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105                        두려움이 사라질 그 날을 기다리며
                                                                                노 기제
        “요즘 환갑잔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여행을 가든지 그냥 조용히 지내지.  야단스레 잔치하긴 너무 젊거든.”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환갑잔치에 관한 의견이다. 거기엔 내 의견도 포함되어 있다. 적어도 내 식구에게 해당 사항이 되기 전 까지는.
        어쩜 내 자신에게 닥쳐도 난 여전히 잔치네 뭐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요동을 친다. 내 남편의 환갑이 다가온다. 한국에서 소식이 왔다. 남편의 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큰 형님께서 이번 생일엔 꼭 한국에 나오라는 말씀이다. 서울 오는 날짜를 확실하게 정해 주면 일가친척들 다 모아 잔치를 해 주시겠단다.
     그냥 단순하게 언급 되는 생일잔치가  아니다. 가슴에  몇 개 박혀있는 바늘 같은  아픔이 느껴지는 간절한 소망의 말씀이다.  순서로는 둘째가 되시는 형님은 금년에 팔순이시다.  맨 끝으로 태어난 내 남편을 빼곤 형님의 전 후 모든 형제 네 사람이 환갑잔치를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슬 아슬하게 환갑을 맞았던 여동생인 내 남편의 누님도 투병중에 맞은 생일이라  잔치를 못하고 말았다.  회복 하면 큰 잔치를 하리라던 식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잠드셨다. 형제들에만 제한  된 일이 아니다.  얼굴도 뵙지 못한 시어머님은 내 남편이 대학 다닐 때 돌아 가셨다는 데, 육십 전이셨단다.  
     입다물고 조용히 있는 남편에겐 뭔가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짜여진 운명이 있지 않을까 란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어쩌다 그 두려움이 표출 되어 나오지만 그 때 마다 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상기시킨다.  유전인자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생활이다.  당신 부모님이나 형님, 누나가 살아오신 생활과 운동하며 삶을 즐기는 당신의 생활을 비교해 보라. 식 생활도 판이하게 다르다. 몸에 안 좋은 지방은 거의 섭취하지 않는다. 현미와 야채를 위주로 한 식생활이다. 사회생활도 물론 다르다.  스트레스에 노출 된 모양의 양과 질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비슷할 순 없다. 무조건 형제들이, 또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해서 자신도 그 비슷한 시기에 죽을 것 같은 강박감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어찌 그런 두려움을 떨칠 수가 있겠는가만, 그래도 우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엄연히 같지 않은 환경에서 같지 않은 생활을 해 왔으니 같은 시기에 죽을 이유는 없다.  그건 남편을 위로하는 나의 말일 뿐,  막상 나 자신도 아주 편안한 건 아니다. 가끔 몰아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은  쿵쾅거린다.  제법 탄탄하게 믿음안에서 잘 견디는 줄 알았는데, 나도 별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임이 확증되곤 한다. 그래도 겉으론 의연한 척 포장을 하지만 남편도 나도 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느끼고 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
   언제나 자신이 없고 두려움이 나를 휩싸며 까부를 때면 무조건 외치는 내 호신용 외침이다.  두 번, 세 번, 외치다 보면 어느새 내 맘은 평온을 되 찾곤 한다. 거뜬하게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이다.  나 보단 많이 이치를 따지고 전 후 좌 우 사정을 숫자 놀음하듯 계산하며 완벽하게  살기를 원하는 남편은 신앙으로 그런 두려움을 떨치기엔 너무 이론적이다.  기껏 농담하듯이 그 때까지 살 수 있겠냐 며 입 밖으로 내 뱉곤 감정을 다스리는 모양새였다.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입으로 시인 할 것이 아니다.  자신 없는 만큼 긍정적으로 말을 할 필요가 있다.
     드디어 그 환갑이 되는 해가 되었다. 사월 이십 팔일까진 아직 석 달이 남았지만 새 해가 되면서는 약간 자신감이 생긴  표정이다.  일 주일에 닷새를 꽁꽁 묶여 있는 사업체도 처분할 모양이다. 환갑까지만 살아도 땡큐라던 마음이 이젠 자신의 남은 생애를 시간에 질질 끌려가며 살기를 거부하는 눈치다.  
     그토록 좋아하는 산을 오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가보다. 주말이나 연휴나 꼭꼭 챙겨서 근처의 산을 섭렵하며 살았지만 높은 산에 도전하는 원정산행에 참가하지 못하며 살아 온 날들이 남편에겐 무척 불행한 삶이었던 것을 난 안다.
     2002년도에 큰 맘 먹고 시도했던 알라스카에 있는 맥킨리 산 등정때도 시간과 경제적 이유 때문에 자신의 계획대로 산행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을 많이 아파 하던 모습을 봤다. 바로 그 때 난 남편에게 위로 했다. 이 담엔 아무런 제약도 받지 말고 자기랑 나랑 둘이 가자. 어떤 이유로든 남에게 지시 받고 계획에 지장을 받고 등정에 차질이 오는 그런 등산은 하지 말자. 자기 뜻대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이제 나머지 석달이 후다닥 지나면,  형님이 차려 주시는 환갑잔치 보란듯이 찾아 먹고 그동안 괴롭힌 두려움을 완전히 때려 부수게 된다.  사단아, 물러가라.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잔치가 끝나면, 환갑전에 죽어 버릴것 같던 두려움의 언덕을 넘어 자유로와 진 자신감과 건강한 삶을 소유하면서 공연히 떨었던 옛 일 기억 하며 똑 같은 경우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증인이 되어 주리라. 생활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유전과는 상관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주리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9 목어 풍경 강학희 2004.11.23 30
» 두려움이 사라질 그날을 기다리며 노기제 2005.02.04 33
317 연(鳶) 백선영 2004.11.23 66
316 억울한 사연 노기제 2004.11.22 46
315 정치 시사 소설 <도청> 정진관 2004.11.21 71
314 단풍으로 만든 명함 조만연.조옥동 2004.11.21 107
313 아침 기도 정용진 2004.11.21 39
312 여자는 물과 같거든 노기제 2004.11.21 37
311 밤 바다 정용진 2004.11.19 31
310 나무의 연가(戀歌) 정용진 2004.11.19 28
309 철새 정어빙 2004.11.18 38
308 만남의 깃발 김영교 2004.11.18 25
307 K시인 이야기 오연희 2005.01.19 16
306 그럴듯한 계산법 오연희 2004.11.17 85
305 길을 걷다보면 오연희 2004.11.17 241
304 한 가지 버리면서 노기제 2004.11.16 156
303 Greetings from Ko family 김영교 2004.11.15 134
302 해장국집에서 길버트 한 2004.11.13 118
301 남편과 호들갑이 <수정본 2011년> 김영강 2005.01.10 69
300 11월의 우요일 박경숙 2004.11.11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