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3

2011.02.25 07:16

강학희 조회 수:78

#61 나홀로 그램*/강 학희

나홀로 그램*을 아시나요?
서로 기대였던 젖은 몸을 일으켜 홀로 서야 할 때
달랑 잡았던 까치 밥까지 끝내 손을 놓아야 할 때
살 떨리는 전율 여덟 살 내 서늘한 어둠이 내린다  

별들 가물거리는 소리, 문풍지 우륵 안달치는 소리
혹, 울 엄마 잰 걸음 소리일까 쫑긋 어둠을 익히면
어디선가 먼 길 달려오는 숨찬 땀방울 턱이 떨린다 

나홀로 그램은 짧거나 길거나  
홀로 사선을 넘나드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똑 같은 
나를 나로 돌아오게 하는 인증 낙서 그라피디*다 

탯줄 잘린 세상 모든 배꼽에는 홀로 라는 문신이, 
나를 태깅하는 홀로그램이 그려져 있다 쉬! 이 건 
모두가 다 아는 입속말, 세상 천지 벽마다 넘치는 
당신의 그라피디 읽히시나 요? 

*작가의 합성어 *graffit:i 긁어서 새기다'라는 이탈리아어, 현대적 
의미는 60년대 후반 미국 젊은 흑인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저항적 구호나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 태깅 tagging이라고도 한다.


#62 쑥 개떡/강 학희

영어는 물론, 언문조차 깨지못한 편할머니, 
청각 장애 아들 대신 떡 한 보시기 해오셨다 
헌듯펀듯 손등 같은 쑥 개떡이 오래 전에 만난 
자갈치 시장 함지박 아지매를 데려왔다

주저앉을 듯 서있던 장터 몽땅한 나무 한 그루, 
풍 맞은 시어미와 망나니 유복자, 
시퍼런 입성 똬리 튼 광주리 총총 추스름에 드러난 
시꺼먼 가죽 겨드랑이, 더는 들추지 않아도  
헐 빈한 짐 바리 어미 모상이다 

어스 고개 수그린 편 할머니, 개떡 가족이라도 
말없이 품던 자갈치 아지매 눈빛이다 
성큼, 쑥 개떡 한 입 문 함박입으로 손 맞잡으니 
개떡 같은 올 한 해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어떤 대 재앙이란 짐승이, 이런 무던함을 이길 수 있을 까 
터벅터벅 한 십리 고개 함께 가 보자고 꿀떡 넘긴다 
언제 이런 신토불이 개떡을 또 만나겠는 가 

*헌듯펀듯: 모양이 반듯하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모양새 

#63 자화상6, 나는 몽상가 시인/강 학희 

떴다, 떴다 비행기 저 것은 따.따.따. 
불 총 폭풍 그러나, 애들은 또 다른 내일을 꿈꾸지 
나는, 베이비부머 

날아라, 날아라 동무들과 불탄 막대 들고
산으로 들로 목청껏 꿈 찾아 씽씽 신세계로 달렸지 
나는, 서울 피난민
 
높이높이 날아라 민들레 씨방 안고 날아온 
유토피아 아메리카 어디가 어딘지, 누가 누구인지  
나는, 동양 이민자

내가 만든 비행기 무진한 꿈은 뒷주머니에 
잠재우고, 알파벳 리듬에 빵과 밥 섞느라 갈지자 스텝 
나는, 디아스포라 

멀리멀리 날아라 오늘은 저 멀리 스페이스X 
땅 별을 떠나네요 내 젊은 단꿈도 날아라 노래합니다 
나는, 몽상가 시인

높이 떴다 비행기, 우리가 만든 비행기는 아직도 
날아갑니다 혹, 불시착으로 화성 붉은 땅에 하강할지라도,
나는, 괜찮아OK  

# 64 쯧쯧 새들도 아는 것을, /강 학희

가로등에 쪼르륵 앉은 여섯 마리 참새
맨 앞 한 마리만 바싹 고개 쳐들고 두리두리, 
뒤 다섯 마리 다닥다닥 고개 묻고 잠들었다
앞자리 고개에 얹힌 무게 사뭇 빳빳하다

