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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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바르게 말하기

2019.09.16 12:52

조형숙 조회 수:23

 리틀 도쿄는 늘 인파로 붐빈다. 공휴일이나 일본 마츠리(축제)가 있는 날은 더 많은 사람이 다닌다. 요즈음은 방학이라 아이들 데리고 구경 나온 식구들로 넘쳐난다전에는 일본인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중국인들이 아주 많고, 베트남인과 히스패닉이 많다. 한국인도 적지 않게 다닌다. 일을 마치고, 사람이 많아 비좁아진 분수가를 지나려 하는데 "비켜줘 비켜줘"하며 아이에게 소리 지른다. 젊은 한국 엄마다. 내가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라는 말이다.  참 기가 막혔다. 안그래도 요즈음 한국사람의 말에 이상하게 쓰는 말이 많아 한 번 짚어보고 싶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리 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어려움을  실감한다. 아이들은 영어가 편하고 한국말 배우기에 관심이 없다. 가끔 한국 프로그램을 봐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전화가 오셨다 한다. 무생물에게 쓴 존댓말이다. 보편적으로 쓰는 경우다. "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해야 한다. 어느 빵집에 작고 예쁜 과자가 있어 "이건 얼마에요?" 했더니 젊은 여자 종업원이 "1불이십니다" 라고 한다 . 누군가 바로 쓰는 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연주를 관람하러 코닥 극장에 갔을 때였다.  주차 티켓에 도장 찍어주느냐고 물으니 "극장에서는 도장 안 찍으십니다." 한다. 극장을 존대하는 말이다.
교사 생활 할 때 각 반에 일주일에 한 시간씩 도덕을 가르쳤다.그 때만 해도 부모들은 교사가 귀한 줄 알았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 가르침대로 잘 받아들이고 고칠 줄 알았다. 요즈음은 자식이 우상이다.  혹여 아이를 거스리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성애(?) 아이들에게 윗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떻게 존경하고, 어른에 대한 예의는 어떤 것인지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아범은 어디 갔니?"  시이모님이 물으셨다. 새댁 때였다. 모든 것이 어렵고 특히 시댁 어른 앞에서는 간이 졸았다. " 부산에 출장 가셨어요"  한 번 더 물으셨다. "출장 가셨어요"  이모님은 깔깔 웃으셨다.  당황하는 나에게 "어른 앞에서 남편을 올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출장 갔어요 해야 해." 가르쳐 주시면 되는데 큰 웃음이 너무 속상했다. " 너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니?"라고 하지는 않으셨지만 창피했다. 그러나 그 일은 평생 내게 교훈이 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님 앞에서는 아이를 너무 귀여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부모 앞에서 부부가 상대를 이야기 할 때 어멈이나 아범이라 해야 한다. 어른 앞에서 써야 하는 말임에도 잘못 쓰이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속이 상할 때, 특히 남편과 다투었거나 좋은 기분이 아닐 때 "어이구 지 애비를 쏙 빼 닮아 가지고" 하면서 아이를 혼낸다. 부모가 듣고 있으면 어이없을 말이다. 이야기 프로에 나온 젊은 여자가 남편 이야기를 하는데 듣기가 민망하다. "오빠가 원하시는 것은 다 해드려야 해요. 안 해드리면 오빠가 삐지세요. 일주일 동안 말씀도 안하세요. 집에 오시면 아이들과 놀아주시지 않으시고 수영 가시고 오셔서 주무셔요"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온다. 한국에 있었다면 방송국에 전화라도 하고 싶었다.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만으로도 편하지 않은데 말이다.

   나이 차가 좀 나는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오늘 함께 갈까요?" 했을 때 " 그렇게 합시다"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렇게 합시다." 라고 하는 것은 어린 사람에게 쓰는 존댓말이다. 한국의 존대 표현은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넘겨 주는 것이다. 어린 사람이 요청했을 때 윗사람이 "그렇게 합시다."하는 것이 옳다. 인터뷰 하는 프로에서 "자제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물으면 "내 슬하에는 아이가 없어요." 라고 한다. 슬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시로 쓰는 말이다. 어느 섬 마을 이장님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의 성함은 김자, 인자, 식자입니다" 라고 해서 또 놀랐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이 할 이야기가 많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수준 높은 곳 까지는 못 하더라도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는 바른 말이나 언어 사용법, 또는 철자법을 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미국에 사는 이민 2세대, 3세대로 내려 가면서 영어만 쓰려고 하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나 혼 애쓴다고 될까 하지 말고 작은 것 하나 부터 시작 해 보자. 개인적으로  지난 몇년 동안 한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무척 보람되게 느끼고 있다. 잘 따라와주는 아이와 아이의 엄마에게 늘 고맙다. 요즈음은 한국에서 방영하는 '우리말 겨루기' 프로를 열심히 보면서 우리말 바르게 쓰기를 노력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