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103
2011.04.03 09:21
#84밥통 에미의 편지1 /강 학희 에미를 밥통이라 부르는 밥통 같은 것아! 네는 밥통이 왜 밥통인 줄 아나? 밥통은 밥통 같은 바램과 기두림이 있기 때문이여 제 살 모두 긁어 맥이고 픈 기 바로 밥통인 겨 세상 어미들은 생살만 보면 보듬고 자파 절절 끓지 속이 제 속이 아닌 겨 근 게, 노상 속을 끓이는 게 바로 한 세상 사는 일인 겨 그려, 세상은 높은데 사 램들이 맹 그는 게 아니 여 어리숙한 밥통 일꾼들 단칸 뱃심이 세상 힘인 겨 암, 일 할 놈 없어 봐라 세상 말 장 허탕인 겨, 네는 늘 에미 게 밥통이라 카 지야? 밥통 없이 니 잡고 있는 밥줄은 어디서 나오겠냐? 야, 야, 밥줄이 바로 밥통을 끓게 만드는 심인 겨 훗날, 누가 네로 밥통이라 불러주면 고봉 밥을 올리는 뜨거운 눈물로 받아라 이, 그 거이 바로 네가 세상 밥이라는 말인 겨 근 게, 진짜 밥통이 된 겨, 네도 밥통 어미 딸인 게 밥통이어야 제 쓰잘데없기 말만 밥통이라 캐 쓰겠냐? #84B못난 오매 펜지-2 /강 학희 네 어제 떠난 뒤 내 얼 매나 잘 잤는지 모 린다 네 오기 전 내 맴은 이리저리 치여가 맴이 분탕질한 웅덩이 맹키 뿌연 기 참말로 앞이 안보였는 디, 이젠 말가 타 하늘이 다 내 비낀다 흠 메, 날아 갈 것 맹키 가붓하고, 그늘졌던 웅덩이에 햇살 까 정 들어 따슨 게 넘 개운 타 물이 있다고 모아드는 하루살이 떼를 봐라 카 던 네 말 오래 씹다 가만, 딜 다 보니 살강이 떨라 두마, 무건 솜덩이가 오매, 날개 단 것 맹키 가 벼졌다 새끼 란 거이 그런 건진 먼점 알았지만 도 한 펜으론 맴이 아팠든 기라, 어 메도 어떤 땐 섭하기도 하는 기라 알제? 내 맴? 네 캉 말을 서까 보니 이젠 다 뵌다 아주 말 그게 뵌다 야-야, 참말 고맙 따 네는 내 웅 뎅이 비추기는 한 줄 햇살인 갑 다, 못난 어 메라 증 말 미안 코 마, 따슨 밥 잘 묵고 댕겨라 #85 밥통, 어려운 생은 어렵지 않다/강 학희 쯧쯧- 밥은 먹고 왔냐? 아가, 밥은 굶지 말고 댕겨 야지 꿈에도 그리운 할머니, 할미, 할미! 허 적 허 적 덥석, 눈앞에 나타난 붉은 눈동자들 연 이틀 잠적했던 불효를 응급실에서 만난다 (나는 할미 철칙 어기고 어디로 가려 했던가) 쯧쯧- 밥은 어쩌고? 이 밥통을 어쩌 누? 목구멍을 타고 넘는 한마디, 나를 돌려 세우는 할미의 애처로운 말 한술, 생은 때로 작은 땜 빵 하나로 살아나기도 한다 한 마디 말이 끌고 가는 어려운 생은 어렵지 않다 #86 네 탓이요, 네 탓 이요 네 탓이 로다/강 학희 간간 정신을 놓는 순심 할머니 “우리 영감 만나려면 몇 번 버스 타고 가야 혀? 어디서 내리는 감?” 먼저 떠난 할아버지 생각에 애탄다 지금 몇 번 타고 어디로 가는지, 어느 정거장에서 그대가 기다리는지, 감히 누가 알 가? 이 길도, 어디로 가긴 가는 데, 바이러스란 녀석이 만남도 시간도 다 묶어 놓고 사람들은 네 탓, 네 탓이요 너의 탓이라고 색깔별로 미움을 쌓는다 분한 발걸음이 따라붙어 팬다 백인이 흑인을, 흑인이 동양인을, 노숙자가 행인을, 행인이 노숙자를,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귀중한지 산더미 주검으로 새기고도 몸 거리두기는 마음 거리두기가 되어간다 분명, 종점에 닿을 시간은 달려오는데, 미리 걱정 말고 느닷없이 불려간 사람들 몫까지도 즐거워야 할 지금, 놓칠 수 없는 오늘 나들이를, 다시없는 날처럼 놀고가야 하는데, 네 탓이요 네 탓이요 네 탓이 로다 주먹 대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탓이 로다 내 가슴을 치자, #87A혼자 자는 