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자리에

2005.09.12 17:18

정찬열 조회 수:35

                
                                                
  새벽 한 시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잠결에 받아보니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가 없느냐고 한국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그가 물었다. 내 친구뿐이 아니다. 초강대국 미국에서 어떻게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이번 참사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재난을 예고하고 이를 막기 위한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이라크전쟁 때문에 국내문제가 묵살 당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설마 둑이 무너지기야 하겠느냐는 정부의 안이한 자세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다소 색다른 주장이지만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되기도 했다.  
  부패했기 때문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사회는 부패와는 먼 나라로 알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높은 양반이라도 교통위반을 하면 딱지를 떼는 곳이 이 곳이고, 마켓을 하던 어떤 분이 관리에게 작은 돈을 건내려다가 뇌물수수죄로 잡혀 들어갈 만큼 청렴한 곳이 바로 이 땅이다.  
  그런데 참사가 발생한 뉴올리언즈는 달랐던 모양이다. 2004년 어느 날, 이 도시 경찰이 일부러 골목마다 다니며 공포를 쏴 댔다. 총성이 700발도 넘게 울렸다. 시민들이 범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시민정신 테스트였다. 신고율이 낮으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단 한 건의 신고도 없었다.
   연초부터 올 8월까지 이 도시에서 192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미 전국평균의 10배다. 침수이후 약탈과 총격과 살인으로 얼룩졌던 장면이 어느 정도 이해 될 수 있는 배경이다. 미국의 파리라 불리우며 아름다움과 낭만을 자랑하던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즈에 그런 이면이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다.  
   뉴올리언즈는 흑인 인구가 70%를 넘는다. 설마 둑이 터질 리가 있겠느냐고 집에 머물었던 사람. 재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차가 없어 빠져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 물이 차 오르자 죽거나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이었다.
   피해자중에 흑인이 많은 것을 지적하며 흑백문제, 빈부 갈등 등 미국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고 지역에 흑인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피해가 그만큼 더 많았을 뿐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명피해가 수천에서 어쩌면 만 명을 넘을 것이라 하고, 피해액이 2천억 달러를 웃돌 것이라 한다. 대 참사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힘을 모아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자리에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재민을 도우러 피해 현장으로 달려갔고,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한인들도 긴급히 움직였다. 간호원이 필요하다는 보도를 보고 LA병원에 근무하는 내 친구의 조카는 휴가를 내고 현장으로 날아갔다. 각 지역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금새 20여만 달러를 모았고, 이 운동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9.11에 이은 두 번째 참사를 미국은 잘 견디어 내고 있다. 국민들이 단결하고, 우방이 보내주는 지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 한국이 보내준 성원에 대해 CNN을 비롯한 메스콤에서 크게 보도를 했다.  
   미국은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맞으면 성조기 아래 하나로 뭉쳐 어려움을 이겨낸 전통이 있다. 외부로부터 도전은 물론 내부의 시련도 한 덩이로 뭉쳐 극복해내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 보인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나라의 건국이념인 자유, 평등, 행복추구라는 숭고한 가치를 믿기 때문이 아닐까.
  뉴스를 보니 고였던 물이 빠른 속도로 빠지고 전력공급이 재개되는 등, 복구 작업이 순조롭다고 한다. 비행장이 다시 열리고 사망자도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이번 참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05년 9월 14일 광주매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