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 스캔들'과 국정 농단

2016.11.03 09:06

김학천 조회 수:8970

  고대 그리스인들은 거의 모든 일을 신(神)에게 묻는 '신탁'에 의존했다. 그 중에서도 델포이 신전의 신탁이 특히 유명했다. 그러나 신탁은 간혹 애매할 때도 많았다. 전쟁을 치르기 전 출정에 대해 물으면 '나가 싸우라. 이길 것이다'라고 신탁을 내려준다. 그러나 반대로 패해서 돌아와 신전에 나가 따져 물으면 '누가 이길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신탁이나 주술은 대개는 애매모호해서 듣는 이의 사정에 따라 유리한 대로 해석되기 마련이고 이를 이용해 사특하게 말해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을 게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미리 알아내고 싶은 욕망은 그 어느 것도 비견할 바 아니어서 이런 무속에 의지하기도 한다. 더구나 피폐해진 심경에 처했을 땐 더욱 그러할 게다. 
  구한말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왕비 민씨는 궁궐에서 달아나 숨었다. 그러자 대원군은 며느리의 국상을 선포해 버렸다. 죽은 사람으로 만들면 누구든 왕비를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게 한 것이다. 언제 목이 달아날 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러한 때 왕비 앞에 돌연 나타난 이가 있었다. 무녀였다. 그녀는 '신령의 계시'를 운운하면서 '환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무녀의 말대로 왕비는 청나라를 끌어들여 민란을 제압하고 대원군을 누른 뒤 권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일개 무녀는 '진령군'이라는 전대미문의 작위까지 얻고 왕비의 비선 실세로 거듭나면서 정치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온갖 국정을 농단했다. 절대 권력의 무속인이었던 셈이다. 
  한데 한국에서 이들을 연상케 하는 일대 대사건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 놓은 듯 난리도 아니다. 딸은 승마 시비로 한 대학을 휘젓더니 그 엄마는 국가문서를 미리 들여다보고 온갖 사특한 주술로 국정을 농단하고 사람들을 농락했다. 
  나라님은 흔히 용에 비유된다. 해서 임금의 옷은 용포라 하고 얼굴은 용안으로 지칭한다. 이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고의 존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지만 인간사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용조차도 우습게 보는 후흑(厚黑)의 무리들도 있게 마련이다. 해서 용을 땅 위 높은 언덕에 올려놓고 좌지우지하면 이를 농단(壟斷)이라 하고 용을 대나무로 만든 장 속에 가두고 쥐락펴락하면 이는 농락(籠絡)이라 일컫는다. 
  델포이 신탁은 후에 델포이 기법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경마에 적용되기도 했는데 우연찮게도 사전에 빼낸 정보로 경마사기를 치는 영화 '스팅'의 주제가는 '엔터테이너'였다. 마치 그 딸이나 그 엄마를 비롯한 무리들이 국정 농단을 마냥 재미로 즐겼을 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이것도 능력이라고 키득거렸을 게다. 
  문명이란 껍데기를 썼지만 그 속은 무속으로 가득 차고, 정치를 안줏거리 정도로 여기는 두꺼운 낯가죽과 시커먼 속마음을 가진 후흑의 마귀들 정체가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엉켜있다. 그런데도 아직 퇴마를 못하고 미적거리고들 있으니 어쩔거나. 살풀이 굿거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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