무리 위해 고개 세운 새도 아는 저 자리 몫을, 
내가 사는 미국과 내가 살던 
한국 대선 선두주자들은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만큼의 이 자리
너무 감사하고 미안해서, 정말 미안하고 감사해서, 
따르는 무리 얼마나 소중한지
따르는 선두 얼마나 막중한지 알아져야 하는데  

정말로 알고 있을까
새들도 알고 있는 걸 그 들도 알고 있을 까 
목만 빳빳하고 두리두리 하지 않는 새는, 


#65 번개와 적막/강 학희

숨바꼭질하자 
몰려든 먹구름에 두 눈 꽉 감고 
검은띠 두르는 하늘의 심사, 까만 적막은
운동회날 탕! 총 한방 튀기직전 
스타트라인 출발점을 응시하는, 눈알도 깜빡이지 않는 멈춤,

아카시아 나무의 숨길, 눈길, 꽃길까지 잡고 있는 
찬란한 고요는 
쾅 우르르 번쩍, 당김 쇠 하나로 
일탈을 기다리는 숨죽임이다

죽음의 그늘이 아닌 도약을 위한 단단한 멈추기는,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분출 뒤로 밀리는 어깨 풀린 평안,
그 한 순간의 일장 춘몽이다 
일생일대 잠재된 기회이고 위기인 천둥의 찰나,
그 엄청난 침묵 무게를 이기는 손이 
승리의 관을 잡는다



#66 들녘의 방 /강 학희 
  
하늘을 베고 
풀들의 귀를 달고 들녘에 누우면
바람과 바람, 빛과 빛,
꿈과 꿈 사잇길이 열린다
거침 숨결 버겁게 춤추던 시간
그 행간의 바람이 전혀 버겁지 않다
집 없는 방이다

들녘의 방은
꿩의 바람이든 매 발톱이든 토끼풀이나 
깽깽이나 도깨비 방망이나, 등 갈퀴, 
노루 궁뎅이도 큰 땅 빈대도 미치광이 풀도 모두 
모두가 그대로 어울려 산다 
있는 그대로, 다름이 가시가 되지 않는 
나대로의 나로 행복한, 
집 없는 방이다

저 가고 싶은 곳으로  
몸을 푸는 시간과 나
잡아야 할 것도 
잡지 말아야 할 것도 없는
집 없는 방이다

#67 영차!/강 학희


비에 젖은 꽃잎 하나
차창에 딱 들러붙어 안간힘이다 
놓는다는 건 이리 힘든데, 
부고는 왜 이리 자주 오나 

무슨 할말 남아 나는 
여적 손 놓지 못하고 억척스레 
진땀에 젖어 힘들게 버티나 

끝까지 더욱 열심으로 
“영차!” 함 살아보자고,
빗물 젖은 인생 하나
지구에 딱 들러붙어 안간힘이다


#68 여기와 저기 사이 꽃사발이 만발할 때/강 학희

태평양 건너기 전에는 
빵이 그리워 밥상에는 붉은 꽃이 피었고  
태평양 건너온 후에는 
밥이 그리워 식빵에는 푸른 꽃이 피었다
여기와 저기 행간사이   
딱 생각 한 장 차인데 별별 꽃 만발이다
삶의 아침 저녁 사이 
세상 곳곳 꽃밭 만들고 오라 신 임에게 
지구별 한 켠이라도 
꽃불 환한 꽃사발을 올려드려야 하는데, 


#69시인의 주치의는 몸 시를 기다린다/강 학희


몸이 시들은 풀잎, 말을 듣지 않는다  
문진 한 그가 몸 나이를 묻는데, 
몸 나이요? 
보통, 신체나이는 당수치에 비례하지요 
지금, 당신은 너무 달다고 몸이 경고하네요 
몸도 마음도 사이가 좋아야 사분사분합니다  
푸름과 당수치는 반비례하지요
푸성귀 알뿌리들을 불러보세요 
조곤조곤 낱낱의 입맛 사귀어 보세요 
숟가락질 사이, 허허 헛바람도 듬뿍 쳐주고 
어화둥둥 손뼉 쳐주면 몸도 신이나 나이를 잊습니다 
철없는 아이처럼 순해지지요 
여투지는 심심한 당신 몸에 
실실 바람이 집을 짓고 몸과 맘 선선히 하나 되지요 
자, 그럼 단내로 후줄근하던 당신 
청 상추 닢처럼 싱싱한 몸 시 한편 지어 오시길, 


