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쟝뛰유의 눈
2007.01.23 04:3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본다. 요즘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는 ‘다빈치 코드’의 중심그림이다. 소설의 작가는 그림 속 예수의 옆자리에 앉은 인물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고 추리한다. 수염이 없는 점, 다소곳이 모아 쥔 손, 살짝 솟은 가슴 등 여성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아내 라고 추정하며 그림 속에서 예수와 요한 사이의 V자 공간도 잔(聖杯)(혹은 여성) 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상상력을 동원하여 예수의 혈통이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정말 그림을 자세히 보면 요한의 모습은 모나리자의 모델과 비슷하다. 허지만 르네상스 당시는 성인남자라도 다만 연소하다는 표시로, 혹은 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상징으로, ‘여성적인’ 얼굴로 그렸다고 한다. 12사도 중의 막내 요한의 얼굴이니 순수하고 연소했을 것이니 당연히 여성적 얼굴로 표현했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요한이 ‘왕의 남자’ ‘이준기’와 같은 미인형 남자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역사의 기록이 없으니 요한의 모습은 다빈치의 상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빈치코드’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림을 보면서 상상력을 마음껏 펴 볼 수 있는 소설가의 여유가 부럽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많은 대화를 나눈 뒤에야 그런 소설을 내놓을 수 있었으리라.
이주헌의 행복한 미술 산책이란 책을 보면 미술의 감상은 대화의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고 한다. 예술가 혼자서, 혹은 예술 작품 홀로 이야기하며 관객을 단순한 聽者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이름 아래 관객과 작가가 함께 대화하며 의사 소통을 할 때 비로소 감상다운 감상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미술 감상에만 적용되는 것이랴. 문학 무용 음악 영화 연극 등 모든 예술작품의 감상이 작품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예술작품이란 친구와 같아서 한번 만나서 빤짝 하고 알 수 있는 작품도 있을 수 있고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작가가 전하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 내 말도 들어주는 그런 작품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의 친구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을 진정 원한다. 우리는 또 대화하기 위해, 그의 말을 듣는 한편 나의 말도 들려주기 위해 작품을 감상한다.
미국은 도시마다 미술관이 있고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좋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특별 전시회라도 열릴 때면 보고 싶던 유명한 그림을 직접 대할 수 있어서 더욱 좋지만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속에서 깊은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한적한 미술관을 즐겨 찾는다. 그곳에서도 내가 찾는 작품은 훈계하거나 군림하려 드는 작품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자고 손짓하는 작품들이다. 그런 작품 앞에서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가끔 스케치북을 가지고 가서 그림을 복사하기도 한다. 허락을 받으면 큰 화판을 펼칠 수도 있지만 그림과 대화를 하면서는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일 그냥 스케치로 만족할 일이다.
몇 년 전 버지니아 미술 박물관에서 열린 모네 전시회에서 만난 ‘아르쟝뛰유의 눈’ 이란 작품이 그런 작품이었다. 특별 전시회라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유명한 그림 앞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 여유가 없는 것 같은 날이었다. 구석에 전시되었던, 작품 앞에는 별로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머물 수 있었던 한 그림이 나에게 손짓했다. 그림 속의 회색 거리 위로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아르장뛰유의 눈*’ 이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눈 속에 X 자 구도를 따라 담이 그려져 있고 담 옆의 좁은 길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 여인의 모습이 작고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구석에 밀려있어 사람을 끌지 못한 그림이었는데도 나는 그 그림 앞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그 그림 속에서 눈을 맞으며 걷고 있는 여인은 내가 오래 전에 알았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이 나를 끌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얼굴은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하얀 점 하나로 그려진 여인. 하지만 걸음걸이까지 보는 듯 했다.
하늘을 가득 덮은 눈발. 사람들은 이미 다 제 집으로 들어간 길. 여인 혼자서 걸어가고 있다. 앞만 보면서 혹은 땅을 보면서 뒤로는 눈길도 주지 아니한다. 발자국 소리로 내가 뒤따르는 것을 알 터인데 그녀는 눈을 맞으며 앞만 보고 간다.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이유가 나를 피하기 위해서인가? 혹시 옆에 있는 대문으로 쏙 들어가면 어쩌지? 말을 걸었다가 화난 얼굴을 보기라도 하면 또 무슨 망신이지? 나는 그림으로 들어갔고 또 그림에서 나왔다. 그림은 날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나는 그림 속 그녀를 쫓아다녔다. 온종일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아르장뛰유의 거리를 돌아다녔던 날 밤 여인이 내게 대답한다.
“제가 들어가야 할 집은 벌써 지났습니다. 제가 뒤를 돌아보지 못한 까닭은 당신을 향한 제 표정을 들킬까 두려워서 입니다.”
그래서 그녀와의 만남은 시작되고 눈 속을 거닐거나 아르쟝뛰유의 강가, 마을의 다리, 혹 연꽃이 있는 연못가를 그녀와 돌아다닌다.** 그리고 이수익 시인의 <그리운 악마>를 욀 것이다.
숨겨 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 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窓門)/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暗號)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罪)의 달디단/ 축배(祝杯)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 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같은 여자.
나는 만남의 기대에 싱그러운 피가 뛰는 젊음으로 돌아간다. 함께라면 말없이 그냥 걷기만 해도 행복하고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마음이 부르다. 그의 말이 모두 내 말이 되고 내 말이 모두 그녀의 말이 된다. 아르쟝뛰유의 눈, 그녀의 종종걸음, 눈길에 남겨진 발자국, 강가를 따라 눈 온 뒤 펑펑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걷던 날… 가슴 따스한 나의 그림이 새로 그려진다.
전시회가 끝나고 그녀와 헤어져야 했다. 그녀는 이제 어느 작은 박물관에서 “제가 들어가야 할 집은 벌써 지났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기다리며 펑펑 내리는 눈 속을 걷고 있을 것이다. <2006년 미주문학 겨울호>
*주: 모네는 ‘아르쟝뛰유의 눈’ 이란 제목의 작품을 여러 편 남겼지만 눈이 펑펑 내리는 그림은 하나이다.
** 모두 모네가 그린 아르장뛰유의 풍경에 나오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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