먼 잠/강 학희 -엄마의 장지에서 흑흑, 등줄기 타고 솟는 울음이 당신을 부릅니다 엄마가 제일 싫은 게 딸이 우는 거라는 걸 알아도 오늘은, 불효가 막무가내입니다, 몸에 새긴 불기둥에 훅 불꽃이 불붙어 더 거센 울음을 부릅니다 울음은, 맨 처음 당신이 나를 키워 낸 환희의 첫 음률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배우지 말라던 절망의 음률로 엄마를 탓합니다, 흑흑 물가지에 찔린 초승달, 나를 우는 막 날의 당신 오늘은, 울음 범벅입니다 초승과 보름은 각각 따로 뜨지만 또 한 몸, 버릴 수도 무를 수도 없는 한 뿌리줄기가지, 나는 빈 허공에 몸을 맞댄 붉은 무덤 진솔상에 눈물 주를 뿌립니다 흙을 꿰매어 흙 이불을 폅니다 당신의 냉한 몸 뉘일, 흑흑 깨울 수 없는 혼자 자는 먼 잠 위로 오늘은, 먼 잠 깊이 들도록 흑흑 길을 데웁니다 흑흑 혼자가는 먼 길* 목 마르지 않도록 오늘은, 흑흑 우는 것 말고는 할 일 없는 당신 딸 울 도리 밖에는 없습니다 *허수경 혼자가는 먼 길 #87B꽃 길과 흙 길 사이/강 학희 -단짝 찬구 장례식에서 오늘은 단 한 사람, 너를 위해 꽃들이 활짝 웃고 홀 안은 향기롭다 잔잔한 음악 흐르는 여기가 콘서트장이라면 얼마나 좋을 가 지금은 너의 꽃 이불 펼 시간 이제 곧 너의 잠 사이로 흙 이불마저 덮이겠지만, 꽃을 좋아해서 꽃다발보다 화분을 선호하던 너는 툭.툭. 팔 다리 꺾인 꽃 무덤 속에서 미간을 찌푸릴 것만 같아 그윽한 꽃 향기조차 미안하구나 누구든, 꽃 길 걸어왔음도 마무리는 흙 길로 가야하는 일, 홀 안을 채운 우리는 단지 몇 장의 노래 가락으로 너를 덮어주며 우리 자신을 위로하네 함께 놀아주는 마지막 다시레기* 말고는 할 일도 없는데, 주책 같은 물기는 너를 앞질러 길을 내는구나 너를 우는지 나를 우는지 꽃길에서 흙 길로 가는지, 흙길에서 꽃 길로 가는지 시야가 어눌해서 갈피 잡지 못하고 마지막 시 낭송 한 자락 우짖으며, *초상집에서 출상 전 상주와 유족의 슬픔을 덜기 위한 연회 #88 한 끼 시간이 눈물겹게 맛나다/강 학희 한때 시간에 쫓겨 후다닥 밥을 지어 후루룩 먹고 시간을 건너갔다 이젠 시간을 들여 찬찬히 밥을 지어 공손히 먹고 시간을 건너간다 우연이 필연으로 물 한 모금, 쌀 한 톨, 감자 한 쪽, 계란 한 알이 내 게로 온 사연 오물오물 속닥속닥 십만 마일 내 안의 길 걸어 나를 먹여 살리는 한끼 밥상, 오늘 내 앞에 차려진 한 끼의 시간이 얼마나 눈물겨운 가, #89당신 지금, 통화 중이신 가요? /강 학희 음성 메세지에도 텍스트에도 답신 없는 당신은 어디 계신 가요? 지금도 통화 중이신 가요? 천지 빼 까리 전화 든 사람인데 왜 소통 부재라 하나요? 스마트 폰 따라 날로 스마트해지는 세상에서 아침 저녁 톡톡talk만 하는 세상에서 왜 대화 안된다 하나요? 문맹인지 컴맹인지, 알아도 몰라도 왕따하고 묻지 마 몰매하고 심심해 그냥 난사하고, 아직도 지구촌 난장판 메시지는 받지 못하셨나요? 음성 메시지에도 텍스트에도 답신 없는 당신, 증 말! 통화 중이신 가요, 아님 아예 두절인가요? 하늘에 계신 우리 모두의 아버지, 톡톡 해줘요 뚝뚝 눈물 메시지 보냅니다 '급, 답신 요망합니다.' #90나무와 이야기하다/강 학희 재개발덕에 수퍼 마켓 뒤 켠으로 나 앉은 그대, 오늘 햇빛 한 사발 맛은 어떠셨어요? 그대, 오늘 바람 한 자박 맛은 어떠셨어요? 엥, 살맛이 아니라 구요? 어제는 걷어차이고 오늘은 따귀 맞고, 한 밤중에 느닷없는 칼침 맞고, 죄없이 서있어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 욕지기 한 사발에 오줌 빨 한 자박, 살맛이 영 살맛 아니라 구요, 한 자리에서 남의 먹이만 되는 건 밥통이라는 세상에서 어제도 오늘도 세상 새끼들 먹이는 바보는 맞아야 되는 이상한 세상이 도래했어요 밟지 못하면 밟히는, 환하기만 한 세상 어디 쉴 맛나겠냐 구요? 