있을 때 처음으로 이혼에 대해 물었었다. “사랑이 없어지고 나니 연구냐 가정이냐를 선택하라는 요구가 나왔고...아이 때문에 주저했지만 사랑 없이 아이를 위해 사는 결혼 생활은 오히려 아이에게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하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이혼... 그래. 준 같이 미국화 된 사람이면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나와의 사랑도 쉽게 없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과 헤어질 수 있다면 나와는 더욱 쉽게. 아니 벌써 잊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그럴 리 없어. 내가 사랑하는 한 준도 날 사랑할거야.... 불안과 확신이 쌍둥이 위성처럼 내 머리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옛날 익숙해진 모든 것들이 낯설어졌다. 집도 학교도 친구도 모두 달라져 있었다. 아니 그것들은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졌는지 모른다. 명치끝에 계란 만한 혹이 느껴지며 견디지 못하게 아린 통증이 밤잠을 앗아가곤 했다. 물이 무서워져 땅으로 도망가다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가는 고래의 꿈을 꾸었다. 가만 보니 준의 얼굴이었다. 울부짖으며 그 이름을 부르다 보니 그 얼굴은 내 얼굴이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죽어 가는 살점들을 갈매기들이 몰려와 쪼아먹고 있었다. 섬뜩한 꿈이었다. “고래들은 100마일도 넘는 거리를 낮은 주파수의 소리로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한 노래가 유행이 되어 전 지구의 고래들에게 불리게 되는 것이 한 달이 채 안 걸려요.” 언젠가 주차장에 가면서 하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지금 당신은 나에게 어떤 주파수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오랜만에 방문한 준의 웹페이지에는 시 하나가 그림과 함께 올라와 있었다. 마이크가 물 속에 길게 드리워 있고 두 마리 고래가 물방울을 뱉어내고 있는 그림 위에 쓰여져 있는 시였다. 가슴에 줄 내리고 그대 가만 들어봐요 죽어있던 깊은 물 속 초록빛 작은 고래 노래 들려 오나요 북극 바다 끝에서 그대 부르는 노래 밖은 아직도 꽃봉오리가 얼어 붙었네요 찬바람은 아침 저녁 휭휭 불고요 가슴엔 두꺼운 얼음판이 있네요 작은 얼음 구멍 사이로 그대 줄을 내려봐요 가만 눈을 감고 두 손을 감싸쥐고 들어봐요 들려 오나요 멀리서 가까이서 오는 저 노래 초록 얼음에 묻혔던 그리움이, 나의 사랑이 들려 오나요 그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라도 그를 포기할 수는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귀국하고 처음으로 플루트를 꺼내들어 텔레만의 이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컨드 플루트 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왔다. 그래 그곳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쳐도 돼.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야. 나는 정말 살고 싶어. 육지로 도망가는 고래가 아니라 깊은 물을 찾는 고래가 될 꺼야. 나는 이민 가방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끝> 2002년 미주 중앙일보 입상소감 그림을 그리면서 자꾸 머리나 다리를 잘라버리는 엽기적인 나에게 마누라는 내 오른쪽 두뇌가 덜 발달돼 그렇다고 했다. 항상 분석과 논리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어 사랑과 감정이 있는 사람의 모습들을 잘 못본다는 말이었다. 18년 전 알래스카 북단의 얼어붙은 북극해에서 만난 사람들과 고래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하면서 또 한번 나의 오른쪽 뇌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받은 감동을 도저히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의 형식을 빌어 보았지만 나의 시적 자질이 부족해 도저히 그 감동을 살릴 수 없었고 수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기로 했다. 거짓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자유스러울 것 같았는데 시작하고보니 이 또한 시만큼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족한 글을 가하다고 하신 이유가 소설 공부를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격려로 받아드리고 열심히 과학과 문학을 이어보고 싶다. 부족한 글에 가능성을 보아주신 심사위원과 문학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신 어머니, 소설도 긴장과 압축이 시만큼 필요하다고 충고해준 소설을 쓰는 동생 인덕, 과학도로서의 문인의 길을 가르쳐주신 문인귀 시인, 또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미주 중앙일보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