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2004.11.23 21:20

강학희 조회 수:40 추천:4

사슴 / 강학희

나를 보아요
나의 눈을 깊이깊이
그리고 내 안의
당신을 보아요
본래의 당신을

나를 보아요
나의 눈을 깊이깊이
그리고 내 안의
당신을 깨워요
잠이든 당신을.



시작 노트:

이른 아침 커피 한잔의 고요를 깨는 앓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소리에 우린 잠시 서로 쳐다보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순간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렀다. 앞마당 철책 울칸에 목이 끼여 어쩔줄 몰라 꺼억 꺽 우는 아기 사슴.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내가 울어야 할 판이었지만, 어느 결에 들어가 타월 몇 장을 들고 나온 그는 직업은 속일 수 없는지 환자를 진료하듯 재빨리 그의 목에 타월을 감고, 갸녀린 목을 살살 어루며 머리를 빼도록 도와주었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안절부절 겁에 질려 바라보던 나는, 애를 써도 목을 빼지 못하는 모습이 하 안쓰러워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많이 아픈가봐!" 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얼른 여기나 좀 잡아봐!"하는 소리에 얼떨결에 그의 목을 잡으려다 참으로 우연찮게 그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그토록 아름다운 눈, 그 여리고 순진 무구한 아기 눈을 보았다. 그 청신한 눈은 어쩜 너무나 천진스러워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문득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던 시인에게 이 슬프도록 순한 눈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까스로 목을 뺀 그가 겅충겅충 집 뒤 골짜기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다, 뒤돌아보니 남편도 땀방울이 송송 맺힌 얼굴로 흐믓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숲으로 돌린 눈길엔, 그는 사라졌어도 선한 얼굴 하나 아직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분명 "보시니 좋더라"한 바로 그 본래의 얼굴일 것이다.


SF 펜문학 2004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