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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다시 보기 1 --- 박봉진 수필가

2007.02.24 13:31

윤석훈 조회 수:541 추천:49

작 성  자  :
  박봉진 [] [회원정보보기] (2007-02-02 13:02:53, Hits : 49, Vote : 0)  

홈페이지  :
  http://myhome.mijumunhak.com/youngwave
제      목  :
  수필, 다시 보기 수필 (1)

             수필, 다시 보기 수필 (1)    
                                            박 봉 진
   최근 들어 문학 장르 중에 수필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미래 문학은 수필이 전 장르를 석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나돌 프랑스’가 남긴 말이다. 수필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경향각지 유수한 대학에서 평생교육원을 부설하고 거기서 수필창작반을 운영하는 데가 많다. 지역별, 문학전문지별, 심지어는 백화점이나 아파트단지별로도 그러하다. 오늘날 책이나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수필이란 이름을 달고 발표되는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뿐이랴. 수필전문지 외에도 수필가를 양산하는 불실한 문예지도 꽤 많다. 수필가를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양적팽창 뒤에는 꼭 질적인 문제가 야기되기 마련이다. 잡석무더기 속에서 수석이나 옥돌이 가려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럴 때 일수록 수필장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활동을 통해 수필적 주관을 확립하고, 시대 변천을 선도할 수 있는 수필전문가가 되어야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차제에 ‘수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문학수필’의 전형에 다가서보고자 한다.