차라리 햇살 받이로 고사하고 싶어도 이젠, 해님조차 기운 없는지 햇발도 시원치 않고, 엄마 말씀이 그래도 우리가 지구를 구해야 한 다기에 기를 쓰고 있어요 때로 종이 주이 할아비가 등 짚어주고, 수퍼 아줌마가 동이 물 먹여주어 참고 또 참아내고 있어요. 흉터는 견뎌낸 훈장이고, 산다는 건 견디는 거라는 우리집 교훈 뿌리 깊이 새기면서요, #91 어느 별 목어 풍경 /강 학희 산행 중 만난 이름 모를 작은 암자 주임 선사는 아니 뵈고 이끼 낀 낡은 처마루엔 늙은 목어 한 마리만 아수라 뭇 바람 치성에 눈자위 입 자위 지느러미 꼬리 다 지우고 육덕 없는 가뿐한 염불자락 물고 하늘 바다를 유영한다 첩첩 산천 씻어내는 명경 길 만들어 산 아래 마을로 보내는 목어선사 고수레에 쇠잔한 툇마루에서 놀던 청설모 까지도 귀를 세우고 합장하네 몇 천년 전 못다한 삼천 배 답하 듯, 돌아 돌아 오늘 보시 채우는 걸음걸음 내 탓이요 내 탓, 어느 별 이름 모를 작은 암자에서 목어 환생 축수 기원하 업 나니, 이생 전생 업보 물리소서 나 그대의 그대로 환생 기원하 업 나니, #92상처의 능력/강 학희 현관문 페인트가 벗어져 얼룩덜룩 기미 낀 얼굴이다 묵은 칠 벗겨내려 해도 울뚝 볼록한 흠집에 물린 페인트가 찰떡 궁합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흠- 볼 상스러운 이 자리 그대로 덧칠하면 표가 나겠지? 날 선 말과 눈치밥이 엉겨 붙은 울뚝 밸, 유난히 참을성 없던 외아들의 상처자리 닮았다 퉁 그러진 심사 살살 쓰다듬듯 샌드페이퍼로 밀어준다 미안, 미안해 달래니 딱지 속살은 상상 외로 순하다 그래, 너도 비바람치는 날을 이렇게 움켜쥐고 넘겼구나 때로 내게 뻣뻣하게 튕기던 그 성질 또한 상처의 보상 껍질일 터, 살짝 마음 여미고 오늘 저녁엔 아들에게 안부나 슬쩍 물을까? 혹, 이젠 제 자식 기르며 상처의 능력 알란 가 몰라, #93 나는 이사 중 수신 요망합니다/강 학희 한 때, 000000, 제로 선상에서 그래프는 상곡선을 그리기 위해 컴퍼스를 위로 위로만 돌렸지요 그렇게, 40년 그린 그래프를 일시 중단, -------------, 재정비 시간입니다. 에둘러가는 제 2막 장르로 초점을 맞추는 중입니다 문득, 빠르게 오르막 내리막이던 심전도 그래프가 삐이-이 멈추고, 플랫 ---------------, 한 줄이라면 섬뜩하겠지요? 허나 제2의 그래프를 그리려면 역시나 사선은 넘어야해요 이제 꼭 가고 싶은 길가려 짐 싸고 있습니다 아래 강가로 폴짝 내려섭니다 아마, 본집으로 가기 전 마지막 찬스일지 모르는 손 안의 선택이란 우물쭈물하지 말고 선 듯 나서야 할 일입니다 40년 전 달랑 이민가방 하나로 신천지를 찾았 듯, 우- 아주 신이 납니다 그 때처럼 설레고 열정이 꿈틀대는 지금 나는 잠시 재충전을 준비 중, 한근 두 근 두 근, 애지중지 쓸고 닦던 것 다 놓아주고 다시 원점000000, 제로 선상에서 살랑살랑 무한곡선 그리려 합니다 새로움은 또 다른 도전, 아니 삶은 처음부터 울면서 받아 든 도전장 아닌가요, 두렵지 않냐 고요? 글쎄, 두렵지는 않아요 내가 믿는 그가, 힘은 힘겨울 때에 생긴다 했으니, 분명 이번에도 나의 타전은 그의 공중파에 잘 수신될 거예요 지금 나는, “이사하는 중! 수신 요망! 