# 70 석양/강 학희

시뻘건 저 상흔, 
애 닳고닳아 더 붉어지는 
애 타고타다 더 깊어지는  

뉘의 가슴인 가 
뉘의 자리인 가

검붉은 저 핏물,
헤집고 헤집다 찾고 찾다 
왈 깍 거침없이 쏟아버린 

시인의 각혈인 가 
시인의 시구인 가 

 
# 71 무궁화는 피어나는데, /강 학희

산능선에 스러지는 저 가슴은 뉘 아쉬움인가
아련하게 물드는 남빛 하늘은 뉘 젖가슴인가
아-아 그 능선 너머 있을 동산, 네가 그리워 

먼먼 이방 하늘 바라보다 젖어가는 적삼 속
속타는 꽃자리 알알이 꽃봉오리 짙어 가는데     
아아 흰빛인 듯 물빛인 듯 아득하기 만한 너 

설움인 듯 눈물인 듯 남보라 물 드는 사람아,
그 시절 그 사람 다 어디 가고 너 혼자 남아
삼천리 우리 꽃 무궁한 무궁화는 피어나는데,


# 72 착상의 소리/강 학희

열쇠가 맞지 않아 다시 내민다
내민 손의 미안함과 받는 손의 씁쓸함이 교차한다 
또다시 복사기 스위치 올린다

똑같이 복사한다는 것, 그 게 생각만큼 쉬운가
묵묵히 쇠 끝을 다듬는 우직한 열쇠 공 
둥근 배 문지르며 차례 기다리는 옆 좌석 임산부처럼 
조심스레 마지막 한 굽 한 구비 결 따라
숨결 고르는 득달임이 임산부 숨결처럼 벅차다 
열쇠는 열림 순간 최선을 입증한다 
마침내 찰칵! 만남의 환희가 진통 후 산부의 
몽롱한 미소처럼 걸릴 것이다
새로 받은 작은 열쇠가 따뜻하다 

꼭 열릴 거라는 손안의 믿음도 훈훈하고,
회전을 울어주는 응 앙 소리
자물통 자궁 속 달깍 착상 소리가 그립다



# 73 아이에게/강 학희 

아이야,
삶이 서러운 날은 어미의 숲으로 오려만, 
나는 너를 향해 두 팔 벌리고 있으리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서러움 달래는 삼나무

아이야,
봄날 모략이는 아지랑이에 새싹 틔우고
무성한 푸름으로 너를 무르 익히다
하나 둘 낙엽으로 다 주고 난 하얀 맨몸으로   
하늘 우러르는 듬직한 한 그루 나무로 서자

아이야,
삶이 외로운 날은 어미의 숲으로 오려만,
나는 너를 향해 두 팔 벌리고 맞으리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외로움 달래는 삼나무

아이야, 
바람이 아무리 모질어도 우리는 한 뿌리
한나무는 외로워도 숲을 이루면 따뜻하지
나 하나 너 하나 네 아기들이 발등으로 
눈썹처럼 돋는 숲 속은 바람도 살긋하지 


#74 겨울에는 /강 학희

겨울에는, 
눈이 어려지는지 눈이 밝아지는지
가지 끝에서 끙끙대는 마른 잎들 안간힘이, 
한껏 잡아주는 나무의 손길이 더 잘 보인다

겨울에는, 
눈이 여려 지는지, 눈이 묽어 지는지
횡-한 가지 사이 바람 새 종종대는 설움이, 
콕콕 마감하는 찬 발가락들이 더 잘 보인다

겨울에는, 
눈도 귀도 마음까지도 허기가 지는지
희뿌연 한 허공에 보이지 않던 옛 얼굴들이, 
바람 결 묻어오는 이야기들이 더 잘 들린다 

겨울에는, 
마을도 사람도 시간도 다 순해지는지  
문지방 너머 남겨진 인연들 새삼 고마워서 
윗방 휘돌아 고운 것 모아 쥐어 주고 싶다

삶이 활동 사진처럼 돌아가는 생의 
겨울에는, 


#75A꽃관/강 학희

1
예쁜 꽃도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상처 투배기다
문을 열고 나오는 건 이렇게 아픈 게다