1.수필(에세이)이란 무엇인가
  가).수필이란 어원은 겸손의 태도에서 나온 말이다
    수필(隨筆)이란 말은 ‘따를 수(隨)’와 ‘붓 필(筆)’자의 합성어다. 사전에는 ‘생각나는 대로 형식 없이 써나가는 산문의 하나’라고 해놓았다. 그 옹색하고 부실한 풀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견해를 안겼다. 수필의 참뜻은 그냥 ‘붓 가는대로’가 아니다. 그 어원은 남송 때 홍매란 사람의 <용제수필>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게으른 습관이 있는지라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기록하였기로, 이름을 붙여 수필이라 한다.” 환언하면 손님을 위해 진수성찬을 그득히 차려놓고도 변변찮은 ‘소찬’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겸손의 말이다. 또한 붓이 사람인 듯 형상화한 고도의 시적 표현이기도하다.
  ‘붓 가는 대로’를 재언한 김광섭과 피천득의 글을 다시 읽어보자.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이 무심히 생활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음으로서 제작되는 형식이다.”(김광섭).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피천득).  수필은 아무나 쉽게 쓰는 글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오히려 인생경지가 성숙한 사람의 글이며, 문장능력이 전제되어있는 사람이 무형식이 아닌, 다 형식중의 하나를 스스로 창안하며 쓴다는 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필(隨筆)이란 말은 ‘70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도를 넘지 않는다.’라는 논어의 종심(從心)과 거의 같은 어법의 표현이다.
  나).에세이(Essay)란 어원도 수필과 다르지 않다
   에세이와 수필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상이해 보이는 면도 없지 않다. 우리의 수필이 문학내적인 경수필 성향의 신변잡사 미셀러니(Miscellany)에 치우쳐있다면, 서양의 에세이는 문학외적인 학생들의 과제물 리포트까지 포함되어있는 광범위한 개념이며, 객관적인 요소가 깔린 중수필 성향의 소논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에세이도 몽테뉴적(수상록 참조)이 있는가하면, 베이컨적(찰스 램 포함)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몽테뉴와 찰스 램의 글을 다시 읽어보자.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성실한 마음으로 씌어진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내 집안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말해보려는 것밖에 다른 어떤 목적도 있지 않음을 말해 둔다. ... 모두들 여기 내 생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별것 아닌 나를 보아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몽테뉴.)  “여기에 실린 글들은 필자가 뜻하는바 그대로 받아드리시되 모든 것을 괴팍하게 아주 문자 그대로 의미로 이해하지 마시고 식후의 담화를 들으시듯 선의의 해석을 내려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무분별과 거기에 따르는 불완전을 너그러이 봐주십시오.”(찰스 램).
   홍매의 용제수필 서문과 몽테뉴와 찰스 램의 에세이 서문에 들어있는 겸손의 표현이 너무 같지 않는가. 다르게 보인다면 서양인의 성정이 행동적 분석적 객관적이고 이지적인데 반해, 동양인의 성정은 명상적 통합적 주관적이고 감성적이기 때문뿐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총체적인 수필 개념에는 에세이가 포함되어있음으로 달리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발간되는 20여종의 수필전문지 중엔 ‘수필시대’ ‘한국수필’ ‘계간수필’이 있는가하면 ‘에세이문학’ ‘월간에세이’ ‘에세이21’이 있다. 또한 ‘에세이문학’의 전신은 ‘수필공원’이었다. 사이버세계의 ‘e-수필’도 있다. 수필과 에세이를 동일시함을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하겠다.
  다).수필이 받고 있는 오해
   어느 문학모임에서 “수필은 정해진 형식도, 참고할만한 텍스트북도 없다.”라는 주관자의 말을 들은바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수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소치일 듯싶었다. 수필은 두 가지 면에서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붓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쓴 글’ 정도로 인식하는 경시 풍조와 ‘사실을 그대로 써내놓기 때문에 문학 창작품이 못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큰 오해이다. 편지 한 장에도 서두와 중간과 결미가 있는데 어느 장르인들 형식이 없겠는가. 수필도 시나 소설이나 희곡과 마찬가지다. 다형식이 수필의 형식이다. 그리고 수필은 그냥 사실만을 쓰지 않는다. 제대로 된 한 편의 수필에는 허구 도입은 삼가지만 경험적 바탕의 상상력과 연상 작용 그리고 형상화 등 창작의 요건들을 전부 활용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흔히들 수필을 일컬어 자조문학(自照文學)이라고 한다. 대체로 그러하지만, 3인칭수필과 철학수필도 있다. 작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회수필도 있다. 또한 수필은 한 가지 형식에 얽매여있지 않고 어느 장르라도 넘나들며 이런저런 형식을 다 포용하는 다 형식을 견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시 형식, 소설 형식, 희곡 형식, 논문 형식, 서간문 형식, 일기 형식, 기행문 형식, 감상문 형식, 전기 형식, 동 수필, 퓨전 수필, 일러스트 형식, 등이다. 그러나 궤도차처럼 일관된 수필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창작되어야 수필이 되는 것이다.
    
2.수필 창작에 앞서 있어야 하는 과정
  가).체험(體驗)과 정관(靜觀)
   사물과 인정기미에서 얻어진 많은 체험들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차근히 글로 풀어내는 습성을 몸에 익혀두면 수필 창작의 소양이 충분히 축적될 것이다. 그래서 글감이 정해지면 예사롭던 것에도 무한한 암시를 식별해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그 글감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명상에서 얻어진 연상들을 메모 등으로 붙들어 모아야 한다. 수필은 따뜻한 마음, 여린 심성에서 싹이 잘 튼다. 수필은 마음 들어내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강퍅한 성정이나 자만심에 차있거나 매사에 비판적인 사람은 수필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나).소재(素材)와 주제(主題)의 선택
   수필 창작의 첫 시도는 소재 선택이다. 삶의 구석구석에 있는 수필의 소재를 끌어당겨 쓰고 싶은 것을 골라 쓰면 된다. 그러나 그 소재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는가, 자기에게도 절실한 것인가를 반문해봐야 한다. 또한 품격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진솔함이 엿보이지 않는 시시콜콜한 내용을 가지고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폭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소재와 주제인가를 먼저 생각하라. 평범한 소재는 독특한 주제로, 독특한 소재는 평범한 주제로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수필에서는 요구된다.
  다).글감의 육화(肉化)
   글감의 본질을 파악하고 진실을 추구해본 바탕위에서 먼저 누에가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만들어내듯 그것을 내 것으로 육화하고 재구성해서 써야 한다. 이 때 유의할 점은 설익은 생각으로는 주제정신이 살아나지 않아 그 수준의 글로 한정되어짐으로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 생각은 상식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글감을 새로운 시각으로 대하려면 다른 차원에서 사물을 투시하고 남이 알아차리지 못한 인과나 요점을 찾아내어 혼을 부어넣는 것부터 시작해보라. 때로는 대상에 대해 의인화기법이나 <낯설게 하기>등을 원용하여 반대편에서 재검증해보는 것도 기발한 발상이 될 것이다.

