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훈 서재 DB

독자 창작터

| 윤석훈의 창작실 | 내가읽은좋은책 | 독자창작터 | 목로주점 | 몽당연필 | 갤러리 | 공지사항 | 문학자료실 | 웹자료실 | 일반자료실 |

수필, 다시 보기 2 --- 박봉진 수필가

2007.02.24 13:32

윤석훈 조회 수:790 추천:70

  

작 성  자  :
  박봉진 [] [회원정보보기] (2007-02-13 09:10:26, Hits : 25, Vote : 0)  

홈페이지  :
  http://myhome.mijumunhak.com/youngwave
제      목  :
  수필, 다시 보기 수필(2)

             수필, 다시 보기 수필(2)
                                       박봉진
  수필 창작에 있어서 ‘낯설게 하기’와 ‘형상화’ 문제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도자기의 완성과정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도공이 진흙으로 여러 형태의 도자기를 빚었다면 애벌구이단계를 거친 후, 다시 두벌구이단계까지 마쳐야 제품이 완성된다. 수필 창작도 마찬가지다. 소재와 주제로 수필구조를 얽었으면 해석단계와 해석의 구체적 표현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된다. ‘낯설게 하기’는 애벌구이, 해석단계까지에서 있는 일이고, ‘형상화’는 두벌구이, 구체적 표현단계를 거친다는 것에 비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 낯설게 하기
  주제는 소재를 어찌 보았느냐 에서부터 해석되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란 낯익은 평범한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의 탈피가 먼저다. 일상의 반복성 속에서 힘을 읽고 무감각한 이미지 상태를 신선한 충격적 언어로 작품의 참신성을 더 높여 독자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즉 사람들의 보통관점이나 일상 언어를 낯설게 바꾸어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고로 ‘낯설게 하기’란 창작과정의 선택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낯설게 하기’는 1930년대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것은 ‘문학 관습의 보편적 법칙을 깨트리라’는 사조로서 최근 포스트모던이즘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또 ‘낯설게 하기’는 여러 측면에서 시도되고 있다. 예컨대, *소재의 선택차원, (아주 특이한 글감을 찾거나 숨어있는 의미를 찾는다.) *기법의 차원, (규격화된 대상을 일탈시키는 전략이다.) *구조적 차원, (문학적 이야기와 행동의 재구성이나 재배열을 통한 조직화를 꾀한다.) *언어 표현적 차원, (일상적인 언어를 신선감이 있고 탄력 있는 말로 표현을 바꾼다.) *해석 의미화적 차원, (보편적 주제 해석을 포스트모던 식으로 바꾼다.)
   예문 하나를 들어보자. “지금도 그 남자는 해운대에 가면 바닷물이 싱겁다고 우긴다. 맛 봐, 맛을 보라고. 손가락에 장을 찍듯 검지 하나를 세워들고 싱거운 장난을 건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허풍이든 사기든, 먹혀드는 상대가 있어야 신이 난다. 싸움도 상대가 만만찮게 버텨줄 때 흥미로운 것이다. 고장 난 배를 타고 정박한 선장처럼, 전의를 잃은 장수처럼 기진맥진한 그 남자를 위해 나는 기꺼이 다음 항해를 자청했다.”(강숙련. <내가 만난 남자> 서두, 결미 단락) 작가는 익숙한 남편을 서두에서 결미에 이르기까지 끝내 그 남자로 일관했다. 또 매번 모시적삼을 입고 나타나는 사람으로, 낯설기 기법이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작가의 작품창작의 길은 어쩌면 ‘낯설게 하기’의 현장이 될 수 있다. 또한 실험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석은 우선 참신하고 개성적이어야 한다. 예술적 감동은 바로 그 참신한 발상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독자들을 낯선 감동의 세계로 이끄는 도전자가 되어보아야 할 것이다.

(2). 형상화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첫째 참신한 소재, 둘째 참신한 해석, 셋째 참신한 표현, 즉 형상화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해석이 구체적 사물이나 사건의 의미 읽기라면 형상화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구체적 사물을 감각적으로 강화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문학 수필로 성공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이 형상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해석만 있고 형상화가 없으면 관념적인 작품이 되고 말지만, 해석과 형상화가 함께 어우러지면 감동이 배가된다. 성공한 작품은 모두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 따라서 해석과 형상화는 문학수필이 갖추어야하는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하겠다.
  서정수필에서 이 형상화란 주로 비유라는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게 된다.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유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로 환치한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구체적 사물을 감각적으로 강화하기도 한다. 다음 수필을 예로 살펴보자.

  (1) 오월은 금방 찬물에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2)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 피천득

  오월이라는 개념을 (1)찬물에 세수한 스물한 살 여인의 얼굴과 (2)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에 비유함으로서 오월의 청신한 계절감을 감각적으로 구체화시키는데 성공했다.
  해석과 형상화의 과정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수필은 아마도 이양하의 <나무>가 아닌가 한다.

   A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
      지 않는다.
   B 나무는 고독을 안다. 나무는 고독을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C 나무는 원망하지 않는다. 베어 간 재목이 혹 자기를 해칠 도끼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
      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a 나무는 안분지족의 현인이다.
   b 나무는 고독의 철인이다.
   c 나무는 견인주의자다.

   A,B,C는 나무라는 소재에 대한 해석이고 a,b,c는 그 해석된 내용을 비유를 통하여 형상
   화시킨 것이다.

  수필은 허구의 스토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사적 성격이 강한 자전적 수필에서는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주제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같이 형상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의 성취도는 참신한 소재와 참신한 해석 그리고 그 해석을 어떻게 참신하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안성수. 명 수필 이론, 손광성. 수필의 예술성을 위한 방법론.


          < 2007년 2월 11일. 미주한국문협 '수필토방' 특강 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