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수필 - 추녀 끝 물고기

2018.04.14 06:40

서경 조회 수:16

추녀 끝 물고기 1.jpg



바람이 분다
풍경 소리 낭랑하고
물고기 춤을 춘다 
 
추녀 끝에 매달려
대롱대는 저 목숨
설법을 전하는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내 목숨
난 무얼 노래하나 
 
오늘도
내 손 잡고
놓치 않는 이 
 
그의 손
꽉 쥔 채




다 
 
  시조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시조' 그룹이 있다. 시, 서, 화에 능하고 사진, 그림, 캘리그레피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 시와 함께 눈까지 호강시켜주는 격조 높은 모임이다.
  어느 날, 사찰 추녀 끝에 물고기가 대롱거리고 있는 풍경 사진이 올라 왔다. 시와 시진에 능한 나병춘 선생님 작품이었다. 이 사진은 비행기 삯 하나 받지 않고 순식간에 고국의 어느 절간 마당으로 날 데려다 주었다.
  이제 나는 '절간 같이 고요하다'는 그 고요로움 속에 나를 맡긴다. 고요한 절 마당엔 아무도 없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만이 조심스레 오간다. 풍경 소리에 취해 함께 춤 추던  물고기가 제 자리로 돌아간다. 마치, 바람따라 흔들리던 마음이 평상심을 찾아 제 자리로 돌아 가듯이.
  가만히 올려다 본다. 웅장한 대웅전 추녀 끝에 매달려 있는 종, 그리고 그 종 밑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물고기. 셋은 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세게 불면 끈이 끊어질 듯 하나,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오래도록 보고 있노라니, 마치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나의 관계처럼 연상 된다. 대웅전처럼 믿음직하게 자리 보전하고 있는 하느님과 절반은 인성을 지녔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종 예수님과 조그만 바람에도 뿌리 째 흔들리는 평신도 나. 각각의 위치와 신분이 다름에도 우리 셋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러브 체인'이겠지.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알 수 없는 감동과 감사가 치밀어 오른다. 또 한편,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풍경은 제 몸 때려 눈 뜬 고기처럼 늘 깨어 있으라 일러주는데 난 무얼 했나.
  아무리 거저 주는 은혜라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신앙 생활을 그저 얻는 행운처럼 공짜로 했다. 여지껏 살아오는 동안 '신덕'과 '인덕'으로 살아 왔다는 내 말은 농이 아니다. 겸손도 아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했지만 어떻게 '항상' 기뻐 하나. 쉬지 말고 기도 하라 일러도, 할 일 많은데 어떻게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나. 범사에 감사하라고? 노력이야 하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등등, 하느님께 디밀고 싶은 못마땅한 그의 요구가 한 두 가지 아니다.
  교회에서는 조건 없는 주님 사랑이라 하고 다 '프리'라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동의할 수 없었다. 성경을 보면, 주님 사랑은 모두 '조건부 사랑'이었다. 또한, 살다 보면 성경처럼 다 지키기도 어렵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하면 오죽 명쾌하고 쉬운가. 에덴 동산도 그냥 주면 되지, 하필이면 따 먹으면 안 되는 선악과를 심어 놓고 왜 사랑을 시험 하시나.
  언젠가, 성경 공부 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더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또 '좁은 문'도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긴 일찌감치 틀린 나. 그 날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온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해도 다분히 삐딱한 신앙이다. 그럼에도, 나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완전하신 하느님' '내 인생의 설계자'란 생각엔 변함이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내 성향 자체가 성경이나 성직자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하느님과 독대하기를 원하고, 어련히 알아서 해 주실까 하는 낙천적 믿음이 있는 것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삶을 통해 보여주신 그 분의 실천적 사랑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집 앞에서 고무줄 뛰기 하고 놀다가 예수님께 낚였던 나. 교회로 향하던 길손의 권유를 받고 고무줄 팽개치고 따라 갔으니, 그물을 버리고 간 베드로와 많이 닮아 있다. 알고 보니, 날 인도하신 여자 분은 주일 학교 교사였다.
  그때부터, 내 삶이 태산처럼 나를 가로 막고 노도처럼 날 희롱 해도 딱 3일이면 해결해 주시던 나의 하느님. 하지만, 지금도 난 여전히 '게으른'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난, 이 시 마지막 줄을 이렇게 놓았다. '그의 손/ 꽉 쥔 채/ 올.려.다.본.다' 그렇다. 신앙 생활에 게으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손 '꽉 쥔 채, 올려다 보는 것'이다. 그 뿐이다.
  시적 완성도를 위해 기교를 부리거나 고심하지 않았다. 다만, 나의 간절한 마음과 눈빛을 어련히 알아 주실까 하는 그 믿음 하나로 내 사랑의 고백 시를 마무리 했다.
  쓰다 보니, 너무 구구절절이 내 '게으른 신앙 생활'에 대해서 고백성사를 하게 됐다. 사실, 이 수필을 쓰게 된 모티브는 내 시를 읽고 한 문우가 끝 줄을 '기도하며 올려 본다' 혹은 '기도로써 올려 본다'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고견'을 보내 왔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도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기도라는 말로 내 시를 화장시킬 수 있나 싶었다. 가끔은 매끈한 도자기 보다 투박한 막사발이 더 정감이 가고 쓰임새가 좋은 법. 그냥 두기로 한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바깥이다. 그리고 시각적 감동을 받아 시각적 표현으로 끝낸 시다. 추녀 끝 물고기는 높이 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바라보며 내 내부로부터 치밀어 올라온 신앙 고백을 한 것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사랑을 고백한 셈이다.
  시의 마지막 표현을 두고 고민은 해 보겠지만, 당장은 교정볼 생각이 없다. 처음 이 시를 썼던 순정어린 마음이 없어질까 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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