갓난아기 자세히 보면
조글조글 주름 사이 피멍 투배기다
배 가르고 나오는 건 이렇게 힘든 게다

아름답고 귀한 것은 
진통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
세상은 무통으로는 통과되지 않는 게다

2
선인장 꽃을 자세히 보면
뾰족뾰족 가시 투배기다
생존은 가시 위 꽃, 꽃 위 가시인 게다 

할머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뭇거뭇 얼굴 손등에 저승 꽃 투배기다
제 자리 돌아가기 힘들다는 표시인 게다
 
세상의 왕관이란 꽃은
힘들게 견디어 낸 가시관의 상징인 가
십자 위에 핀 가시 꽃 관을 보면, 


#75B기도/강 학희

내 안에서 숨 쉬는 이여 그대는 누구이신 가 
늑골 깊은 곳에 생명 바람을 넣어 주셨는가? 

내 안에서 깜박이는 이여 그대는 누구이신 가
뵈지 않는 곳 비추이는 등불을 들고 계시는가? 

내 안에서 들숨 날숨으로 살아있는 그대 여
감은 눈은 뜨게 하시고 뜬 눈은 감게 하시어 

자면서도 걱정하는 우매함 하나, 하나 지우다 
투명의 그림자로 황홀의 그 곳 이르게 하소서


#76 Alice Wonder Land/강 학희

앨리스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이다 하얀 
치자 꽃 웃음 만발한, 시간도 나이도 없는 원 더 랜드이다 
첫 손녀 앨리스 나라는 갈수록 더 머물고 싶은 동맹국이다  
보고싶어 전화하면 "컴, 컴 아웃! " 나오라고 
방문을 모두 열어보는 앨리스 공주의 재미난 나라다

나도 철없는 나라에 살며 볼 수 없는 
울 엄마, 울 언니 어서 나와 달라고 하늘에다 대고 “컴, 컴 아웃!” 
손 나팔 불고 싶고 어디에 숨었느냐고 방방 문도 열어보고 싶다 
앨리스의 나라는 철없는 부드런 나라, 
깨 꽃 손짓 가득한 나라는 들어가면 나오기 싫다

어떻게 하면, 하늘 원 더 랜드에 사는 우리 식구들 불러 
앨리스 공주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함께 낮잠이라도 자 볼까? 
오, 이상한 나라 앨리스 원 더 랜드는 만져도 믿기지 않아 
자꾸 조몰락거리게 하는, 탄생 스물 두 달 된 새 나라이다


#76 창 피한 밤/강 학희

천 길 낭떠러지로 내가 사라진 날, 초승달도 
창 끝 세우고 스치는 바람 족족 다 찔러 벼리는지, 
그렁그렁 울렁이는 별들이 까무룩이 내려앉는다  

우두커니 밤이 지나가는 소리 읽다 
어둔 밤 유리 벽 지치는 부산한, 한 소리를 본다 
쭈룩 미끌대 다 고물, 또 주르륵 바스락 꼼지락 
그 것 말고는 길이 없듯 틈 틈새 
옅은 불빛 향한 부 나방이 눈에 확 뜨인다 하늘 별보다, 
더 빛나는 땅 별! 환한 빛 길로 날아갈 꿈이 눈물겹다. 
나는, 어디로 달리다 천 길 낭떠러지 앞인 가 
혹, 비비 덕 몸살 싫어 뉘에 업혀가다 낙상한 나방 아닐 까

지금껏 타인의 길 위에서 사방을 둘러본 게다
군살 없는 보드란 발바닥은 부끄러운 발이다 
창 피한 밤이다


#78자화상2, 손톱들의 노래/강 학희 

1
굳게 빗장 지른 문을 열면 거기, 오래 묻어 둔 밥사발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가르랑대는 괭이 같은 계집애 하나 있습니다 
온몸은 귀가 되어 팽팽히 솟은 채 밖을 향해 있습니다 

