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기다리는 목련

2017.04.07 12:09

김학천 조회 수:88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마라/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봄의 금기사항) 그 봄을 찾기 위해‘종일토록 지팡이를 짚고 이 산 저 산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집 뜰의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이미 와 있더라.'는 옛 시처럼 어느덧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봄이 오면 온 생명이 부활하는 대지위에서 꽃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매화와 동백꽃 그리고 두견화가 우리를 겨울잠에서 깨우고 진달래, 벚꽃, 목련, 개나리 들이 여기 저기 붉고 희고 노랗게 피어 '소우주'를 연출하고 있다. 해서 옛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봄날의 꽃과 가을의 달빛’이란 뜻으로 ‘춘화추월(春花秋月)’이라 했나 보다.

 그러나 목련은 매화와 벚꽃으로부터 봄이 시작한다는 이야기에 개의치 않는다. 목련은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의 고결함과 경쾌하게 군무를 추는 벚꽃의 화려함 모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목련은 어머니가 새 생명을 잉태시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처럼 벌거벗은 나무에서 꽃을 피우며 자신을 드러낸다.
봄을 그리워하던 우리는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이런 목련을 따라서 겨울밤마다 잠을 설쳤다. 그러다가 목련이 만개하면 우리는 그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도 읽는다.
  그것뿐인가. 모든 꽃들이 태양을 따라 남쪽을 바라보고 꽃을 피우지만 목련은 반대로 해를 등지고 북쪽을 향하여 꽃을 피우는 고독한 자존심도 있다. 해서 ‘북향화’라 불리는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과 같아 목련(木蓮)이라고도 하고 봉오리가 마치 붓 모양을 닮아 목필(木筆)로도 불린다.

 그러나 자고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을 넘기는 꽃이 없다지만 많은 봄꽃 중에서도 목련은 특히 더 하다. ‘목련꽃 밤은/나무는 서성이며/백년을 오고 가고/바위야 앉아서도/천년을 바라본다/짧고나, 목련꽃 밤은/한 장 젖은 손수건.’(목련꽃 밤은)
  나무와 바위의 시간에 비해 우리가 만나는 목련의 시간은 비할 바 없이 너무나도 짧다. 그럼에도 목련은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오게 할 만큼 눈부시게 돋보인다. 이 때문에 우아한 여인의 기품과 같은 격조로 흠모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우아하던 그 꽃잎도 지는 일순간 흉하게 변한다.

  학과 같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 봉오리마다 꽃이 필 때와는 달리 한순간에 져 땅에 떨어진 하얀 꽃잎이 바람과 흙에 짓이겨지는 뒷모습은 너무 가엽고 처연할 정도다.  

 40 여 년 전‘온 겨레 가슴에 피었던 목련꽃/홀연히 바람에 지고 말았네.’라고 읊은 박목월 시인의‘가신 님을’시의 탄식이 다시 귓가를 울리는 듯하다.
 이제 영어(囹圄)의 몸이 될 지도 모르는 운명의 또 다른 목련이‘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 뜬구름 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리는 날이 얼마나 될까?’(李白)를 되뇌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오래 기려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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