오버!” # 94희망 사항1 미리 살아보는 늙을 때/강 학희 내가 늙으면, 제일 먼저 옥조이던 투피스, 하이힐은 던져 버릴 거야 새벽 알람 꺼버리고 아침 샤워 건너 뛰고 영화처럼 아침 상은 침대가 받고 카톡 폰에 깔깔 수다 떨며 수란을 떠 먹을 거야 내가 늙으면, 느지막이 공원에서 풀꽃 반지 끼고 폴카 스텝으로 오리 궁뎅이 따라가다 바위그늘 속 제비꽃과 놀아날 거야 동네 맥 카페 시니어 커피와 애플 파이하고 시시댈 거야 내가 늙으면, 느른히 대낮 샤워하고 망고와 키위 놓고 책을 읽다 시어가 돌아오면 내일 걱정 없이 마음대로 시를 쓸 거야 때론 내게 익숙하지 않은 나를 보여주는 연습도 할 거야 내가 늙으면, 쉬엄쉬엄 놀 멍 쉬 멍 걱정없이 멍 때리는 내가 되려면, 통장 열어보고 허전 할가 봐 아직 젊을 때 꽉 끼는 스타킹 끼우느라 낑낑대 듯 빽빽키 스케쥴도 끼워 넣을 거야 아직 젊을 때 내가 늙으면……, 자꾸 쫑알대다 보면 내가 늙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슬프지 않을 거야 하고 있는 일들이 즐거운 꿈자리가 될 거야, *드류 레더 희망사항2 수목 장/강 학희 참외 만한 레몬을 가져오신 염시인님, 먹고 남은 것 삭혀 쓰면 이리 실하다고, 삭은 뼈는 열매를 실하게 맺는다고, 강시인도 거름통 하나 만들어 낭비 심 알뜰히 삭혀 희망 사항 하나 이루어 보시라고, 거름통 들여 다 보면, 날 것 골은 것 주체 허물지 않은 빳빳한 것들 혼돈이다, 역겨운 시간지나 어둠이 머물면 눌린 것 터진 것 분별없이 들뜬 열기의 혼동, 혼란스럽다 역겹던 내음 격하던 모습 서로 얼 키고 설켜 너와 나 경계없이 하나가 된다. 꽃나무에 거름 주며 정성껏 키우다 보면, 한세상 살아가는 이치 만나진다 나 아직 온전히 허물어 달콤한 열매 맺지는 못하였으나 시나브로 남은 나 허물어 나도 한줌, 훈훈한 거름 될 수 있기를 수목에 뼈 가루 묻어 그날 도록 한줌 거름 되길, # 95 희망사항3, 무아지경/강 학희 이즈음 내 반쪽이 하는 걸 보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한번은 눈 질끈 감기로 한다 두 번에 한번은 침묵하기로 한다 하찮은 말이라도 말은 씨가 되어 자라지 않던가 말 내보내기 전 말씨 달래며 나를 달랜다 이즈음 내 반쪽이 하는 걸 보면 꽥 소리 나가려 하지만 끙- 숨쉬고 하늘에다 퉁-, 한번은 말을 되씹고 한번은 말을 삼킨다 삼킨 말씨 숲을 이룰 때까지 말없이 걸어도 다 통하는 나.무. 숲이 될 때까지 나도 없고 너도 없는 무아지경까지, # 96 희망사항4, 시간의 발목을 잡고/강 학희 상세히 보고 상세히 들으면 속이 내 속 아니고 눈감고 귀 닫고 혼자 엇비슷이 띄엄띄엄 보다 듬성듬성 듣다 쉬엄쉬엄 살다 보니 울상이던 내가 멀쩡히 웃는 상이다 중간중간 웃고 설렁설렁 울고 중언부언 시시대니 세상 수월 해진다 신수 환 해진다 급살맞은 시간 잠깐 돌아서서, 시간의 발목 잡고 까탈 간살 털고 가벼이 가보자, 저문 날 중고 나를 내버리고, 따슨 얘기 조랑조랑하며 새 시내 건너 가보자고, #97빨래방에서/강 학희 등등을 위하여! 부산히 떠돌던 일상 물속에 던진다 한번 물의 입에 물리면 아귀아귀 되새김질은 지난 행선, 속내까지 다 뽑아낸다 물세례, 물 찜질 난타와 조리돌림과 비틀림으로 대충 상황은 끝이다, 다 게워내고 헹궈진 후이다 물통과 물속 기억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물빨래라면 신물이 나도 원컨대, 째깍째깍 재봉 된 내일이란 새 옷 한 벌 온전히 걸칠 수 있다면, 어제의 수난 잊고 빳빳한 옷 깃 한 번 폼 나게 날릴 수 있는, 빨래야 물빨래야, 번개팅이라도 한번 하자 젖은 이상은 바지랑대에 걸고 뭉개 구름이나 감상하던 한 시절, 그 줄에는 노시인도 S언니 K형도 얼크러진 채 펄럭였지 한 때 물빨래 많았지만 뭐든 쉽게 지우는 삭제가 대세인 요즘은 물통이 아니라 스타일 러에 넣고 땀냄새도 눈물도 순 삭*하는5G 신세대인데, 빨래방에서 혼자 라테마시다 나도 세월도 다 빨리고 허여멀겋게 바랜 오후 4시, 또 4야? 