3.문학수필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
   수필은 그냥 수필이기 보다는 문학수필이어야 한다. 또한 수필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창작되어야 한다. 대상과의 알맞은 거리와 소요되는 한도의 배경과 소품들을 가려서 정성들여 짜고 다듬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스타일로만 글을 쓰기보다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글을 써보는 실험적 시도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필력이 향상될 것이다. 사람도 인격의 성숙도에 따라서 ‘그렇고 그런 사람’과 ‘괜찮은 사람’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구분하지 않던가. 수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수필은 아니다. 깊은 사색 없이 쓴 글은 ‘신변잡기’수준의 수필이다.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의미부여가 조금 들어가 있는 글은 그런대로 ‘수필’ 또는 ‘생활 수필’이 된다. 더 나아가서 해석된 의미들이 <형상화>과정을 통해 문장이 문장을 자유롭게 움직여주는 단계를 거쳤을 때 비로소 수필의 묘미가 맛을 내고, 읽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한 편의 ‘문학수필’이 될 것이다.  
   수필창작은 먼저 소재를 어찌 보느냐 에서 시작한다. 그것에 따라서 중심사상인 주제를 확정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주제 정신에 적합한 제목달기를 한다. 제목은 상징적이고, 참신한 것이어야 하며,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면서도 내용과 격이 맞아야 한다. 주제를 이끌어갈 문장의 진행은 연역형식과 귀납형식 중에서 효과적인 쪽을 택해, 기승전결(起承轉結) 형태나 서본결(序本結) 형태로 문장구성의 밑그림을 미리 그려놓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와 속도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두와 결미를 뽑아낼 때 어려움을 덜 겪는다. 서두와 결미는 수필문장의 성패가 좌우되는 분수령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두는 예고와 전개기능을 예비하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꽉 붙잡고 속도감을 느끼게 하면서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을 참신하면서도 간결한 것을 찾아내는데 고심해야 한다. 마음이나 감정을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총의적인 것이면 무난할 것이다. 서두가 진부하거나 산만해보이면 독자는 그 글을 읽고 싶은 의욕을 잃고 만다. 서두가 잘 뽑아졌으면 그 글은 반은 성공한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글의 중심 줄거리를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중간의 지배적 인상은 세밀히 묘사하여 부각시키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모두 그 중심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정도로 언급하여야 한다. 결미는 마치 종소리가 잦아졌다가 한 번 더 크게 울린 후 여운 속에 잠기듯, 글의 흐름에서 멈칫 한 호흡 쉬었다가 번쩍 새 정신이 들게 하는 암시 같은 문장을 툭 던져놓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재 요약하면 수필은 기교보다는 먼저 가슴으로 글을 써야 하고, 문장의 주안점은 ‘간결’, ‘평이’, ‘정밀’, ‘솔직’이다. 그리고 그 글에는 ‘재미’와 ‘감동’과 ‘뒷맛’이 담겨져 있어야 맛깔스런 문학수필로 정평을 받게 될 것이다.

        < 2007년 1월 14일. 미주한국문협 ‘수필 토방’ 특강 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