맨드라미 봉숭아 달리아 송송한 앞마당에서 “어서 나온 나”  
한마디 7살 울음을 툇마루로 불러냅니다 봉선화 꽃잎 한 움큼에 
웃음 오물거리며 해죽대는 젊은 할미와 아이 모녀 같습니다 

2
문득, 아이 불행 사라지고, 곱게 물든 예쁜 손톱 떠오릅니다 
미운7살 무지개 손톱, 서른 살 엄마의 붉은 손톱, 할머니의 몽땅 
손톱들 빙글 춤추며 쓰다듬다 흩어지는 외로운 빈방, 머나먼 변방
코라*를 나온 아이는 꽃물들이기 기술자가 되어 갑니다 


여기, 오늘도 짊어진 삶을 엮느라 갈라지고 외로운 손톱 끝에 
봉숭아 꽃을 피우는 다 자란 7살 소녀 “어구, 울지 않아 기특타” 
붉은 손등 두드려주는 새끼 할미입니다 

*코라 Corah: 돌아온 탕자가 간 머나먼 곳,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선 곳

# 79 간을 맞추다/강 학희


바이러스 공포로 집집이 집 밥이 트랜드가 되었다
최선의 음식이 바이러스를 이기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음식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짭짤하지도 민숭하지도 않게 간을 죽이고 살리는 일이다 
헌데, 간을 맞춘다는 게 어디 음식만의 일인 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과 사랑 사이 
식구와 식구 사이, 친구와 친구 사이 
일상과 취미 사이, 감정과 이성 사이  
음식이나 인생이나 간 맞추기가 최고로 어려운 일이다 

짭짤한 장아찌이든 밍밍한 곰탕이든
간살스러운 여우이든 느맀 굼벵이이든
선택은 전적으로 본인 사항이나, 이 요리게임의 키포인트는
재빨리 간의 농도를 가늠하는 일, 속말로 눈치 싸움인 것이다
필히, 많은 음식 만들며 인생의 간을 짐작해 볼 일이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바로 그 순간 내 별미가 생기고,
그 순간 포착이 인생의 갈림길이 되기도 하니까 부디, 
속을 맞추어 보시 길,

나의 선택은 심심하기가 기본이다 다만, 비법은
맛있는 천일염, 오늘의 사이드 메뉴, 유머를 다양하게 준비해 
혀의 기억을 느슨하게 하는 일이다 입맛 맞춤이 아니더라도
웃음범벅이 제 간으로 마침맞게 간을 맞춰 줄 테니까


#80가을엔, 아비의 발을 씻겨주고 싶다/강 학희

아직, 가을 볕 짜랑한 오솔길로 쏘아- 쏴 
갈바람이 몰려온다 은어 떼처럼 하얗게 배를 뒤집는 
은사시나무 밑, 낡은 벤치에 맨발을 드러낸 채 신문 움켜쥐고 
잠든 사내, 한때는 아장댔으나 이젠 갈고리처럼 쇠어버린 
두발사이로 마른 낙엽 이불이 덮인다 

이 길 저 길 뚜벅뚜벅 걸었을 닳고 낡은 
맨발아, 캄캄한 바닥아, 
아낙과 새끼들에 웃음꽃 피우느라 소금기에 찌들은 
뻐드렁이 발 가락들아, 

문득, 사시나무처럼 허옇게 웃는 그를 볼 수만 있다면 
아- 나 갈바람 되어 가락가락 저 발가락 간질이고 싶다  
아- 그가 아이처럼 눈 비비며 일어나 아기새들 
조잘거리는 한 평 보금자리로 달려가게 할 수만 있다면, 
뻐드러진 발가락 말갛게 씻겨 웃음 바람 발라주고 싶다 

검은 구름 멍한 벤치, 
맨발로 나온 소풍놀이 참 아프기도 아픈지 힘들게 운다
꿈 속 꿈도 맨발 나들인가 맨발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하늘까지 눈물 떨구며 가는 발 시린 가을엔,