늘 꺼림직 한 그림자로 달려와 덮는 사자, *순간 삭제 #98사막을 적시는 폭우처럼/강 학희 육 년 가뭄 끝에 비가 오신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남가주 사막이 넘치고 꺼지고 막혀도 반가워, 너무 반가워서 메마른 산천처럼 비를 마신다 빗방울들 살랑 찰랑 물빛 비늘로 크리스마스 알전구처럼 세상 밝히고, 가물었던 가슴으로 물이 흐른다 가슴 한 켠 응어리로 남은 친구에게 젖은 손길 내밀어 화해의 악수 청하자고, 겨울 강 얼음장 밑 피라미처럼 비 속을 요리조리 달리니 사막이 끅끅 속이 뚫리는 소리로 웃는다 아름다운 사람2/강 학희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푸릅니다 푸름이 깊은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99 몽중 좋은 시*는 좆이다 /강 학희 다들 2,3,4 시집 잘도 내는데, 첫 시집 내고 쓸수록 부끄러워 내내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기만 고집했다 좋은 시詩 읽을수록 참 못난 내 시詩들이 안타깝고 송구해서 더러, 섞어 끼어 읽다 눈이 흐려졌나, 몽중夢中이었나 삶과 꿈의 앤솔러지, 좋은 시가 좆은 시? 참 한심 타 자다 깨다 꿈결까지 좋은 시 못 잊어 참 한심 타 쩟-쩟- 시가 뭐 길래 정말 좆같다 생각 뻗치는데 좆이라도 좆 타 시라면 흐흐, 몽중 좋은 시는 좆이다 우 하하하 참 좆같다 마는, *해마다 삶과 꿈에서 펴내는 "좋은 시"라는 책 #100함께 라는 말은2/강 학희 삶의 여정에서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목마름을 채우는 일입니다 즐거운 만남은 내 기쁨 슬픔 들고 가 네 아픔도 안고 오는 일입니다 그런 밤이면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되지요 만남을 기대하며 산다는 건 함께 라는 말, 너와 나, 양 날개라면 더 멀리도 높이도 날 수 있지요 저기, 집으로 돌아가는 철새들처럼 나는 당신 등 뒤를 날아 갑니다 돌아보면 한 끗 닿을 듯 늘 게 있는 나입니다, 우리 만남은 길고도 먼 삶의 여정 눈 앞의 길입니다 함께 가는 길은 추워도 춥지 않아요 함께 어부바를 나누는 길이니까, #101 다시 만나고 싶은 J에게/강 학희 잠 안 오는 밤, 잠 못 든 귀뚜라미가 운다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어색하게 멀어진 내가 울 듯, 네가 운 듯 밤 깊을 수록 더 구슬피 운다 너를 생각하면 나처럼 콩알 나눔도 깔깔대고 줄을 잇는 동백의 낙화를 서러워도 하고 거미 줄에 걸린 이슬도 지나치지 못하는 들꽃같이 간들 한 마음씨였는데, 내 안에 유배되었던 별아 별 예쁜 얘기들이 환하게 꽃등 켜고 일어선다 귀 뜰 울음이 그치기 전 안부 메시지하자고 어느 생에 다시 만날 때도 꽃처럼 곱 자고, 먼데서 온 병 중 소식 속마음에 걸렸는데 어쩜, 네 집 앞에 걸린 흰 등도 모른 채 지구별을 떠날 후회는 말자고, 살다 보면, 별 일 아닌 일로 돌아서는 우리, 별일은 악착 같이 도왔는데 별일 아닌 일로 돌아서다니, 별일 아닌 일 다 지우고 가벼이 가야 또 만날 기쁨이 오지 않을 라나, #102 좋은 것의 연유/강 학희 콧날 오뚝한 꽃신, 고무신, 버선코, 초승 발가락, 추녀마루, 용마루, 합각 등 등등, 끝이 까불려 솟은 자태에 눈이 오래 머문다 좋아한다 어린 날, 고개 젖혀 오래도록 지붕 끝을 보거나 할머니 고무신이나 버선코를 꼬부렸다 폈다, 저고리 소매에 손을 넣었다 뺏다 귀찮게 했지만 할머니는 어린 일곱살에 삼 년 동안 폐의 병으로 외가에서 지낸 엄마가 