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끼"와 "춘향뎐"
2007.06.15 23:36
"가부끼"와 "춘향뎐" 글마루 2005
육년 전 일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관람석에 앉아 있는 내 등뼈가 곧아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도 자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이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내 나라에 대한 진솔한 긍지였다.
오래 전의 일 부터 적고 싶다. UCLA의 ‘로이스 홀’에서 일본 고전극 “가부끼(歌舞妓)”가 상연된다고 했다. 갑자기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릴 적 내가 죽도록 싫어했던 것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얼굴에 하얗게 떡가루 칠 하고, 그들 신사(神社) 앞에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목이 찢어라 불러대던 그 가극이다. 진저리치며 양 귀를 막고 싶었던 일이 새롭게 떠올랐다.
이제 육십 여 년이 지났다. 지금은 내게 어떻게 달라 보일까하는 호기심에서 그 곳에 차를 몰았다. 표는 벌써 매진되었고, 찾아가지 않는 표가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나는 그들의 고전을 꼭 알아보리라 마음먹고 매표소 앞에서 기다렸다. 매표창구를 닫기 직전 판매원은 나를 불렀다. 38불 짜리 표 한 장이 나왔으니 사겠는가고 물었다.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지만 사기로 했다.
그날 나는 그들의 고전에 대한 새 눈이 떴다. 옛날에 알았던 ‘가부끼’가 아니었다. 다른 것으로 비쳤다. 하얀 가루칠은 그들 고유의 색이었고, 그 목청도 적절한 웨침임을 알았다. 묵묵히 사람들 뒤를 따라 나오면서 그들 고전 예술의 진미를 되씹고 있었다.
해가 진지 한참 되었지만 밖은 아직 환했다. 주차된 차 쪽으로 천천히 걸으며 그들의 문화가 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차 가까이 가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차창 앞에 흰 봉투가 나풀거리고 있지 않는가. 주차위반 딲지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당황하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오늘의 공연은 그 만한 값을 치뤄도 남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관람은 내가 난생 처음 지불해 본 비싼 표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렇게 부러워했던 예술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관에서 본 “춘향뎐‘이다. 다른 나라와 똑 같이 우리도 전통예술 문화를 갖고 있다는 기쁨은 감격으로 변했다. 이것은 정녕 멋진 우리의 고전이다.
우리 인간문화재의 신기어린 명창에 떨리도록 흥분하며, 내 등뼈는 자꾸 곧아 올라갔다. 부르는 춘향가에 맞춰 ‘춘향뎐’이 펼쳐진다. 물이 돌돌돌 흐르고, 바람이 설설 불고, 새가 재재 지저귀는 영상이 창으로 다듬어 그 예술은 과히 고답적이었다. 이제까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방언인 우리의 고어가 자막으로 풀이되면서, 춘향가는 ‘춘향뎐’으로 완성을 이루었다.
아쉬운 것은 우리의 멋들어진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못 된 것이다. 평에 의하면 예술영화로서는 손색이 없지만, 깊이 있는 연기와 공감대가 부족하다 했다. 그것만 보충되었다면 외국 영화상은 넓적 탈 수 있었을 것이고, 또 우리의 춘향은 온 세계에 그 열녀를 과시하지 않았겠는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아주 반응이 좋았다. 한 극장에서 오 일만 흥행하려던 것을, 다섯 극장에서 장기 상영에 들어가게 되었다. 역시 영화의 도시는 다르다.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즉시 다섯 째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은 한 동안 영화필름 편집 등 영화 관계 일에 종사해 온 영화인이다. 그런 그는 자기 생애에 한번 자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욕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각본을 썼고 또 그것을 영문으로 번역 해 놓고, 이제는 감독을 찾는 일만 남은 단계라고 했다.
나는 전화로 “춘향뎐”을 감독한 아무개가 어떻겠느냐고 권해 보았다. 동생은 첫마디로 안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감독한 영화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술성을 더 따지는 감독이어서 흥행에서 실패한다고 했다. 영화도 좋아야 되겠지만 돈도 벌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론이다. 나는 예술 먼저 돈이 앞선다는 사고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 동생도 각박한 세상 세태에 그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이 글을 발표하던 그 시간, 교실의 한 시인은 펄쩍 뛰면서 무슨 소린가고 반박했다. 그가 감독한 여러 영화는 한국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키며 그 예술성을 과시, 흥행에 성공했단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가 기대를 걸었던 동생은 그런 영역에 끼지 못하는 둔재였던가. 그날로 기대를 접었다. 오년 후인 지금까지 영화가 나왔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다.
노인 할인요금 5불 50센트를 내고 우리나라 예술을 찾았다. 일본 ‘가부끼’에 짝지지 않는 보배 같은 우리 고전이다. 기 백불 내고 보아도 아깝지 않았을 기쁨을 안겨준 우리의 “춘향뎐”... 아마 이럴 때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지 않았을까. 기뻐서 나도 우리나라 만세를 불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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