#81하느님동업자를 만나다/강 학희

구름 방석 깔고 앉은 안반덕, 하늘에 두 손을 
90도로 모은 고랭지이다 안 반, 구름 위 하늘가 땅이다 
배추꽃이 추석을 알고 노랗게 웃는 곳이다
고생 무게만큼 여무는 배추 포기 입 속에 
화전민 50년 삶이 알배기로 박혔다 배추 꽃은 아침 저녁 
동업자, 하늘과 땅을 보며 웃는다 주름살 몽실몽실 
노랗게 웃으면 속고갱이 쫘 악 벌어진다 
 
손 마디마디 갈라져야 씨앗이 영 그는 안 반 데기* 
꽃을 키우는 일은 분명 땅의 손이건만, 
거두는 일은 하늘 몫이라 감사가 그들의 주식이다
고랭지 밥상 국그릇은 못나고 망가진 허 풀기지만, 
상차림은 온통 푸른 배추 빛이다

새벽 안개 속, 잇속 없는 땅의 동업자가 꼬물꼬물 가물가물 
시방도 하늘 동업자님과 상의 중이다 걸음걸음 기도 중, 
믿음의 씨알 흙 사랑이 소망을 거둔다

고랭지는 일용할 양식을 몸 기도로 얻는 사람들의 거처, 
안반덕 푸른 물결치는 하늘 교회는 
서울로 보낼 배추꽃 신도들의 푸른 헌금이 묵직하다 

*안반데기는 안반덕(데기)의 강릉 사투리로 구름 위의 땅이란 의미


#82코리언의 키는 지금도 자란다 /강 학희

콩 튀기, 호박엿 달디단 꿈을 삽시간에 무너뜨린 
허시 초콜릿, 은박 날개는 
미지에 대한 나의 첫번째 꿈 나래였다
커서 잠자리표 연필심 매끄러움이나 
빠리 다방 쌉쌀하고도 향긋한 커피 향, 
드뷔시 환상곡은 신세계 열정을 끓였지

먼 이국하늘로 날아와 또 그리운 건
못난 모과로 만든 엄니 차 한잔의 풍미
숟갈 부딪던 비빔밥에 끝동 동치미라니,

반 백 년 이국에서 살며 "어디서 왔 어?" 물음마다
당연히 "코리안! 너 코리아를 아니?" 
평창올림픽, 박찬호, 박세리, 알아? 그래도 또 
한국전쟁얘기 따라 나오면
삼성, 엘지, 현대, 기아, 한국 자랑 수없이 늘어놓았는데,
이젠, BTS 블랙핑크 멋져! 먼저 얘기 거는 한류 세상이다
진정 코리언이 되고 싶다면 모국을 떠나 살아 볼 일이다
등뒤 힘 있는 나라 없으면 얼마나 등이 시린 지,
자랑거리 하나가 코리언의 키를 얼마나 키우는지
 
#83노숙자 아내의 어머니 날 선물/강 학희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그대, 어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시는 지,  
돌아오세요 더는 생각하지 마시고

무릎과 가슴사이가 더욱 가까워진 
지금, 무엇이 우리를 서성이게 하나요? 비록 
오늘 밤은 별도 없이 깜깜한 밤이지만,
비바람 멈추는 날은 별빛 찬란한 하늘 일 것 이어요.
그대 여! 사위어가는 담배 불 끄시고 
돌아서기만 하면 한 발자국 옆에 있는 당신의 집,
당신 밥상가로 오세요 찌개 데우는 사이 
당신 젖은 머리 말려 드릴 게요 

우리 집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어요 
우리 밥상은 모서리 없는 동그란 가슴 이어요 
아무리 지친 발걸음도 눈물도 함께 온기로 말리는 
작으나 춥지는 않은 집으로 오세요

오늘은 어머니 날, 아버지 없는 
어머니 날은 무슨 의미인가요 성찬은 아니어도 
둘이 함께 수저 드는 날이라면 
더는 바랄 게 없는 어머니 날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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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당신은 한 송이 꽃 강학희 2005.02.27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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