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쪽 얼굴을

2011.05.23 07:31

이영숙 조회 수:56


  나는 두 얼굴을 가졌다.  필요할 때마다 얼굴을 바꾸고 살고 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내 모습이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일을 만났을 때는 저렇게 바꾸고 살고 있는 나를 보며 마음 아프다.  한결같은 얼굴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대단한 사람이지 않을까?  언제나 동일한 얼굴로, 늘 변함없는 자세로, 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나는 부러워한다.  
  벌써 몇 년 전이다.  열심히 참석하던 모임에서 어느 분이 나를 보고 단아한 모습과 교양 있는 말투라고 했다.  내가 유난히 앙큼을 떨었는지, 그 분이 사람을 잘못 보았는지는 모른다.  아니면, 옆의 다른 사람에게 한다는 게 실수로 나에게 말했을 수도…….  어쨌든 싫지 않음이 사실이었다.  여자로서는 대단한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어지지 않았다.  결코 ‘교양 있고 단아하게’ 참지 못했다.  큰 소리로 떠들며 자랑해야만 했다.  남편에게 어깨의 힘을 잔뜩 넣고 코를 한껏 치켜 올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단아하고 교양 있대요. 호호호호...”  
  남편의 반응이 궁금했다.  한껏 올라간 내 어깨를 다독여 주며 “그럼... 당신은 그래.”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게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그 사람들은 당신이 집에서 은별이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지.”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결코 단아하지 못한 내 가슴을 향해 남편은 사정없이 화살을 날렸다.  
  내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나의 말이 달라진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생각하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결같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한 모습이다.  화가 나도 교양 있게 웃음으로 참을 수 있고, 억울해도 단아한 모습으로 속마음을 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난하게, 평범하게 나를 나타낼 때는 ‘교양 있고 단아한 모습’으로 꾸며 나타낸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불이익을 줄 때는 바로 다른 얼굴로 바뀌어서 불쾌해 하고 화난 모습을 보이고 마는 내 모습.  조금만 자존심 상하는 일이 나에게 다가와도 불쑥 화를 낸다.  내 마음의 평안을 조금만 건드려도 순간적으로 소리가 하이 톤으로 올라가고 만다.  곧 바로 후회하며 나의 다른 얼굴을 강물에 씻어버리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화내는 못난 얼굴은 좀 내다버리고 언제나 ‘교양’있는 모습을 가질 수는 없을까?  왜 이렇게 두 얼굴의 주인이 되어 괴로워하고 아파해야 할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나는 상황이 와도 속으로 잘 누르고 겉으로는 웃으며 우아하게, 교양 있게 잘 참는다.  나에게는 그게 쉽지 않음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링컨 대통령의 ‘두 얼굴’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국회에서 한 의원이 연설하고 있는 링컨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파렴치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요.”라고 퍼부었다.  링컨은 “여러분! 제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이런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라는 유머로 재치 있게 회중을 웃겼다.  결코 자신을 욕하는 사람에게 화난 얼굴을 보이지 않고 교양 있고 품위 있는 ‘하나뿐인 얼굴’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서 위대한 링컨이 아니던가.
  얼마 전 일이다.  함께 있는 어느 분이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갑고 냉정한 태도로 앞뒤 맞지 않는 말로 따졌다.  놀랍게도 딴 사람 앞에서 그녀는 환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까지 머금고“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맞죠?”라고 나에게 확인 반문까지 할 때 현기증을 느끼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힘이 없는 나는 거기에 맞서서 따져들 자신이 없었다.  그냥 내 잘못이라 확인시켜주고 그 자리를 물러서야 했다.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사람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구나.  내가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것이 너와나의 문제를 넘어 세상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  조금 더 심한 사람과 그나마 좀 덜한 사람.  그것이 전부이지 않을까.  앞 얼굴과 뒤 얼굴이 다른 사람.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얼굴을 바꿀 준비가 된 사람.  한껏 교양 있고 단아하다가 어느 순간 바로 냉정하고 차가워질 수 있는 사람.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확실한 자신의 모습이라던가?  주위에 누가 있건, 어떤 상황이 닥치던 늘 같은 모습을, 같은 얼굴을 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나에게 있는 이 못난 한쪽 얼굴을 지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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