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님의 풍경전
2004.09.19 15:17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습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한 모금 햇빛으로
저토록 눈부신 꽃을 피우는데요
제게로 오는 봄 또한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문득 고백하고 싶었어
봄이 온다면
날마다 그녀가 차리는 아침 식탁
내 영혼
푸른 채소 한 잎으로 놓이겠다고

가벼운 손짓 한번에도
점화되는 영혼의 불꽃
그대는 알고 있을까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언젠가는 가벼운 먼지 한 점으로
부유하는 그 날까지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을 꿈꾸지 않으랴

아직도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
이게 바로 기적이라는 건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사태질 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사람 하나

가을이 오면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자락으로 걸어 두겠네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 하여
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으랴
내 한 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

나는 왜 아직도 세속을 떠나지 못했을까
인생은 비어 있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줄도 모르면서
글.그림 :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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