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2010.11.13 04:40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조옥동 시인
10월 하순 보스턴 거리엔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리의 가로수는 짙게 물든 가을 단풍잎 비를 조용히 떨구고 있었다. 꽃잎보다 더 붉은 가을비로 모처럼 LA에서 간 여행자의 가슴은 흠씬 젖어 들었다.
어린 외손자의 손에 이끌려 온 가족이 산책을 나섰다. 그러나 내가 손자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15개월짜리 그 조그만 손 안에 내 손가락 두 개가 꼭 잡혀 걸었다.
선택의 기회는 어른들에게 있지 않았고 온전히 그 어린 것의 자유였다. 따라서 그 작은 손에 손가락 두 개를 내어주는 일이 그날 우리 어른들의 기쁨이고 즐거움 이었다.
생각하면 그 녀석은 벌써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제 마음대로 손을 놓고 혼자 놀거나 딴전을 피우다 돌아와 다시 어른들의 손을 잡곤 했다.
근대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발달하고 다시 아날로그 구조에서 디지털 구조로 변화하면서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이 주어져도 무엇을 어떻게 소유하고 즐길 것인가는 각자의 능력과 선택의 의지에 달렸다.
17세기 영국의 작가이며 설교자였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주인공이 멸망의 성을 떠나 하늘 나라에 이르는 여행기를 우화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번연 자신의 고통스런 생애를 은유한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주인공 크리스천이 수다쟁이 게으름 허영 등 많은 등장 인물과 만나면서 끝까지 정의롭고 바른 쪽과 손을 잡고 죄악된 쪽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고뇌와 박해 속을 헤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마침내 최후의 영광된 문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칠레 구리광산의 사고에서 구조된 한 광부는 신과 악마 사이에서 자기는 신의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산다는 사실은 곧 누구와 손을 잡고 가는 길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흔히들 성공의 비결은 줄서기에 달렸다고 한다. 줄을 잘 선다는 의미는 믿고 의지할 만한 자기보다 능력 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았다는 말의 뉘앙스가 밝고 정의롭게 음미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일까?
서로 손을 잡고 흔드는 악수는 원래 남자들이 무기를 쥐는 오른 손을 내밀어서 공격하지 않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는 뜻으로 발생했다 한다. 손을 잡는 일이 악수처럼 누가 누구의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면 좋겠다. 악수란 피동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왕에 손을 잡으려면 잡히는 편이 아니고 어린 손자처럼 잡는 편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택의 방법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와 지식과 양심의 적용이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쁨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의 의지라고 말했다.
걱정과 염려도 또 다른 선택이다.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11월-11일-2010 '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8199 | A Brief History of Jewelry | 이월란 | 2010.11.24 | 74 |
| 8198 | The New Deal | 이월란 | 2010.11.24 | 73 |
| 8197 |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 박영숙영 | 2010.11.24 | 74 |
| 8196 | 뇌는 죄가 없다 - Brain is not guilty | 박성춘 | 2010.11.21 | 75 |
| 8195 | 빗장을 풀고 / 석정희 | 석정희 | 2010.11.20 | 90 |
| 8194 | 꼴, 끼, 깡, 꾀, 끈, 꿈의 미학 | 김수영 | 2010.11.18 | 87 |
| 8193 | 금지옥엽/ 미주한국일보[삶과 생각] | 조만연.조옥동 | 2010.11.16 | 91 |
| 8192 | ' 미국 속의 섬' 벗어나야 | 정찬열 | 2010.11.15 | 92 |
| 8191 | 비망록 2010 | 강성재 | 2010.11.14 | 81 |
| 8190 | 산 꼭대기 옥탑 방 | 강성재 | 2010.11.13 | 83 |
| 8189 | 칼슨(Carson)의 겨울 | 강성재 | 2010.11.13 | 80 |
| 8188 | 꽃씨 | 김영교 | 2010.11.13 | 83 |
| 8187 | 등불 | 김영교 | 2010.11.13 | 82 |
| » |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 조만연.조옥동 | 2010.11.13 | 87 |
| 8185 | 조화[造花] | 이영숙 | 2010.11.13 | 89 |
| 8184 | 겨울 바다 (수정본) | 지희선 | 2010.11.12 | 83 |
| 8183 | 뒤 | 안경라 | 2010.11.12 | 80 |
| 8182 | 딱지 | 안경라 | 2010.11.12 | 72 |
| 8181 | 꿈자리 | 정국희 | 2010.11.11 | 82 |
| 8180 | 빈 집 | 최익철 | 2010.11.10 | 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