트라우마가 될 까 ‘’재밌냐, 고무신이나 버선 말고는 꼬집지 마라’’하셨다 나름, 조몰락거리는 걸 꼬집는다 하신 건, 결핍을 걱정하신 거였는지 모른다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도, 고궁에 가면 가장 오래 바라보는 것이 추녀마루이다 왜 둥근 곡선보다 뾰족한 날 각에 눈이 갔을 가 왜 고무신코나 버선코를 비틀고 싶었을 가 무슨 일에 연유를 직접 묻지 못하는 성정 때문일 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어미 콧대 같아서 일 가 지금도 오뚝 솟은 것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꼬집고 싶다 당대의 지성 인텔리겐치아 콧대인 것 같아, 무얼 집중 좋아한다는 건 그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는 것 어떤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부모보다 더 많이 살아보니, 짐짓 무얼 유난히 좋아하는 건 싫어하는 걸 은폐하는 상흔의 잔존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보지만 실은, 인생만사 좋고 싫음은 다 같은 관심사에서 오는 게 아닌가 #103 김치 나눕시다/강 학희 오랜만의 모국나들이, 내가 살던 세상인가? 곳곳이 뉴욕 마천루 동네 같다. 그런데, 거리에는 표정이 없다 마주쳐도 웃지 않는다 남편이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눈다 웃는 사람이 별로 없네요 왜 이렇게 무뚝뚝해요? 아이고, 웃긴, 뭐가 좋다고 웃습니까? 뭐가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 마주하면 서로 웃어주는 것이지요 살면서 꼭 좋아야 만 웃겠습니까? 알고 보면 낯선 사람도 아직 알지 못한 사람일 뿐이지요. 보아하니, 여기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여유가 부럽네요 여유이기보다 예의가 아닌가요? 낯선 사람이란 아직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옷 깃 한번 스치는데 500겁, 하룻밤 인연은 6000겁이라는데, 우린 얼마나 긴 세월 돌아 마주하는가? 우린 또 무엇으로 만나질까 만, 잠시 웃으며 지나가면 안될 까? 한류문화, 한류음식, 한류 예술이 세계를 날아다니는데, 왜 웃음은 퍼지지 않을까? 미국에서도 요즘 셔터 누를 때마다 치즈대신 김-치- 하는데, 우리도 만날 때마다 김치를 나눕시다 김치가 세상 천지 웃음으로 번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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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성탄 이메지 | 강학희 | 2005.07.16 |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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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최선의 사람 | 강학희 | 2005.03.28 | 38 |
20 | 당신은 한 송이 꽃 | 강학희 | 2005.02.27 | 529 |
19 | 늦은 인사 | 강학희 | 2007.10.20 |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