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2010.02.28 10:15

이월란 조회 수:34




사루비아



이월란(10/02/24)



비가 내려서, 직장을 그만 두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친 듯이 다니던 직장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누군가 떠내려 갈 것만 같아
떠내려 가지 않고 꿋꿋이 서 있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었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에, 사는게 뭔지도 몰랐던 그 때
어느 소설 속의 주인공은 교정에 피어 있는 사루비아가
너무 붉어서, 눈이 시리도록 너무 붉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땐
미친 것, 싶었었다


결혼 소식보다 부고가 잦은 명품 드라마
주인공들은 기승전결의 마무리도 하지 않고 떼거리로 사라지는데
목숨조차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버리는 신의 습작품은
해독될 수 없는 난해한 코드일 뿐인데


사루비아는 사전에 '샐비어'의 잘못, 이라고 나와 있다
샐비어는 말도 통하지 않는 어느 미국여자의 이름 같고
나는 사루비아가 좋다
사, 루, 비, 아,
잘못된 이름, 사, 루, 비, 아, 가 좋다


잘못된 이름이 평생의 이름이 되는 것이 삶이었지 않나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발 사이로
피멍 든 사루비아가 뒤꿈치를 바짝 들고 걸어가고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619 바하마 해변에서 웃지못할 헤푸닝 김수영 2010.03.02 31
7618 행복은 조건이 아닌 선택 신영 2010.03.03 62
7617 백설(白雪) 속에서 백석(白石)을 만나다 이영숙 2010.03.02 50
7616 산호성(Coral Castle)과 땅딸보 김수영 2010.03.02 49
7615 사랑은 권태성 2010.06.12 55
7614 동대문 야시장 김수영 2010.02.28 42
7613 Jealousy 이월란 2010.05.02 63
7612 질그릇 손길이 / 김영교 김영교 2010.03.05 46
7611 빛으로 샤워하기(견공시리즈 57) 이월란 2010.03.05 62
7610 오연희 2010.03.05 50
7609 눈물은 그 흔적이 없다 / 김영교 김영교 2010.03.04 43
7608 꽃시계 이월란 2010.03.30 54
7607 주차위반 이월란 2010.02.28 62
7606 자동 응답기 이월란 2010.02.28 14
7605 그 순간이 다시 온다면 이월란 2010.02.28 45
» 사루비아 이월란 2010.02.28 34
7603 아홉 손가락 이월란 2010.02.28 45
7602 Revenge 이월란 2010.02.28 53
7601 가을하늘 정해정 2010.03.09 45
7600 할머니의 행복 김사빈 2010.03.09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